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친절’이 패시브인 미국 문화
민원 업무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주기적으로 하나의 의문이 든다.
친절하지만 느린 일처리가 좋을까?
사무적이지만 빠른 일처리가 좋을까?
8282의 나라에서 온 나는 당연히 두 번째라 생각하고 신속정확한 일처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코로나 이후 일이 엄청나게 바빠졌을 때는 하루에 50통씩 받는 민원을 한 통화 당 12분 컷으로 속도를 엄청 높였고, 전화받으면서 시스템 입력에 파일 작업까지 동시에 해냈다.
그런데 바쁜 시기가 지나고 잡생각이 많아지면서, 나 너무 ARS처럼 일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 내가 ‘고객’의 입장이 되어 전화를 걸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황송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직원분을 만나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것도 각각 다른 기관, 다 다른 서비스였는데. 원래 미국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그동안 나는 일을 잘못하고 있었나?
고객 만족도 최상! 미국에서 받은 고객 서비스를 통해 보는 친절함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기로.
“Thank you for your information.”
“Thank you for your attention.”
전화 걸어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연결 안 되기로 악명 높은 이민국. 안내문도 편지로 발송하니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어느 날 나도 그 편지를 받았다. 원래 비자든 뭐든 최소 1년은 기본이었기에 마음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 달 만에 편지를 보냈다니?! 깜짝 놀라서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 시간 동안 연결이 안 되면 운명이라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 번호를 눌렀더니, 진짜 단어 그대로 통화 연결음 1초 만에 전화 연결이 됐다!!!
“I apologize for the delay.”
“I apologize for the inconvenience.”
통화 중 신원 확인 정보를 말씀드리는데, 매번 감사하다는 대답을 해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감사한 건 전화를 받아주신 직원분께 내가 해야 할 말인데... 심지어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온라인 계정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이미 만들었다고 하니 감사하다고 하신다. ㅠㅠ그리고 매번 통화에 잠깐 공백이 있을 때마다 사과를 하신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ㅠㅠ 스몰 토크를 잘하는 미국인이라면 그 사이사이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으려나?
“Thank you for being our valued customer.”
이민국뿐만 아니라 병원, 항공사, 우체국 등등, 내가 요즘에 전화만 하면 바로바로 다 받아주신다. 미국이 갑자기 빨라졌다. 미국 사람도 8282라니 적응되지 않는다... 온 우주가 나를 돕나?! 전화 통화가 끝날 때 대부분 해주는 전화 마지막 인사말이 인상적이다. valued customer 라니. 인사치레로 하는 말씀이시겠지만 thank you 를 수도 없이 듣고 I apologize 를 하도 들으니 진짜 valued 된 것 같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 멘트는 내가 사무실에서 쓰기는 싫은 말. 유죄여야만 오는 우리 사무실에 고객님들께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무의식 중에 나쁜 사람들이라 생각하여 거리를 두고 있었던 걸까? 감옥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일부러 김딱딱씨가 되어 사무적으로 대한 걸까? 나의 고객 서비스 정신은 무엇일까? 우리 사무실 단골 고객님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사무실, 모든 직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주는 사무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일할 때보다 더 안심하고 일한다. 그 덕을 보며 나도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은데 말이다.
고객이 아니라도 실제로 미국은 모두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적극적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인사하고, 스몰 토크 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게 기본인 문화. 계산대에서도, 민원창구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냥 길거리에서도. 그렇기에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고, 활발한 성격이 좋게 평가받는다. 기본적으로 나는 너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며, 적극적으로 친절을 보이는 게 기본값인 것 같다. 땡큐, 쏘리, 알러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칭찬할 말을 찾는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 다름이 기본값으로, 각기 다양한 배경과 출신에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한다. 평균내기가 어려운 문화, 정상과 비정상이 불분명한 분위기, 법으로도 존중받는 다양성과 평등, 그리고 표현의 자유. 그래서 의견을 공유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굉장히 길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친절함의 정도는 딱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개인적인 공간 또는 사적 영역 personal boundary 존중하는 한에서 이다. 내가 느끼기에 미국사람들은 가까운 사람과도 의식적으로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 존중하고, 먼 사람에게도 쉽게 접근하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는 않아 더 이상 친해지지도 않는 그런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전 국민이 단군할아버지의 후손인 우리나라는, 요즘 많이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대다수가 한민족 단일민족이다. 한 세대가 전부 똑같은 교육과정을 받고, 학교에서 도덕과 윤리를 공부하며,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사회적 통념이 굳건한 문화. 비슷한 환경, 비슷한 사회에서 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어쩌면 더 줄을 세우고 급을 나누게 된다. 정답이 있어, 다르다가 쉽게 틀리다가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저 사람도 생각하는 거겠지, 짐작을 한다. 지하철 한복판에서 꽈당 소리가 울리도록 넘어져도, 창피할까 봐 모르는 척해주는 게 센스고 넘어진 사람도 벌떡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트럭에 물건이 쏟아져 길을 막을 때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아무 말없이 쓱 도와주고 다들 제 갈 길 가기도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고, 길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무의식 중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것이 관계성으로 정의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비이성적으로 화를 내더라도 관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성질 더러운 부장이 일개 사원에게 서류를 던지며 소리 지르고 인격모독성 말을 해도 부장이니까 받아들여진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쥐 잡듯이 잡아도 어르신 말씀이니 들으라고 하고 며느리니까 참으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에는 아기 낳고 바로 밭매러 갔다는 말 하면 지금이 조선시대냐며 세상이 바뀐 지가 언젠데 그런 말을 하냐는 반응이 예측이 되지만, 미국에서는 출산휴가제도가 없어서 제왕절개하고 10일 만에 돈 벌러 나갔다가 수술부위 터지는 사건도 잇었으니까... 너무나도 다른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곳에서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실제로 돌로 때려죽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적극적으로 친절함을 베푸는 것 같다.
요즘에는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Social Justice 에서 Wokeness 로,
Politically Correct 에서 Cancel Culture 까지...
다양성을 인정하고 느림과 모자람을 포용할 줄 아는 사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여전히 고민된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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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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