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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06. 2023

옥중 상중 병중은 누가 정했을까?

연락 없는 애인에게 서운한 한국인의 심리








교통사고


가 났을 때, 동서양의 반응 역시 달라집니다.


중심 사건이나 중심 사물을 개별적으로 관찰하는 서양의 시각에서는 사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들만 고려하는 반면, 배경에 따라 중심 사건의 해석이 달라지는 동양에서는 똑같은 사고라도 더욱 확장된 범위를 고려한다고 합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이는 것처럼, 훨씬 더 많은 양의 인과관계를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사람이 기차나 지하철에 치였다는 사고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어요. 이런 기사는 항상 마지막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얼마나 지체됐는지, 열차 운행이 얼마나 지연되었고 중단되었는지를 언급하더군요. 미국의 기사였다면 그런 정보는 절대로 언급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비극적인 사고였다. 사람이 죽었다'와 같은 정보만 언급될 뿐이죠. 하지만 일본 기자들은 기차의 연착과 같은 모든 간접적인 영향을 고려합니다.

윌리엄 매덕스 l INSEAD 조직행동학과 교수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은 분명 능력입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과거의 영향을 받아 현재가 발생하고 미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나비효과처럼, 아주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로 인한 결과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헤아릴 수 있다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겠죠. 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할 수도 있고,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큰 맹점이 숨어있습니다.




첫 번째


맹점은 개인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대로, 이성적으로만 돌아가지는 않아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상대에게 또는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지 미리 계산하고 행동하는 경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훨씬 더 큰 낙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낙담의 정도가 객관적인 상황을 볼 수 없을 만큼 커지면, 실패하기보다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예를 들어 성적이 높으면 좋은 대학에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 예상해 취직 준비를 열심히 하거나,

경제적인 준비가 돼있으면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다 생각해서 열심히 돈을 벌거나,

우리 사회에서 노오오오오오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 됐잖아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인정받는 정답도 정해져 있고,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과정들도 정해져 있어요. 맹목적인 노력이 당연하게 되고, 상향평준화와 경쟁이 기본이 되어 다른 사람보다 더 노오력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노오력하면 바라던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믿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배신감이나 낙심, 절망을 느끼게 되고, 결국 원하던 것을 포기하게 되기까지 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집, 경력, 취미, 인간관계, 건강, 외모 등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포기해 버리는 N포세대까지 등장했어요.


그러다 보니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예방적 동기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잊게 돼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돼요.




두 번째


맹점은 나에 대한 판단을 외부에 의존하는 만큼, 타인에 대한 판단을 내가 내릴 수 있다는 합리화입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불러일으키는 영향력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타인을 위해 조심하는 만큼 타인도 똑같이 나를 위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내가 남의 눈치를 보는 만큼, 남도 나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내가 남의 영향을 받는 만큼, 남도 나의 영향을 받아야 하고

내가 남을 배려하는 만큼, 남도 나를 배려해 주길 바랍니다.


물론 모두 맞는 말이긴 해요. 서로를 위하며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가 이상적이죠.




그 정도가 심할 때는 타인을 조종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타인의 의도를 내식대로 판단하고 평가해 버리고, 타인의 행동까지도 통제하려는 의도가 생겨요. 


하지만 그 방식이 대놓고 명령을 하거나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오는 타인의 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도움을 부탁하는 상황에서도,

지난번에 내가 상대를 두 번이나 도와줬고

이번에 너의 상황이 나를 도울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다고 판단되는데

네가 어떻게 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있느냐는 판단이 가능해지죠.


이런 사고방식 역시, 원인과 결과를 포괄적으로 인식하고 하나의 사건을 일련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 타인의 의도를 알 수 없고, 당사자의 의사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어요.







인과관계


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가장 잘 보여지는 부분이 연인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연락 문제 같아요. 연인 사이에 연락의 빈도를 애정의 척도라고 여기는 의견도 많아요.


애인이 연락 횟수가 적어서 서운하다는 고민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내’가 보기에, 화장실 가면서, 이동하면서, 잠깐 짬을 내서 10초도 안 걸리고 문자 하나는 남겨줄 법도 하다고 판단합니다.


“너는 하루종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어?”

“3중 (옥중, 상중, 병중) 이 아니면 연락할 수 있다는데!”

“누구는 회사 안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연락할 시간이 없다는 게 말이 돼?”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연락 한 통 남길 수 있었잖아”


이런 흐름으로 상대의 상황을 주관적인 해석으로 평가하게 되죠.




우리가 누군가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예방적 동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상황이 잦은 연락을 통해서 애정을 확인받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예방하지 않는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상황이 애정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라면 상대가 보여주는 애정 표현의 방식도 받아들일 수가 있어야 하는데,


연락 횟수라는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정답으로 정해두니 그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는 ‘자격’이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절대적이라 느껴집니다. 


화낼 수 있는 자격, 

상처 줄 수 있는 자격, 

비난할 수 있는 자격, 

먼저 지랄을 했으니 나도 지랄해도 된다는 자격, 

결혼식 참석여부로 친구를 거를 수 있는 자격, 

축의금이나 부의금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 

노후준비나 경제적 지원이 준비되어 있어야 임신이나 출산 육아할 수 있다는 자격, 

자녀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자격...




한 가지 


사건만 독립적으로 보면 상황파악이 훨씬 더 쉽겠죠. 그러면 단순하고 직관적인 해결책을 찾기도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인 가능성이 높아요. 


확장된 인과관계를 고려하다 보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해요. 


제가 남편과 다퉜을 때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라고 물었는데요,


저희 남편이 정말 모르겠다, 네가 말을 해주지 않으면 자기는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네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지 않냐, 너의 마음을 진심으로 알고 싶다는 대답을 했었어요.


아니 어떻게 그걸 모르지? 하는 마음이 울컥 들었는데, 진짜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대의 입장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확장된 시야로 사건을 바라보는 능력, 독립된 사건으로 바라보는 능력, 양쪽 다 분명한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방향, 나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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