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몸뚱이가 상전이 될 때
더위 먹어서 그런가 나이 먹어서 그런가
급격하게 육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행 다녀와서 그런가 운동을 안 해서 그런가
한 달째 비실비실 몸뚱이가 상전이다.
아프고 나니 드는 쓸데없는 생각들
나는 코로나에 확진이 된 적이 없다. 마스크나 거리두기 규제에 한국과 비교했을 때 훨씬 자유로웠던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도 방문하고 여행도 다녀오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려도 확진자와 접촉했어도 나는 감염된 적이 없다.
그런데 묘하게 이 코로나 검사에 대해 드는 불신이 있다. 내가 이렇게 아팠는데 코로나가 진짜 아니라고? 지난달에는 코로나 증상을 모두 겪었는데 아무리 매일 자가 키트를 해봐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도 음성이라고 하고. 요즘에는 코로나 후유증 증상 같이 아픈데도 코로나는 아니라고 하고. ㅠㅠ
그런데 말입니다. 순전히 뇌피셜이지만 여기서 받는 코로나 검사는 약간 야매인 것 같다. ㅜㅜ 코시국에 한국도 두 번이나 가고 본토도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 코로나 검사를 여러 번 받았지만, 한국처럼 검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의사 선생님께서 (내가 자꾸 피해서) 내 뒤통수를 잡으시기까지 하시며 엄격하게 검사했었는데 ㅠㅠ
미국에서 받는 코로나 검사는, 2021년 초 한국인 의사 병원에서 받았던 검사 딱 한 번 빼고, 전부 내가 면봉으로 스스로 채취해서 드렸다. PCR이든 안티젠이든 콧구멍에 살살살 열 번~ 그럼 자가 키트랑 뭐가 다르지?ㅠㅠ
코로나에 걸리면 진짜 죽겠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아픈 거보다 더 심하게 아프다니 ㅠㅠ 정말 무섭다.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근 한 달간 회사를 간 게 며칠이나 되는지 ㅠㅠ 그래도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민폐가 아닐까 잠깐 고민했지만 일단 죽겠으니 잘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조퇴에 병가를 자주 썼다.
팀장님과 동료 직원들은 항상 잘 쉬라고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준다. 일이 바쁜 상황도 아니니 크게 영향이 있지는 않겠지? 코시국에 콜록거리면서 꾸역꾸역 사무실에 나오는 거보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회사는 아시안 계가 대부분이라 그래도 죄송하다고 항상 말씀은 드린다. 그때마다 팀장님께서는 죄송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너의 건강이 우선이라고 너의 보장된 권리를 사용하는 거라고 위안의 말씀을 해주신다. 그리고 나도 그 말을 듣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ㅠㅠ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나의 처신도 달랐을까? 눈치 보느라 병가도 제대로 못 내고 휴가도 못쓰고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야지 하면서 출근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재택근무라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일했을까? 한국에서는 병원 가기도 쉬우니까 링겔이나 영양제 한 번 맞으면 살아났으려나?
그러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하고 또는 사직당하고 프리랜서로 그냥저냥 살아갔을 것 같다. ㅠㅠ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결혼은 할 수 있었을까? 미혼이었다면 꾸역꾸역 회사라도 다녔을 것 같기도 하고... 기혼이었다면 임신 준비를 했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또 말도 안 되게 그냥 공부나 하자 하고 학교로 돌아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이었을까 의문이 드는 상황들. 아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었으려나?
미국인들은 유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체력은 좋지만 정신력이 약하다고.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이 환경에 완벽 적응했다. 무리하지 않아도 일처리가 돼야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의미일 텐데...
지금 나의 상태로는 한국가도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한국 회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시무시하니까... ㅜㅜ 자신의 몸을 챙기고 자신의 권리를 챙기고 이게 당연한 거긴 한데 말이지...
원래 건강 체질이었던 나는 병원 갈 일이 별로 없어서 현재 보험에 대만족이었다. 나의 보험은 대형병원에서 제공하는 보험으로, 병원 내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외부 병원이나 개인병원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 (가상의 예: 삼성병원 보험이라 삼성병원에서 받는 서비스는 보장받는데 동네병원은 보험처리가 안됨)
1. 코로나 검사를 외부기관에서 받으면 전액 보험 처리된다. 한국에서 받은 코로나 검사도 영수증 첨부해서 신청하면 바로 환급받을 수 있다.
2. 상담이 편리하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다. 미국 서부 전역에 있는 보험이라 하와이에 근무하는 의사가 시간이 안된다면 본토에 계시는 의사와 연결해준다.
3. 서류가 온라인으로 관리되어 쉽게 열람할 수 있다. 처방전이나 의사 소견서 등 한국만큼 빨리빨리 해주는 거 같다. 나는 밀접접촉자로 회사에 병가 낼 때 제출할 수 있는 서류를 아침에 온라인으로 신청했는데, 의사 선생님 출근시간 3분 만에 받음 ㅎㅎㅎㅎㅎ
그런데 지금 좀 불만족.
의사 선생님을 못 만남. 그러니까 아플 때 병원을 못 간다 ㅠㅠ 물론 정말 위급한 상황이면 응급실을 가면 되고, 보험 처리될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생활이 안 될 정도로 힘들고 아프면 바로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전화나 온라인으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정신과 상담이나 기존 약 처방 상담 등 간단한 진료라면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몸이 아프면 온라인 상담은 별 소용이 없는 듯 ㅠㅠ
전화로 의사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진단도 잘 안 내려주는 것 같고 약도 다 약국 약으로 대체하는 것 같은 느낌. 괜히 오진했다가 고소당할 수도 있으니까 ㅠㅠ 며칠 더 지켜보고 심해지면 내원할 수 있도록 referral 해준다는 게 끝.
근데 나는 꼭 집에서 며칠 쉬면 좀 나아져서 다시 출근하면 또 아파지는 것 같고 그렇단 말이쥐. 지금 회사가 얼마나 좋은데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는데!! 은혜를 모르는 검은 머리 짐승이다ㅠㅠ
의사보다 나은 흑쪽이님의 진단.
결국 마음의 문제인가? 내가 스트레스에 이렇게 취약해지다니 ㅠㅠ 솔직히 나는 다 마음 정리가 된 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지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해야지 다짐하고 이제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내가 최선을 다해야지 스트레스도 덜 받을 텐데. 스트레스 때문에 아파서 몸져누우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래서 더 스트레스받고 완전 악순환이다. ㅋㅋㅋ
부르면 나가는 예전의 나는 없어졌다 요즘에는 아파서 약속도 못 나갔다 ㅠㅠ 회의도 불참하고 약속도 취소하고 하이킹도 못 나가고 한 달간 이리저리 일정 다 취소 ㅜㅜ 심지어 곱창 대창 먹기로 한 외식까지 포기했다 엉엉 회사도 못 갔는데 뭐... 건강을 잃으니 건강했을 때 당연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다.
지금 내 상황에 감사하자. 다시 일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