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에 대하여
오늘 아침 나는 fantastic news 라며 한 문자를 받았다.
호스피스에 계시는 분께서 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 (자발적인 식사 중단) 을 결정하셨고, End-of-Life Doula (경험이 있는 조언자) 와 함께 진행하실 거라는 소식이었다.
사실 나는 그분을 잘 모른다. 단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이다. 몇 년 전 불치병을 진단받으셨고, 몇 달 전 존엄사를 선택하시고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선택을 실행하시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도 존엄사는 찬반이 팽팽하게 나뉜다. 그나마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을 받는 주에서도 존엄사의 규정이 굉장히 까다로워 승인을 받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분께서는 정말 결단을 내리셨나 보다.
아니... 그래 미국 문화에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 그리고 자기 결정권이 중요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어쩌면 믿지 않고 있었나 보다. 아니 믿기지 않았나 보다. 이게 현실인가? 진짜 일어날 일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축하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다니.
한국에서는 3대 거짓말 중 하나로 노인이 "늙으면 얼른 죽어야지" 하는 말은 사실 잘 살고 싶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당신의 상황에 대한 한탄의 말, 자식에게 대한 미안함, 젊은 시절의 아쉬움... 그런 복잡한 마음에 그냥 하는 빈 말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니까 한국어로는 "무슨 말씀이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죠. 저희가 효도할게요" 라는 정형화된 대답이 있었는데... 나는 영어로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좋은 소식이라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당신께서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으니 축하드릴 수 있을까?
진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행복하게 잘 살았다.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
그만큼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왔고,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 자부심이 있고, 그만큼 잘 마무리하고 싶으신 거겠지...? 사실 나는 그 마음을 모르겠다.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일 테니까... 그분은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생과 사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어떻게 생을 마감하고 싶을까? 나는 장기기증 희망을 신청하면서도, 연명치료 거부서를 신청하면서도, 내가 어떻게 죽을지는 생각해본 적 없다. 그냥 평화로웠으면 하는 마음.
괴로운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정말 삶을 충분히 다 살았기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그런 마음...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 는 말은 정말 많이 들어봤다. 그러나 사실 실제로 내일 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오늘이 마지막인 날의 마음가짐을 모른다. 존엄사나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신문에서만 보고 다른 세상 사람 이야기였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비현실적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는 문구가 이렇게 현실감 있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
혹시 나는 내 인생의 많은 선택들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미루어 스스로 결정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정답이 있는, 대다수가 동의하는, 사회적 통념에 맞는, 그런 선택들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지 않은 채, 남에게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오늘,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매일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가?
넓고 멀리 본다면 내 삶의 끝에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기를 바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