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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Dec 31. 2023

아디오스, 2023

1년 중 12월을 제일 좋아한다.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이 좋고, 모두의 마음이 붕 떠 있는 그 공기감이 좋다.

올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로, 이미 터버린 올해를 공식적으로 포기해도 죄책감 없는 그런 분위기도 좋다.


항상 요맘때가 되면,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지난 1년간을 돌아보게 된다.

2019년, 2020년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 외에는 대체적으로 지난 일에 대해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올해도 특별히 다르지는 않지만 2023년만의 특징적인 감상이라면 ‘만들어가는 재미'에 눈을 뜬 한 해였다는 것?


전반기에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사진과 영상 콘텐츠 만들기에 집중했고, 후반기에는 브런치에서 활동하면서 글이 메인이 되는 만들기를 계속해 나갔다. 블로그와는 비슷한 듯 다른, 음 뭐 대부분은 일상 잡기 수준이지만 브런치에 쓰기 시작하면서 글의 구성이나 작법에도 흥미가 생겼다. 감사한 독자님들, 멋진 작가님들도 얻었다. 소설도 도전해 보고 남편이 미워지기 전에 완결내야 할 연애시절 이야기도 맘먹고 다시 달려보는 중이다.


뭐라도 해야겠어서 시작한 일들이, 아직 뭐가 되진 않았지만 긍정적인 방향의 동력이 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올해 연말에는 새로운 시도가 하나 있었다. 남편과 함께 본 한국 드라마들의 한 줄 감상평을 노트에 적고, '제1회 우리 집 드라마 어워즈'를 개최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보는 드라마들은 OTT 서비스에서 이제 서비스를 시작했을 뿐, 이미 몇 년 전 제작, 방영된 드라마들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올해의 새 드라마 상'과, '올해의 최고 작품상' 두 대상 자리를 놓고 총 22편의 드라마들이 각축전을 벌인 결과, 올해의 새 드라마 상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수상했다. 밝고 따뜻한 성장형 힐링물 일 줄 알았는데 사실은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는 묵직한 드라마였다는 점에서 큰 표 (사람이 둘이라 두표)를 모을 수 있었다.


'올해 최고 작품상'은 '미생'이 수상했는데, 재작년인가에도 한번 권유했다가 '화면 연출이 어두워서 좀...'이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기피당했는데 2년 만에 드디어 영업에 성공했다. 내가 처음 미생을 봤을 때에는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볼걸. 난 망했지만 장그래 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며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보았는데 사회생활을 멈추고 인생의 뒤안길에 선 듯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복작복작 열받고 소주 털어 넣고 그렇게 사는 것이 부럽게 느껴졌다.


전형적인 일본의 야망 없는 젊은이... 였던 남편은 그냥 기분만 대입해 본 나와 달리, 아예 장그래에 빙의되어 미생을 보는 동안은 회사 가는 것이 더없이 즐거웠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완주하고 나니 그 마법 같은 일도 '말짱 도루묵' 되었지만, 주기적으로 보면서 자극을 받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멀리 있는 나의 가족들을 좀 더 보듬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고, 가까이 있는 남편으로 인해 생긴 가족은 내 안에서 카테고리를 좀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 한 해였다. 서운해하고 울분을 느낄 시간에 내게 잘해주는 사람, 나를 귀하게 대접해 주는 사람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낫다. 좀 씁쓸한 결론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




내일, 아니 수시간 후면 새해, 1월이 온다.

뭐든 막 의욕 뿜뿜 하며 내달려야 할 것 같은 1월 걔랑은 좀처럼 친해질 수가 없다.

내년은 이래야지 같은 큰 계획도 아직 없다. 그저 그냥 하던 대로, 지속하는 한 해, 무탈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전철 안이라 많이 졸리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해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용처럼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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