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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an 18. 2024

초면에서 구면이 되는 과정

친정 강아지들

이번 귀국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푸바오 알현... 아차차, 부모님과 남편이 '초면'에서 '구면'이 되는 것이었다. 3월이면 결혼 2주년이 되는데 장인장모와 사위의 만남도 두 번째라니. 이렇게 1년에 한 번, 견우직녀처럼 만나다 보면 앞으로의 만남은 많아야 서른 번도 안 될 것이다. 본가가 저 멀리, 예를 들어 서울과 완도 정도로 떨어져 있으면 (또는 자주 만나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거나) 국제결혼 아니라 국내결혼(?) 이래도 매한가지겠지만, 앞으로 남은 횟수가 몇 번 정도일지 한번, 두 번, 손가락을 접어 세다 보면 어느샌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초면이 구면이 되는 것은 부모님과 남편뿐만이 아니라, 한국 집 강아지 다섯 마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 강아지 하루는 사람과의 관계성이 좋아 괜찮지만, 나머지 네 마리 (우리 집에선 '애들'로 불린다)는 경계심이 강해 잘 짖는다. 지난 10월, 내가 3주 동안 머물며 애들의 경계심이 많이 허물어진 듯하다고는 하는데 과연 그럴까?


우선 3주 동안 동고동락한 나를 기억하는지, 주차하는 사이 나만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가 끝나고 짐을 내리려는 남편에게, 아빠는 제스처로 '여기서 홈캠으로 지켜보자'는 의사소통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기쁨에 겨워 이리저리 날뛰는 강아지 한 마리'와 '이미 날 잊어버리고 새 출발에 성공한 강아지 네 마리'에 둘러싸여 '짖음 당하고 있는 나'를 관찰하는 재미를 누렸다.


우리 한때 좋았었잖아, 얘들아. 그런데... 왜...?


곧이어 집에 들어온 초면인 듯 초면 아닌 초면 같은 아저씨(남편)도 나와 별 다를 것 없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이전에 남편이 왔을 땐 간식조차 받아먹지 않고 3박 4일을 짖던 녀석들이 눈앞에서 간식을 뜯자 일시에 입을 다물고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뭐야, 뭔데, 뭐 주는건데?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은 집이라 아무리 사랑을 줘도 한 마리 한 마리에겐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사랑해 주세요, 좀 더 쓰다듬어 주세요. 그리고 손에 든 그거 나 주세요. 다견가정의 멍멍이들은 호의적인 두발짐승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고, 그들이 베풀 유익함을 눈치챘다. 


한 알 한 알 번갈아가며 간식받아먹는 재미에 짖음도 잦아들었을 무렵, 지옥의 케르베로스들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남편 마음의 온난화를 가속시켰다. 짖지는 않으나 사람을 소닭 보듯 하는 남편 본가 강아지와 달리, 일견 사나워 보이나 뚜껑을 열면 사람 손바닥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일사불란한 접객 서비스에 감동이 밀려왔을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한탄하듯 말한다.


"역시 일본에 있는 녀석들은 (와이프 포함) 제대로 된 애들이 하나도 없어."


하지만 난 봤지롱.

강아지도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있다는 걸.


얘도 싫은데 간식 보고 참은 거야, 흥.






그런 우리 집 강아지들은 다양한 포즈로 잔다.

옆으로 누워 'ㄷ'자가 되거나, 앞으로 팔을 모으고 가래떡처럼 길쭉하게 엎드리거나. 정말 편하게 잔다 싶을 때에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눕는다. 소파도 있고 이불도 깔아놨는데 굳이 맨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자는 걸 보면 흡사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애벌레를 보는 것 같다. 좁은 식탁 다리 틈새에 팔다리를 모으고 꾸깃꾸깃 누워 쪽잠을 즐기거나, 벽 모서리에 기대어 한껏 찌푸린 얼굴로 자는 녀석도 있다. 개중에는 기지개 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잠을 청하는 아이도 있고.


얘들아, 그러고 있으면 담 안걸리니?


이렇게 자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우리가 이미 구면이라는 증거다.

지난번에 왔을 땐 우리도 강아지들도 잠을 설쳤다. 그들은 항상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와 짖었다. 숨소리라도 내면 안 됐다. 자다가 콜록콜록 마른기침을 하면 2층에서 우당탕탕 뛰어내려와 네 마리가 문 앞에서 주의를 주었다. B사감이 따로 없지. 그래서 우리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강아지들이 한동안 일어나지 않고 폭면을 취했다 한다. 우리도 고막에서 피가 나올 것 같던 3박 4일을 끝내고 나니 몸살이 크게 왔는데 오죽했을까.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이 아주 안온한 6박 7일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이 왔다. 


짐을 싸기 위해 캐리어를 거실로 옮겨 펼쳐놓았는데, 제일 짖었지만 제일 애교쟁이가 되어버린 보람이는 안에 들어가기라도 하려는 듯 가방에 머리를 들이밀었고, 사람이었으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8살 하루는 큰 가방이 밖에 나오자 이별의 시간임을 직감했는지 두 가방 사이에 납작 엎드려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세 마리는 별 신경 안 쓰는 듯했는데, 나와 남편만 1층에 남아 축구를 보며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사이 딱 그 셋이 번갈아 가며 내려왔다 갔다. 말은 통하지 않으나 정다웠던 일주일을 뒤로하고 떠나려는 나와 남편, 보내려는 엄마 아빠의 아쉬운 마음들이 강아지와 교감되고, 그들 또한 우리에게 전할 것이 있어 그러했던 것이라 믿고 싶다.


삐리삐리뽀, 수신 상태 양호. 아아, 아아, 들립니까? 두발짐승? 

어, 난데, 아무래도 내일 슈우우웅 타고 집에 가나 본데 쫌 아쉽당. 조심히 가고 다음에 올 땐 마블큐브 소고기&치즈맛이랑 요즘 왕츄르 맛있다는데 다음엔 껌 말고 그거 좀 사와보고. 


예~히,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다음 날, 우리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친정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우리가 겉옷을 입기 시작하자 다른 애들과 달리, 하루는 갑자기 건넌방으로 들어가 틀어박혔다. 이별의 순간에 하루는 항상 이런다. 현관까지 나와주는 날도 있지만 그런 때에도 눈 맞춤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이면 사람도 많아야 서른 번도 못 만날 야속한 시간, 나와 하루는 앞으로 몇 번 더 만날 수 있을까. 대충 알면서도 항상 그랬듯이 하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금방 또 올게, 하루야. 잘 있어."

 

하루가 있는 방에서 나오자 거실엔 네 마리가 배웅을 하듯 어정쩡하게 서 있다. 한 마리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녕, 또 봐, 손을 흔들고 집을 나섰다. 들기름 7병과 엄마의 김장 김치가 들어있어서 올 때랑은 비교도 안되게 무거워진 캐리어와 여기저기에는 강아지 털들이 붙어 있었다. 





(사족)

 

얘네는 종종 이렇게 한쪽 손을 숨기고 엎드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묘한 밸런스
빵 굽는 강아지


알고 보니 애들 어머님이 빵 굽기 달인 되시겠다. 

이래서 애들 앞에선 찬물도 못 마신다고 하는가 봄. 


 

자는 두발짐승을 깨우지 않고, 언제 일어날지 그저 지켜보기만 하며 짓던 인자한 미소도, 이상한 잠버릇도, 한 배에서 태어난 동기간이라고 사이좋게 노는 모습도 당분간은 볼 수 없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만나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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