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tal load와 weaponized incompetence
독일에서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는 남편
처음에는 직장 합격했다고 의기양양하게 입독했는데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못해서
할 수 없는 게 많아지니까
초반에 약간 향수병 왔었나 보다.
미국에서는 길도 잘 찾고 컴플레인도 잘했었는데
이곳에서는 더 자주 헤매고 정신을 길 찾는데 쏟고 있어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주위에 신경을 못 쓰기도 한다 ㅠ
컴플레인은 말할 것도 없이 의사소통이 안되므로 그냥 영어로만 꿍시렁
나는 솔직히 말하면
남편이 독일에서 깨닫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설적인 독일사람들에게 상처도 좀 받고 눈치도 좀 봤으면,
기 센 사람들과 일하면서 남의 말도 듣고
사회생활 빡세게 했으면 하고 은근히 바랐다.
우리는 결혼하고 쭉 남편의 나라에서 살면서
남편에게는 모든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환경이었고,
문화차이에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우리 결혼 초에는 나에게 팩폭 아닌 팩폭을 했던 남편이
입독 일주일 차에 심지어
다른 나라 와서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나보고 이전에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사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이야기가 이렇게 평화롭게
서로를 더욱 이해하기로 노력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귀국했습니다~ 로 끝나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럴 리 없쥬~?
한동안은 의지할 사람은 서로밖에 없으니
이 험난한 독일 생활 둘이서 으쌰으쌰 하면서
어느 날은 어려운 일임에도 성공적으로 헤쳐나가고
어느 날은 사소한 일이라도 넉다운 되는
그런 날들이었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도 겪고
새로운 조직문화와 사칙 등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괜한 불똥이 나에게 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눈 흘기는 상황들이 많아졌다.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작버튼이 눌리는 남편은
직장생활에서 이리저리 사람에 치이고 나니
본인이 과거에 무시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돼버린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에게.
반면에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초반에는 한인회도 찾아가고 아시아 마트도 찾아갔지만
미국보다 척박했던 환경에 이내 활력을 잃고
찬 날씨가 오자마자 굴로 들어가 버렸다 ㅠ
남편도 나도 처음에는 다 힘들었을 것이다.
엄청난 시련이라기보다 신발 속의 돌 알갱이처럼 아주 사소한 불편함의 연속이었기에
대단한 해결방안도 없었고 결국 시간이 답이었던 상황.
나약한 인간은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고 기대는 게 많아졌다.
독일은 진짜 신기하게
어떤 건 미국이랑 똑같으면서도
오히려 한국이랑 더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메트릭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재활용에 진심이라거나
규정이나 규칙을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거나 등등
남편은 아주 사소한 일들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기상 특보 알람이 오면 "나는 섭씨가 얼마인지 모르니까"
요리할 때는 "나는 리터가 얼마인지 모르니까"
가구를 알아볼 때도 "나는 미터가 얼마인지 모르니까"
쇼핑을 할 때도 "나는 유로가 얼마인지 모르니까"
더 나아가서는
살림살이를 살 때에도 "나는 어디서 파는지 모르니까"
청소해야 하는 데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장을 볼 때도 "나는 뭘 사야 하는지 모르니까"
똑같은 물건을 찾을 때마다 "가위는 어디 있어?"
이민 퇴행기인가...
근데 더 웃긴 건 나다.
처음에는 몇 번 대답해 줬는데,
그리고 이것저것 검색해서 대답해 줘 봤자 어차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함,
독일이 처음인 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나도 똑같이 맞받아쳤다.
"핸드폰으로 검색 한 번 해봐."
"나도 잘 모르겠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마지막에 쓰고 어디다 놨는데?"
"오븐 장갑은 어디에 있을까 한번 생각을 해 봐~ 오븐이랑 같이 쓰는 물건인데 어디에 뒀을까?"
