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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09. 2023

사과도 안 하는데 어떻게 용서해요?

심정중심주의 : 그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야?








어떻게 사과할까?


사과한다

-> 뭐가 미안한데? 네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지?

설명한다

 -> 미안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반성한다

 -> 그게 반성하는 사람 태도야?

운다

-> 뭘 잘했다고 울어?

시정한다

 -> 이번 한 번으로 네가 바뀌겠어?

더 잘한다

 -> 그렇게 할 줄 알면 진작 하지 그랬어!




제게 가장 어려운 관계는 사과를 하는 또는 받는 대화였습니다.


아마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 있으셨을 거예요. 학교에서 선생님께, 가정에서 부모님께, 회사에서는 상사께, 또는 사회에서 친구나 연인에게... 아무리 사과를 해도 나의 진심을 의심받고 끊임없이 잘못을 지적받은 경험이요.


그런데 제가 반대의 입장이 됐을 때, 단번에 사과를 받기에는 마음이 아직  풀리지 않아 심술이 날 때도 있었어요. 이렇게 넘어가게 되면 또다시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 내가 상처받을까 봐, 상대가 얼마나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지 시험하게 되죠.







심정중심주의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한국인만의 특성 중 제게 가장 큰 깨달음을 주었어요.  


심정주의적 특성은 인간관계나 사회적 사건에서 사람을, 특히 사람의 마음을 중요시하는 심리적 특성을 담고 있다. ... 한국은 행위보다 마음을, 그 행위의 진의를 더욱 중요시한다.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내 마음을 공감해 주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이전 글들에서 설명된 관점의 차이와 관계주의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어요.




타인의 시선으로,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나의 내적인 감정에 외부에서도 정당화를 해주길 바라게 된 것 같아요.


우리의 존재를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확인하기에

나의 존재를, 나의 영향력을 재확인받을 수 있기를 원할지도 몰라요.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을 해준다고 믿으니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어떤 선택인지 알려주고 싶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는 넓은 시야를 가졌기 때문에

행위 자체보다 왜 그렇게 했는지 의도를 더 중요하게 보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거죠.




서구 사회와 동양 사회의 사과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구 사회에서 사과는 일반적으로 원인규명과 설명이 들어간다고 한다. 즉,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내용이 사과의 주를 이루고,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이해를 구하는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 특히 한국 사회의 사과는 정서적 공감, 슬픔과 보상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우리 사회에서 왜 사과할 때 정서적인 슬픔과 눈물이 더해져야 진심으로 느껴지고, 같은 입장이라는 표현이 중시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또한 사과를 할 때 원인이나 내용의 잘잘못을 따지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무조건적인 사과를 더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사건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바라보는 경우에는, 전후 사정이나 인과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미래의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또는 못하고, 단순하게 판단하게 되죠. 그래서 자신이 어떤 행동(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당시에 상황이 어땠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자신은 이런 결과를 초래할 의도가 없었다


정도로만 설명하는 사과도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확장된 범위로 상황파악을 한 경우에는 전후사정을 다 인식하고 있어서, 정답이라 여겨지는 행동 할 수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안 하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래서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는데 계속 상황설명만 한다면 그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필요하다면, 상대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어요.




서양에서는 보통 행위 자체를 중요시하는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사과보다는 얼마나 진심으로 반성하는지가 중요한데요.


여기서 문제는... 사과해야 하는 당사자가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되어도 진심 어린 사과가 강요된다는 사실입니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과를 해야 진심 어린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한 사건에 대한 사과문이 국문과 영문으로 동시에 게시됐던 적이 있었어요. 그 사과문에서 문화차이가 느껴졌던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 외국인 분께서 올린 (2차) 사과문에는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요.


특히, 그 사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과

자신이 느꼈던 혼란과 두려움, 무기력함, 고립감 등의 감정을 호소하였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데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 했으나 한국 정서와는 뭔가 미묘하게 결이 달랐던 것 같아요.


동일 사건에 대해 한국인 분께서 올린 (2차) 사과문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피해를 줬는지, 그리고 반성한다는 말을 반복하였어요.


둘 다 처음 올린 사과문에서 비난을 받자 수정해서 올린 사과문인데도 약간의 문화 차이가 느껴져,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용서할까?


심정중심주의의 연장선에서 볼 때 한국에서 용서라는 행위가 발생하려면, 상대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정서적 충족이 선행해야지만 가능합니다.


여기서 정서적 충족은, 사과를 받는 입장이 만족할 정도이기 때문에 개인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어요.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기준에 대한 판단을 할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선행조건은 그 정도가 상대가 사과하고 반성한 것뿐만 아니라, 상대가 이후 특정 기간 동안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동반합니다. 개별적인 사건의 해결이 아닌, 인생 전체적 범위에 걸친 일련의 사건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진심에 대한 판결이 더욱 엄격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용서도 그만큼 더 어려워 지고요.




용서에 대한 인식에도 문화차이가 상당합니다. 제가 미국 서포트 그룹에서 배운 용서의 의미가 저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주었어요.


용서란 내가 어떤 삶을 살아나갈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용서함으로써 나의 슬픔, 절망, 판단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용서란 스스로를 치유하는 행위이며,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용서란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도 그 사람의 죄를 벌하거나 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미국 재판에서 피고인을 용서하는 유족, 뉴스에도 여러 사건들이 소개되었어요. 처음에는 저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요. 지금은 조심스레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봅니다.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재한다면, 어떤 사건이 (그것이 아무리 비극적인 사건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용서를 통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혐오와 분노에 휩싸이기보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슬픔도 승화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죠.




사과를 하고 용서를 하는 행동에도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역시 상대만의 결정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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