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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l 09. 2023

뜻밖의 새 손님

나른한 일요일 오전, 그들이 찾아왔다


종일 비가 내렸던 토요일.

비는 밤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지만, 베란다 문을 열어도 빗발이 들이치지는 않았다. 이런 날은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방 안의 불을 끄고 있으면 빗소리가 꽤 근사하게 들린다.


졸려하는 남편을 방으로 쫓아내고, 혼자 넓은 거실을 차지해 베란다문과 창문들을 활짝 열었다.

솨아아아-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 투둑투둑 바닥에 튀기는 소리.

가끔씩 들어오는 찬 바람도 기분이 좋았는데, 그 길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일요일이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지만, 휴일인데도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으니 하루를 길게 쓸 수 있겠다. 남편도 막 일어나 커피를 마시려 하길래, 그 김에 내 것도 한잔 부탁하고 어제 쓰다 만 글을 마저 쓰려 컴퓨터를 켜는데,


낯선 무언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경계경보 발령.

참새 스나이퍼는 즉각 위치로.

 

위치로!


전방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새였다.


정체 모를 새는 우리 집 참새 스나이퍼의 총부리가 자신에게 향해 있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창문 가까이의 전깃줄에 앉아 이내 자신의 배, 날갯죽지를 부리로 쪼으며 몸 단장을 시작했다. 자그마한 크기, 하얀 배, 날렵한 몸매와 갈라진 꼬리깃, 틀림없는 제비였다.


그리고 그 제비는 잠시 후에,



제 친구들을 왕창 불러 모아서는 느긋하게 털 고르기와 배변활동을 하고 저들끼리 지지배배 한참을 수다를 떨더니 그렇게 사라졌다.






도쿄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우리 동네는 공원과 신사가 많아서인지 새도 제법 많다.


아직 캄캄한 새벽녘부터 묘한 리듬감 (구-구-구구)으로 울어대는 멧비둘기 (제발 부탁이니 7시 전엔 울지 말아 줘)와 동네의 무법자 까마귀, 가끔가다 나타나 새 커뮤니티를 발칵 뒤집는 황조롱이, 나무 하나에 우르르 몰려 앉아 짹짹대는 참새, 논의 노련한 사냥꾼 백로, 공원 호수 위에 항상 동동 떠있는 회색 오리, 전철역 앞 광장에서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애교 많은 검은 턱할미새.


새(鳥) 주민이 하도 많이 살아서,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놓는 여름에는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까악 까악 찌르르 짹짹, 오디오가 빌 틈이 없다. 다섯 글자로 말하면, 좀 시끄럽다.





"그거 알아? 제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엔 집을 짓지 않는대"

"이거 전에 역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에 나온 새 이름 알아?"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이제까진 관심도 없던 (무서워하던) 새, 약간의 접점이 생겼다고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다.

바로 눈앞에서 창문이 열리고 닫히며, 카메라를 들이미는 커다란 영장류의 출현에도 그들은 겁먹은 기색도 없이 제 할 일을 계속했다. 개중에는 전깃줄을 옆으로 걸으며 제 동료에게 구애의 몸짓도 보여주던데 (차였지만) 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구글을 열어 제비의 습성을 읽고, 그 김에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새'를 검색해 그동안 본 적 있던 새, 찍었던 새 사진을 비교하며 그들의 일본어 이름을 외우고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어떤 성격인지를 읽어 내려갔다. 새로 알게 된 내용은 테이블 건너편에서 냉우동을 먹고 있던 남편에게도 알려주었다. 그 사이에도 어디선가 희미한 '짹' 소리가 들려오면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남편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새에게 빠져들어 가는군. 이렇게 찾아보다가 버드워칭한다고 산으로 올라가는 거겠지'라고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았지. 안 그래도 새 보러 가고 싶다고 막 생각한 참인데. (나는 뭘 금방 좋아한다)


이토록 재미있는 생물들이 지척에 살고 있는데 이제야 눈치를 챈 것이 아쉽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는 멧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마냥 싫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남편이 가챠기계에서 뽑아온 참새 스나이퍼도 처음으로 예뻐 보였다.


인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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