밖에서는 호인인 남편이
미국에 있는 친구 부탁을 무리해서까지 들어주려고 하는 걸 보고
(아니 그리고 독일에 있는 사람한테 부탁하는 그 여사친은 또 뭐람? ^^)
호구남편 정뚝떨 해서 남편 편의를 봐주지 않게 됐달까...
이 내용으로도 남편이랑 여러 번 다퉜다.
너는 스마트폰 있으면서 왜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냐
내가 무슨 니 알렉사냐
네가 이런 자잘한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그 자잘한 일들을 전부 기억하고 해결하고 적용하는데 내 에너지를 다 쓰게 된다
내 뇌에도 과부하가 걸린다
그 정도는 성인인 네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 아니냐
남편은 이 사소한 게 뭐가 그렇게 부담이냐
나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짜증 내지 않는다
아, 가위는 어딨는지 너한테 절.대.로. 물어보면 안 되는 거지?
그럼 너한테 뭘 물어볼 수 있는지를 알려줘~
이렇게 수동공격적으로 교묘하게 사람을 나쁘게 만든달까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사소한 일들은 넘기는 아량을 베풀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런 걸로 그렇게 싸웠을까 싶다.
결혼 7년 차 짬바로
남편도 나도 각자의 책임은 다할 수 있게 서로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중이다.
옛날 같으면 백날 잔소리하고 남편이 안 하면 내가 대신 처리할 일들을
백날 잔소리는 하고 따로 내가 처리해주지 않는다.
남편 팩폭대로, 남편이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예를 들어, 독일에 오기 전 내가 현금 환전을 할 것이라고 알렸고,
짠돌이 남편이 시댁 주거래 은행애서 환전 시세에 대해 알아본다고 했으면
내가 대신 알아보는 건 남편이 행동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남편이 직접 알아볼 기회를 보장하자.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남편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하지만 내 잔소리에도 남편이 알아볼 리 만무했고
나는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내고 그냥 공항에서 환전했다.
남편은 좀 놀란 듯했다.
내가 그냥 환율만 확인하고 환전을 안 할 줄 알았는지
여기서 환전할 거라고? 를 열댓 번은 물어본 듯.
그러엄~ 당신이 은행에서 환전 알아본다고 했는데 '못' 했으니까 여기서라도 해야지~ ^^
우리가 손해 본 그 가격만큼 남편도 뭔가 깨닫는 게 있었을까?
독일 와서는 비자며 보험이며 전부 맡아서 처리해 줬다.
당신 비자잖아~ ^^ 당신이 해야 할 일이잖아~ ^^
유치하게도 나는 똑같은 말을 남편에게 돌려줘 버렸다.
**멘탈 로드(mental load)**란 일상생활, 특히 가정이나 가족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계획, 정리, 일정 관리, 각종 필요를 미리 예측하는 등 보이지 않는 인지적 부담을 말한다. 장보기 목록을 떠올리는 일부터 병원 예약, 앞으로 생길 일을 미리 계산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되며, 이런 부담은 종종 여성에게 불균형하게 쏠린다. 그 결과 스트레스, 극심한 피로,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
멘탈 로드는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상태, 즉 삶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뒤에서 계속 가동되는 배경 처리 과정이다. 눈에 보이는 육체적 노동과는 다르지만, 그 모든 일이 가능해지게 만드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무기화된 무능(Weaponized Incompetence)**이란 어떤 사람이 일을 잘 못하는 척하거나 일부러 서툴게 처리함으로써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고, 그 부담과 멘탈 로드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조종적 행동을 말한다. 주로 연인, 배우자, 혹은 직장 동료 관계에서 나타난다.
이 행동은 전략적 무능 또는 의도적 무능이라고도 불리며, 한쪽이 과도하게 책임을 떠안고 ‘과기능’하게 만들면서 관계나 조직 내에 불공정한 불균형을 만든다. 그 결과 분노와 피로,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쉽다. 또한 이러한 행동은 가사 노동이나 정서 노동은 여성이 맡아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에 기대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