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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06. 2023

내가 떠나온 한국, 응답하라 2004

외국 나가면 한국 사람 조심하라는 말









중 둘을 묶는다면, 무엇과 무엇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원숭이와 판다, 원숭이와 바나나, 판다와 바나나라는 보기 중, 동양인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다는 관계성을, 서양인은 원숭이와 판다가 동물이라는 범주를 우선적으로 봤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은 원숭이와 판다를 묶었습니다. 둘 다 동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양인들은 원숭이와 바나나라고 했습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니까요. 즉 서양인들은 '둘 다 동물이다'와 같이 범주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지만 이런 성향이 동양인들에게는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동양인들은 '원숭이는 바나나를 먹는다'와 같이 관계에 의해 연관을 짓는 성향이 더 강했습니다.

리처드 니스벳 | 미시건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외국 


나가면 한국인 조심하라는 말, 우리가 어렸을 때 해외에 거주하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객관적인 평가는 어렵겠지만, 한국인 조심하라는 말이 분명 한국인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기꾼은 나라 국적 인종 언어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에든 있잖아요. 사실 비율로 보자면 외국인 사기꾼이 더 많을 거예요, 단지 아직 내가 당하지 않았을 뿐이죠.




한국인 조심하라는 말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을 너무 그리워해서 한국 사람들에게 마음과 정을 쉽게 줘버리는, 그런 나를 조심하라는 말이라 해석할 수 있어요. 


한국인 믿지 말라는 말은 사실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덜컥 믿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었어요. 




내가 한국인에게 더 큰 상처를 받았던 이유는, 사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그 사람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나의 마음이, 그 사람과 우리의 관계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니까.

한국인이라면!

설마 한국인이... 

같은 한국인인데 어떻게!!!


이런 마음이 들면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도 더 크게 나에게 다가오기도 하니까요. 




저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바라왔어요. 


내가 나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

정서를 공유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그래서 서로에게 공감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꿈꿨어요.


고유하고 본질적인 정체성,

사람에게 가장 두드러진 눈에 띄는 특징,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서도 바뀌지 않는 한 가지,

내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정체성이 한국인이었으므로, 

계속 한국 모임을 찾고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도 했어요.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나에게 그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는 사실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학교를 다닐 때에도 같은 과, 같은 수업을 수강하는 외국인 학생들보다, 다른 과 한국인 학생들과 더욱 가깝고 친하게 지내거나,

직장을 다닐 때에도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업무를 함께 맡은 외국인 동료보다, 다른 부서에서 전혀 다른 업무를 하고 계신 한국인 직원과 더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도 해요.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관계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고 싶었어요. 나의 의지가 아니었던 해외생활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한국사회에 자연스럽게 융화되길 원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제게 칭찬을 해주면 나를 깎아내리며 되지도 않는 겸손을 떨었어요. 사실 나는 너와 같은데 단지 환경이 좋아서 그랬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말이에요. 


아, 제가 석사 복수학위로 입학해서요. (GRE 보고 정시 입학한 사람들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영문과 졸업해서요. (전공도 따로 있고 언어도 잘하는 사람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입학해서요. (수능 봐서 정시로 입학한 학생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고등학교를 해외에서 외국인학교로 졸업해서요. (해외 연수 없이 한국에서만 공부하면서 영어 잘하는 학생보다는 부족하죠.) 


나는 경쟁자가 아니며 우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요? 

사실 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실력이 터무니없는데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요?


무의식적으로 저의 부족함을 드러내야만 한다고, 내가 나를 낮춰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렇게 변명할수록 내가 다른 길로 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 같아요.




이민자


들의 사고방식은 이민 올 당시의 한국에 머물러 있다고 해요. 이민 온 뒤의 한국이 얼마나 발전하고 변화했는지를 모르시는 거죠. 한국 전쟁 직후, 공화국 시절, IMF 경제위기 등의 역사를 현재처럼 기억하는 분도 계세요. 


내가 처음 해외 거주하게 된 년도는 2004년이에요. 그 후로 한국과 해외를 왔다 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어요. 어쩌면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기를 거부했던 것일 지도 몰라요.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어쩌면 저도 Y2K 세기말 감성에 머물러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혼자 겉도는 느낌을 계속 지울 수 없었어요. 


동네에 가게가 바뀌고,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강산이 바뀌어도 두 번이나 변했을 세월이에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인생의 큰 변화를 모두 겪은 친구들...


내가 친구들의 인생에 단계별로 함께 발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매번 지름길을 가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우회해서 다른 길로 가서 그럴까? 

그 당시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했는데, 그 길을 나 혼자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 걸까? 

왜 나는 가보지 못한 길을 계속 돌아보며 그리워할까?

그리고 나는 분명 실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사랑하는데... 왜 아련한 기억 속의 그 모습이 그리울까? 




누구나 


할 법한 자아성찰일 테지만, 저는 꽤 오랫동안 방황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저를 보호하고 있었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깨고 나오면서 세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외국인 남편과 결혼하고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더 큰 문화충격을 받으면서, 우울증을 진단받고 나서 얻은 깨달음을 다음 글에서 서술해 볼게요.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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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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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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