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성수동 핫플레이스 편집샵 투어
한국 여행의 첫날. 이 날은 나를 완전히 바꿔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셀프 진화(?) 시킨 날. 그동안은 미뇽에서 신뇽으로 변했다면, 지금은 망나뇽이 된 기분. 드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파도가 몰아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난당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망!나!뇽!
이 날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동안 내가 바랐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나 스스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해야만 했던 변화가 아니라,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 했던 의식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래, 별 거 아니었을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걸 다 알면서도, 옛날 같았으면 나는 강남 한 복판에서 주저앉아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그 순간에는 엄청나게 충격이었다. 심장이 빨라지고 숨이 턱 막히는 그 느낌, 눈앞이 하얘지고 귀가 먹먹 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느낌...
하지만 바로 생각을 다시 했다. 오늘 이 사건 때문에 일주일밖에 없는 한국 여행을 망칠 것인가? 1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우는 소리 하면서 부정적인 기분을 전가할 것인가? 한국에서 밖에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다 포기할 것인가? 이 사건이 나에게 그만큼 영향을 주도록 놔둘 것인가?
내가 원하는 한국 여행은 무엇이었나? 나는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가? 여행 와서 설레고 기대되는 기분을 유지하고 싶은가? 앞으로 일주일 동안 계획한 일들을 재미있게 웃으며 지내고 싶은가? 잘 추스르고 남은 시간 최대한 행복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가?
현실은 이렇게까지 이성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오열타임 한 번 하고, 나를 잘 알아주는 친구들에게도 우는 소리 해보고, 남편에게도 전화해서 징징거려 보고, 인스타 스토리에도 올렸다. (티는 다 냈구나... 민망쓰 ^^;) 그리고 내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이 날 내가 느꼈던 감정과 취했던 태도가, 그리고 그 후의 한국 여행이, 내 인생 전반에서 큰 교훈이 되어줄 것 같다. 내가 스트레스받았던 사건이 있었더라도, 그 감정을 잘 소화한다면 충분히 좋은 하루를 보내기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상황을 경험했고 정말 신나는 여행을 보내고 왔기에,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
내 인생에서 나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있었더라도, 그 감정을 잘 소화한다면 나는 충분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나의 감정의 폭이 넓어져 타인을 더 잘 공감할 수 있고, 나의 이해의 폭이 깊어져 상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커져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내가 실제 그렇게 경험했기에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주 작은 마음가짐의 변화이지만 내 인생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을 잊지는 않았다. 다만 이 일이 장애물이 되어 나의 행복을 막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잘 생각해 놓고, 그대로 실천할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되든... 결국에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그나마 금방 추스를 수 있었던 남편의 무관심(?) 덕분이었다. 내가 어떤 일에 일희일비하며 안달복달할 때, 남편은 항상 한결같이 존재한다. 조용히 들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질문을 하기도 하고, 정말 이상한 말을 할 때도 있는데, 예전에는 남편의 반응이 도움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가 말이 안 통한다고 입을 닫아버리거나, 배우자와의 대화를 단절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내가 깨달은 점, 사실은 남편이 위로도 안 되는 말을 한다고 느낄 때마다, 나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바로, 내가 원하는 위로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끊임없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어떻게 위로받고 싶다고 말하면, 남편은 대부분 최선을 다해 위로해 주었다.
이 날도 이런 일이 있었다며 투정 부렸던 나에게 안 됐다고 “암 쏘리 투 히어 댓 허니 ㅠㅠ” 한마디로 답변해 버리는 남편 덕분에 말문이 턱 막히며 상황파악이 됐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내가 아무리 징징대고 하소연을 해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일.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준 게 위로였을까. 나중에 남편은 전화가 끊겨서 무슨 소리하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그냥 이런 상황이 있었다는 걸 공유하는 대화? 나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대답? 해결책을 원한 건 분명 아니었으니까... 내가 남편에게 점점 적응해서 저 한 마디에도 위안을 느끼는 걸까? 친구들 가족들에게 이미 많은 위로를 받아서 저 한마디로도 충분해진 걸까?
우리는 누군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에 그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오로지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상처받을 일 자체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미연의 사고나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내가 겪어봐서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상대를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기도 하며, 상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상대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내가 아파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인정받고 싶기도 할 것이다.
같은 크기의 사랑으로, 상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기만 하기도 한다. 상대가 상처받아도 곁에 있어주고, 때로는 울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준다. 상대가 길을 잃고 헤매어도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고, 길 한 복판에서 춤을 추더라도 곁을 지켜주고, 주저앉아 울더라도 같이 앉아준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사랑이다. 상대가 스스로의 인생을 찾도록, 정답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도록 지켜봐 주는 것. 상대를 믿는 것.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아이가 처음으로 걷기 시작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시키도 하지만 신나서 뛰어가는 아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 걸을 수 있도록 안전한 길로 유도하고,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같이 탐색하며, 넘어져서 약간의 상처가 나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넘어질 것이고 또다시 일어나 걸어 나가야 하니까...
물론 우리 남편이 이런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대화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만... 남편은 그냥 한결같은 사람이다. 감정적으로도 안정적인 사람.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곁을 지켜줄 사람.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해 줄 사람... 그래서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게 에구 안 됐다 하는 대답을 듣는 순간, 그게 나에게 엄청난 위로가 된 것 같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무슨 일을 망쳐도, 남들만큼 못해도, 그래도 그렇게 나를 버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불안했던 내가 안정적으로 변하면서, 이 날도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친구를 만나서 요즘 핫플레이스라는 성수를 갔다. 그리고 요즘 트렌드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함 ㅠㅠ 특히 빈티지샵은 거의 우리 시댁인 줄 ㅎㅎㅎㅎㅎ 티비에 나올 것 같았던 편집샵들은 진짜 특이했다. 브랜딩이라는 건 이렇게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게... 최신 유행인가요...? 예약번호가 기백번이 넘고, 대기시간이 몇 시간이나 된다고요...?
어젯밤 늦게 도착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시차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났더니, 성수에서 눈 풀릴 정도로 피곤했다 ㅠㅠ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
천천히 가자
한 걸음 씩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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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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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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