솔직하게 진심을 표현했다면 관계가 달라졌을까?
<우리 이혼했어요 2> 에 출연 중인 일라이-지연수 이혼 부부, 나와 남편이 겪었던 갈등과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이라 과몰입해서 보게 된다.
돈 문제, 아이 문제, 시댁 문제는 다르지만 근본적인 의사소통의 문제와 그로 인한 오해와 악화되는 상황이 너무 마음 아픈 ㅠㅠ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의 결혼생활도 돌아보고, 남편에 대한 생각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본다. 결혼에 대한 마음가짐도 이혼에 대한 생각도 아이에 대한 생각도... 그리고 이들도 행복하게 잘 방법을 찾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ㅠㅠ
이혼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결혼생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은 바로 지금밖에 못 하니까.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나보다 미국 생활을 먼저 하신 우리 엄마가 나에게 몇 번이고 말씀해주셨다.
"홍이야, 걔는 그냥 평범한 미국인이야. 한국인처럼 생각하면 안 돼."
나의 결혼생활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더 크게 느끼며, 남편을 답답해하고 이해하지 못했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 진짜,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어쩜 그렇게 이기적인지!!!
그런데 남편의 나라에서 살면서 뼈저리게 실감한다. 매일매일 아주 사사로운 일상에서 차이를 체감한다. 이게 진짜 문화 차이? 라고 하기엔 거창한 것 같고 정서 차이?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다르다. 개인 차이? 라기에는 확실히 문화권별로 구분될 만한 차이인 것 같고, 그렇지만 다시 돌고 돌아 문화 차이? 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자신이 없는 ㅠㅠ
아무튼 내가 보는 일라이의 몇몇 행동들은 우리 남편과 상당히 닮아 굉장히 짠하다 ㅠㅠ 한국인들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미묘한 느낌? 그래 그게 연애 때는 굉장히 신선하고 다정다감하게 느껴져서 매력이 될 수 있지만, 막상 결혼하면 그게 그렇게 답답하다.
예를 들어, Gratitude Rock 같은 거 주는... ㅜㅜ 이력서를 수기로 쓰는 것도 그렇고 ㅜㅜ 힘든 일 몸 쓰는 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려는 모습도 그렇고. 어쩌면 일라이도 그냥 평범한 미국인일 수도 있겠다 싶다 ㅠㅠ
아들이 먹다 남은 고구마도 그렇게 좋아하면서 만지작만지작 하고, 아이 처음 만났을 때 끌어안고 오열하는데 정말 내 남편도 아니지만 눈물 났다 ㅠㅠ
"여자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던가 "아내의 말은 언제나 옳다" 라던지 "happy wife happy life" 라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아내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주는 걸 아내들은 원하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 보통은 아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긴 한다. 그런데, 이게 크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언제냐면 상대를 바꾸려 들 때이다.
일라이가 한 말 중에 우리 남편이 했던 말과 똑같은 문장이 있다.
"나도 내 생각이 있어"
나에게는 얼마나 당연한 일이라도 남편과 의견이 충돌할 때, 내가 고집을 부리면 남편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면 나는 한국에서는 이게 당연하다며 더욱더 강하게 나갔다.
여기서 살아보니 미국인들 진짜 고집 세다. 한국에서 고집부리는 거랑은 결이 다르긴 하다. 좋게 말하면 주관이 뚜렷하다. 다르게 말하면 변화를 거부한다. 게다가 우리 남편 본인 피셜 왼손잡이에 곱슬머리.
그런데 우이혼에서 일라이가 한 말이 비수가 되어 나에게 꽂혔다.
"너랑 싸우잖아? 한자리에서 싸움 끝내 빨리 싸움을 끝내고 싶어서 내 마음에 없는 결정을 하게 돼."
"그래 내가 잘못했어 해도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안 해."
그러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상대에게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받아봤자 무슨 의미인가. 우리 남편도 그랬을 것 같다. 잘못했다고 생각도 안 한다는데, 비슷한 상황이 오면 남편은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그때마다 저번에 미안하다고 했으면서 왜 또 그랬냐고 미안하긴 한 거냐며 싸울 테고, 그러면 안 미안한데 뭐 어쩌라는 거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결국 나만 손해이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건 일라이가 지연수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 남편이 나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다. 나는 대체 뭐가 더 중요했을까? 남들의 시선? 시댁의 평가? 타인과의 비교?
