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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an 07. 2024

비행기에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는 것

오늘은 1월 7일.

정확히 일주일간의 여정이 모두 끝이 났다.

항상 그러하듯, 돌아오는 길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이랬으면 좋았을 걸, 저랬으면 좋았을 걸.


그래도 어제까지만 해도 꽤 만족스러운 나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10월의 한국행에서는 함께 하지 않았던 남편까지 풀패키지로 완비된-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도 있었고, 나도 처음 가보는, 관광스폿 비슷한 곳에서 즐거운 경험도 했다. 먹을 것은 다 맛있었으며, 이전보다 사람들은 친절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은 언제나처럼 기분이 좋지 않다.

캐리어 안에 하나라도 더 넣어보려고 이 지퍼 저 지퍼를 다 열어 물건을 밀어 넣고,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도록 얼굴에 물만 묻힌 상태로 집을 나서면서 요 몇 달간 줄곧 기대하고 있었던,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반짝거리던 시간들에게서 조용히 빛이 사그라져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앞으로는 어떤 것을 이정표로 삼아 매일을 살아나가면 좋을지, 황망해진다. 마치 꼭, 오늘이 그날이 될지 내일이 그날이 될지 모르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랄까.


게다가 조금이라도 덜 걸으라고 먼저 앞장서서 걸어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아빠를 찾으랴, 헤어짐에 서운한 마음을 이래라 저래라로 푸는 엄마가 기분 나쁘지 않을 한도 내에서 적당히 치고 들으랴, 그리고 말 안 통하는 외국에 나와 갑자기 모지리가 된 남편 챙기랴 빳빳하게 신경이 곤두선다. 결국은 내가 다 챙겨야 할 사람들이다.


거기에 공항에 사람은 많고 갈 길은 먼데 예쁘지도 않은 시자들 선물 산다고 비싼 면세점에서 초조하게 시계 보면서 선물을 고르고 있자니 화딱지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직접 챙기지 못한 것이 못내 걱정되었는지 내게 돈을 쥐어주며 꼭 잊지 말고 선물을 사가라고 했다. 외국이지만 난 친정에 온 거지 여행이 아닌데. ‘아버지가 직접 뵙고 인사하러 일본 오고 싶으시대요’ 라 하면 ‘며느리를 우리가 받았으니 응당 우리 쪽에서 인사를 드리러 가야지’라며 실천도 하지 않을 말을 하며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면서 ‘3월엔 지인들이랑 패키지여행으로 한국여행 가려고’라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걸까? 가족이라서?


가족인가?


우리 엄마 아빠랑 비교되어서 이제까지 이상으로 더 안 가족 같이 느껴진다. 그런 이상한 관계를 내게 준 남편, 한국에 있던 거의 모든 순간을 정신줄 놓고 멍 때리던 남편이 ‘얄밉다’를 뛰어넘어 그냥 한도 끝도 없이 미워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이번 귀성길에 ‘이러길 정말 잘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의 효용성을 기준으로 꼽아보자면


와이파이가 되는 비행기를 고른 것.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져온 것.


그래도 긴장은 했었는지, 귀국길 비행기에서 긴장이 풀려 정신없이 자고 있는 남편에게서 핸드폰을 뺏어 브런치에 쓸 사진도 찍고, 남편을 은근슬쩍 팔꿈치로 찍어가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생각만 많아지는 것보다 하나라도 뭘 하는 것이 낫고, 또 그냥 푸념인데 이게 뭐라고 이상한 달성감이 든다. 심술도 부리기 좋고 시간도 잘가네.


정말 또 돌아오기 싫었지만

10분 뒤, 나리타에 도착한다.


강아지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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