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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Dec 27. 2023

우리는 한국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니, 왜 이렇게 고봉밥처럼 찍혔지 (그릇은 이가 나갔고)


남편의 휴일과 연동해 모처럼 늦게까지 자고 있는데 귓가에 소곤소곤 ‘요보’ 하고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아침밥 다 됐어.”


종종 주말 아침밥은 남편이 차려주곤 한다. 하지만 자는 사람을 깨운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조금 더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사람 성의를 봐서 부스스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동여매고 거실로 나오니 계란프라이와 구운 브로콜리, 비엔나소시지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언제 이런 걸 다. 채 떠지지 않는 눈으로 자리에 앉으니 김이 모락모락 한 쌀밥과 미소시루가 줄줄이 앞에 놓였다.


따끈한 미소시루를 젓가락으로 휘휘 젓고 후루룩 들이켜자 잠이 달아났다. 딸깍딸깍 어제 보다 만 경성크리처를 켰더니 쪽ㅂ...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밥 먹고 따뜻한 옷 사러 가야 해."




다음 주, 한국에 간다.

10월에도 다녀갔지만 이렇게 단기간 안에 또 가는 건 오랜만이라 가슴이 뛴다.


남편은 지금 에버랜드, 아니 판다월드 갈 생각에 정신이 혼미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날 푸바오.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큰 것 같다. 그런 그를 위해 에버랜드 이용권은 애저녁에 사두었지만, 성인이 된 후부터 계산하면 한국에 살던 기간보다 일본에서 산 기간이 더 길어져 한국어'만' 할 줄 아는 반쪽ㅂ... 가 한국어 못하는 외국인 1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무사히 도착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7살 때 아빠 차 타고 갔던 '용인자연농원'이 마지막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이니까.


그런데 사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다.

추위다.


실내 평균기온이 10도라는, 단열재 개나 준 일본 집에 사느라 겨울이 춥게 느껴질 뿐 사실 일본의 겨울 추위는 별 것 아니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의 평균기온은 가장 춥다는 1,2월도 절대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옷들이 영 얇다. 작년 12월 초에는 그 얇은 옷들을 겹겹이 껴입고 갔는데 이번에도 그걸로 될까? 게다가 남편은 귀국 다음 날 바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다. 절대로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


하여 주말 이틀 동안 한국의 겨울을 견딜 수 있을만한, '따뜻한 옷'을 사러 다녔다.

그게 외투든, 안에 입는 옷이든, 어쨌든 두터운 옷을 사자고 차로 1시간 걸리는 이온몰까지 갔는데 그런 보람도 없이 따뜻한 옷을 발견할 수 없었다. 뭘 봐도 '이걸로 -5도 이하를 견딜 수 있을까?'생각하면 하나같이 다 택도 없어 보였다.


대신에


띠로링 또로리롱

크리스마스 송 마림바 연주를 듣고, 


이게 다 얼마일까

귀여운 미니어처 장난감을 구경하고,


크리스마스 시즌 끝물이라 20% 세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끼면서 


에버랜드에 입고 가기 딱 좋을 판다와 북극곰 셔츠를 발견했고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사지는 않았다.)



뉴진스가 입을 것 같은 패러슈트 팬츠를 샀다.

하나 정도 있어도 좋을 것 같아 샀는데, 진짜로 그냥 나일론 팔랑팔랑이라 내년 5월 정도까지는 그냥 봉인하던가, 아니면 안에 '수면바지' 입고 입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또 수면바지가 들어갈 사이즈는 아니라, 아악, 결국 영하를 견딜 옷이 아닌 옷들을 촘촘히 끼어 입고 가야 하게 생겼다.


세수하러 갔다가 물만 먹고 오는 새벽의 토끼도 아니고, 이틀 동안 왜 다른 짓만 실컷 하다가 집에 왔냐고.  



아직 날짜는 남아있지만 연시 휴가가 길어지는 대신 이번 주 토일은 휴일반납이라 다시 옷을 사러 나갈 시간도 없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동네 마트에서 따뜻하다는 양말을 샀다.


남성용은 이런 그림 그려진 것이 없어서 남편이 자기 대신 사라고 부추겼다. 판친놈이 따로 없다. 혹시 다음 달 에버랜드에서 이 양말 신은 사람이 보였다면 따뜻한 격려의 눈빛을 보내줍시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물론 안 보이게 신을 거지만. 


앞으로 5일 뒤로 다가온 한국행.

우리는 과연 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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