내가 시댁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을 때에도 남편은 관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식으로라면 남편이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하는 게 당연했는데! 관계 중심주의인 한국사회에서는 시어머님은 남편과 연결된 사람인데!
남편은 둘의 관계는 둘의 관계이니 직접 이야기하라고 둘이서 해결하라고 했다. 나는 내가 시어머니께 내 할 말 다 해도 괜찮냐고 그랬고 남편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왜 못하고 있냐고 되려 나를 답답해했다.
"부모의 생각은 부모의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야?"
"나도 최선을 다했어. 모든 걸 다 포기했어."
그런데 그게 한국식의 표현이랑 외국식의 표현이랑 또 다르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이란 걸 여전히 집안 대 집안의 결합이라고 믿고, 자식들도 부모에게 온전히 독립하지 못하는 실정이니까.
다양한 문화와 인종과 국적이 사는 나라 미국.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당연한 나라.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신 한반도 단일민족 출신인 나. 이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변해야 했다.
나는 왜 남편의 의견을 인정하지 못했을까? 남편과 싸울 일이 아니라 질문을 나에게 던져야 한다. 나는 왜 어느 하나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왜 특정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믿었을까?
그게 나의 세계를 넓히는 방법이다. 포용력을 기르고 인내심을 발휘하고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성적으로는 다 아는 이야기이다. 부부 사이는 평등하다.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평등하지 않다는 걸 안다. 여자라서 출산과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부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불리함도 있을 테고, 남자라서 사회적 경제적 책임이 더욱 가중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서로 어느 정도 계산은 해야겠지. 계산이란 게 속물적인 접근법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때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지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나와 남편이 나눴던 말 중에 우리가 같은 말을 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한 말이 있다. 그리고 일라이와 지연수도 비슷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 문장이 있다.
나의 싸우지 말자 =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자
남편의 싸우지 말자 =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자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커플들에게도 진짜 사소한 이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 정말 어렵다. 오해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어차피 상대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다면, 뭐 어떻게 말하든 차이가 있을까?
현재를 살고 싶은 사람과 과거나 미래에 갇혀있는 사람이 함께하면 그것만큼 고역이 없다. 둘 다 불행해지는 길일 뿐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힘들었던 일이 한이 되어 계속 생각나는 사람과 그래도 좋았던 일을 회상하는 사람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상황이 힘들어도 긍정적인 면을 보기. 이게 말로는 진짜 쉽게 들리는데 정말 실천하기가 어렵다.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힘든 기억을 어떻게 물리칠까.
"너와의 기억이 좋았지. 네가 웃는 게 좋았어. 같이 있을 때 행복했지."
"옛날에 행복한 기억은 없었지만, 앞으로 행복한 기억을 만들자"
우리 남편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과거는 과거대로 흘러가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살라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남편이 잘못한 일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냐고 따져댔다.
이건 진짜 우리 남편이 한 말인가 싶을 정도다. ㅋㅋ
"내 생각을 물어본 거 아니야?" 그리고 지연수의 대답도 내가 한 말인 줄 ㅋㅋㅋ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은 그래서 좋은 말만 하고 싶은 남편과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와의 대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하는 남편과, 부정적인 면만 콕콕 집어내어 설명했던 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래 과거를 보내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이런 명언들도 없었겠지. 미래를 보고 희망을 갖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말이다.
<어쩌다 한국인>에 나온 한국인 특징 예방적 동기와 외국인 특징 향상적 동기. 이런 내적 동기들은 어떻게 내제화 되는 걸까? 유전자에? 환경에? 주위 사람에?
누구든 과거에 집착하며 울화병 나고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한을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 여기를 살고 어떻게 하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수동 공격적 성격이 있다. 나도 그랬다. 남편에게 이상하게 꼬였네 스크류바 같은 말을 했었다. 문장 안에 단어 안에 하나하나 덫을 담았다. 그런데 남편은 나의 공격을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파놓은 그 덫에 내가 빠졌다.
우리 집을 살얼음 판으로 계란 껍데기 위로 만들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채로 어떻게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없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돋쳤었다. 그래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던 꼬아서 듣고 숨겨진 악의가 있을까 들들 볶았다. 우리가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차라리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해. 우리가 다시 한 가족이 됐으면 좋겠어. 네가 보고 싶었어. 솔직하게 말하면 달라졌을까? 부모로서의 의무나 희생을 내세워 강요하는 것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노래로 요리로 빗대어서 감정을 전달하기보다, 긍정적인 신호를 끊임없이 보냈더라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을까?
