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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Dec 29. 2023

이번엔 당면 말고 진짜를 줄게

우리 집 강아지 크로니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 나쁜 것 따윈 하나도 모르고 그저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라고 동네 슈퍼에서 온 흰둥이에게 '하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루는 바람대로 쑥쑥 자랐다. 와병으로 우리 집에 와 계시던 외할머니는 '저이는 볼 때마다 커있어' 라며 침대 아래로 손을 뻗어 하루의 성장을 도왔다. 하루에게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요양보호사 님, 간간히 사회복지사 분도 와서 하루를 귀여워해 주시고 하루는 배웠다. 


'두발짐승이랑 엮여서 나쁠 일 없다!'


그런 하루가 새끼를 낳았다. 병원 초음파에선 네 마리라 했는데 낳고 보니 여섯이었다. 순식간에 우리 집은 사람보다 강아지가 많은 개판이 되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은행 ATM에서 종이봉투를 한 장 뽑아다 빳빳한 만 엔 20장을 넣어 한국에 갔다. 면세점에서는 생전 처음 16만 원짜리 발렌타인도 샀다. 친정집 찬장에는 4년이 지나도록 아까워서 못 마시는 위스키 한 병과 아까워서 못 쓰는 출산축하금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 사이 엔화는 똥값이 되었다. (흑흑)




여섯 중 둘은 제 집을 찾아 떠났고, 나머지 넷은 정이 먼저 옮겨 붙어 그대로 같이 살게 되었다. 여름이, 아름이, 설기, 보람이라는 이름도 받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하루는 오가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람 좋아'를 배웠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하루의 아가들에게는 그런 걸 배울 기회가 없었다. 자신들이 아주 어릴 적, 술과 돈을 들고 찾아와 쉴 새 없이 똥오줌을 훔치던 수입 똥줍개(나)에 대한 기억도 잊어갔다.


3년 만에 재회한 꼬물이들은 지옥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가 되어 있었다.

서면 짖고, 움직이면 짖고,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짖고, 하다못해 눈이 마주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짖었다. 오직 하루만이 '아유 오셨어요, 먼 길 오느라 수고했는데 수고하는 김에 배나 좀 긁어달라'라고 처음 보는 오빠에게까지 애교를 피웠지만 그 외 인물, 아니 견물들에겐 아주 고된 3박 4일이었다.


외부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강한 불신감 밖에 없던 작년의 설기


과거를 발판 삼아, 지난 10월 한국에 다녀올 때에는 환심을 사기 위해 강아지 간식을 챙겨갔다. 포효하는 4마리의 케르베로스와 기대감에 들뜬 하루의 시선 속에서 간식을 꺼내며 재롱을 부렸다. 자자, 여러분. 계란이 왔... 마블큐브가 왔어요. 진짜 맛있는 마블큐브가 왔어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간식이 아니에요.


오잉 또잉

먹이로 환심을 끄는 방법은 대성공이었다.

짖을 때마다 간식통을 꺼내 보여주면 일동 주목 상태가 되는데, 모두 조용해졌을 때 '앉아'라고 짧고 강하게 말하고, 자리에 앉은 강아지부터 간식을 입안에 쏘옥 넣어주었다. 말 잘 듣는 하루가 1번이 되었고,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던 녀석도 다른 애들이 한알 두 알 냠냠 받아먹는 걸 보더니 은근슬쩍 제일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이걸 자꾸 했더니


집중력


앉으라고도 안 했는데 미리 앉기부터 시작하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없는 손에 뭘 들고 있는 척만 해도 우르르 몰려들어 '뭐 좀 없나' 확인한다.


역시 당면하면 갓뚜기지


나중엔 그냥 서서 아무거나 들고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으면 멀리서부터 도다다다 뛰어와 줄을 섰다.

쫄깃한 진짜 옛 맛 그대로. 어후~ 강아지 훈련엔 역시 오뚜기 옛날 당면 아니겠어요? 사랑해요 오뚜기 옛날 당면! (막판엔 간식이 다 떨어져서 장난만 쳤다...)


거기에 살살 빗질까지 해주고 틈나는 대로 쓰담쓰담 마사지를 해주었더니, 바로 두 계절 전에는 아주 더러운 걸 본 듯 경멸에 차 있었던 검은 눈동자들에 '따뜻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호의적인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착하고 얌전한 애들이 어째서 그렇게 잡아먹을 듯 짖었었는지 진짜 원인에 대해 아니 생각해 볼 수가 없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살갑게 대해준 기억 없이, 본능에 따라 낯선 이를 경계하고, 무리 중 누군가 짖으면 함께 짖으니 까탈스러운 두발짐승들과의 거리는 좁히려야 좁힐 수 없었을 것이다.

 

1년 전과 달리 내게도 웃상이 된 설기


원래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인데 친척들에겐 '아 그 집 강아지들 물진 않아 다행인데 어찌 그리 시끄러운지 (절레절레)' 이렇게 회자되고 있을 것이 안타깝다. 사람 귀에 시끄러우니 시끄럽다 한 거겠지만 (장금이가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 한 것처럼) 조금만 사랑과 시간을 주시면 사실은 이런 애들이에요라고, 아니 나는 이걸 브런치에 적고 있을게 아니라 이번에 한국 가면 직필편지라도 써서 집에 붙여놔야겠네.


이것이 비단 동물과의 관계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한 발짝 더 깊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1그램이라도 가져본다면 어딘가 어그러져 있는 인간관계도 다시 아귀를 맞춰볼 수 있지 않을까.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몇 년 전 요맘때, 근무시간 중에 밖으로 불러내 시비 털던 자위대 출신 모씨, 강약약강이던 모씨, 앞뒤 다르게 사람들 이간질하고 다니던 모씨, 그 사람들을 둘러싼 배경이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그들의 불안하고 나약한 마음을 내가 조금 더 이해했다면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듬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 근데 아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빡치는데...! 


...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걸로 해두자. 



강아지 이야기로 돌아가자. 

들리는 이야기로는 내가 왔다 간 다음,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애들 짖는 게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엄마 아빠 말고는 다 싫어! 미워! 하던 애들 마음에 두발짐승에 대한 좋은 기억이 생긴 것 같아 다행이고 뿌듯하기도 하다. 지난번에는 좀 친해졌다고 당면 봉지로 장난도 치고 했지만 이번엔 얘들아, 간식 더 크고 두둑하게 샀어. 이번엔 장난 안 치고, 당면 말고 진짜를 줄게. 1월 1일의 지각 산타를 잘 기다리고 있으렴. 


그런데, 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사족)



저녁밥 다 먹이고 나서 사료통을 정리하고 있으니 나를 굉장히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설기.


'우리 밥 다 먹었는데... 언니, 머리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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