상대에게 관심 끄라고, 자꾸 엮으려고 하지 말라고, 내 '앞으로' 에는 네가 없다고, 결혼사진도 버리라고 했으면서... 실제 진심이 아닌 말들을 자꾸 하게 되는 걸까 ㅠㅠ
사랑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사랑받을 때 어떤 느낌인지,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다거나, 이렇게 챙김을 받는 게 오랜만이라고, 이렇게 물놀이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거절하는 이유는 뭘까?
그니까... 나는 안다 우리 남편은 죽었다 깨도 모른다 ㅠㅠ 너무 덥석 받아버리면 없어 보이니까, 좋아한다고 바로 표현해버리기엔 자존심 상하니까... 지연수는 안다 ㅠㅠ 근데 일라이도 알까?
나를 더 많이 사랑해달라고, 상대가 더 적극적으로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으니까 ㅠㅠ 나도 나름대로 표현을 많이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표현이 얼마나 상대에게 전달됐느냐는 다른 이야기니까 말이다ㅠㅠ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 1회에 출연했던 한 남편의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어가 조금 서툴다는 진단을 받았다. 특이점은 이 남편은 한국어가 자신의 모국어이며 부족하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다는 것!
이건 나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한국어든 영어든 미묘한 뉘앙스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달하는 데 서툴을 수도 있다. 이게 진짜 사소해서 같은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바뀌니까... 참 어렵다.
모든 이민자, 국제커플, 제3문화 아이 Third Culture Kids, 또는 교포 Heritage Language Learners 의 고민일 듯 ㅠㅠ
아니 근데 이 인간이 한국어 배울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영어 고민까지 해야 하지? 아니다... 그냥 영어 하는 내가 봐주자. 근데 난 약간 모국어도 떨어져서 0개 국어 될라 둘 다 공부하자
"과일이 먹고 싶다고 하면 과일을 씻어서 잘라서 접시에 담아줬다"던 어느 여름밤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지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일 깎아주는 우리 남편이 생각났다. 우리가 이혼해도 남편이 나에게 과일 깎아주던 순간이 이렇게 눈물 나게 그리울까?
"에어컨을 틀고 싶지만 싸울까 봐 더위를 참는다" 며 눈치 보고 말도 못 하고 일라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이 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제든 요구할 수 있도록 들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어컨이 뭐라고 켜면 되지 그 작은 일로 이렇게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 때문에 불행한데 무슨 네가 내 행복을 비냐며, 그럴 거면 애초에 니 행동거지부터 고치라고 원망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남편의 뜻을 알 것도 같다.
다른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떠나려는 사람을 보내줄 줄 알고, 다가오려는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진정한 감정의 독립. 그리고 주체적인 인생.
그게 내가 미국인 남편에게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배운 인생의 진리이다.
부부의 연은 선택이라는 관점이 동양문화에서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 시집살이 시켜도 아내는 자신을 선택해서 나와 결혼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마윈의 명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서양문화에서 보면 부부가 원하는 것이 같을 때야 함께 살겠지만 원하는 것이 달라진다면 언제든 갈라설 수 있다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그들의 문화에서는 배우자가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데 “You need help.”라면서 자기는 도와줄 수 없으니 전문 상담가에게 가라고 충고하는 것이 최선을 다한 것처럼 생각한다. 자신은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가 항상 우울해하고 그런 아내와 함께 한집에 있는 것이 고역이라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따로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내는 타인이고 아내의 우울증은 아내 자신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아내의 문제이니, 아내와 헤어져도 자식에게 법에서 정한 책임을 다한다면 문제가 없다. 부부관계는 서로의 선택에 의해 언제든 유지되거나 단절될 수 있다. 심지어는 그것을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산후우울증을 극복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복된 후에 서로 여전히 함께하길 원한다면 합치거나 아니면 더 각자 나은 길로 가거나 선택해야 할 문제가 된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좋은 상황에 있을 때만 함께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지니 바로 내치는 것 같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고 정 없는 그런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남의 자식을 낳은 것도 아니고 우리 아이를 출산하느라 우울증이 온 것인데 그런 힘든 시간을 같이 고생하고 같이 노력해서 같이 이겨내는 그런 장면이 감동일 텐데 말이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2장 남편을 찾아서 1 신문물 개인주의 3) 탈관계성 - 감정의 독립성을 위하여 중
일라이-지연수, 미국인 남편 한국인 아내의 부부 갈등1
일라이-지연수, 미국인 남편 한국인 아내의 부부 갈등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