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사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소주만큼은 수입산 한국소주를 고집하는 우리 집. 그나마 초록색 병소주는 쓰레기가 많이 나와 1.8리터짜리 페트병 소주로 바꾼 지 한참 되었다. 일본에서 파는 한국의 페트병 소주는 진로에서 만든 JINRO와 롯데에서 만든 쿄게츠,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부드러운 쿄게츠 (사실상 처음처럼)를 더 좋아한다. 우리는 매주 한국 소주를 사 기분에 따라 스트레이트, 록, 미즈와리(水割り, 술과 물을 섞는 것), 오유와리(お湯割り, 뜨거운 물을 섞는 것), 오챠와리(お茶割り, 녹차를 섞는 것), 탄산와리(炭酸割り, 탄산수를 섞는 것)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주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쿄게츠를 사러 갔더니 뜬금없이 산쇼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소주 1: 탄산수 3을 붓고, 위에 산쇼를 뿌려 '산쇼사와'를 만들어 마셔보라는 프로모션 이벤트였다.
일본에서는 소주와 탄산수에 시럽이나 과즙을 섞은 칵테일을 사와라 부른다. 유자차 한 숟갈 넣고 저어 마시면 유자사와, 레몬 과즙을 짜 넣으면 레몬사와, 이런 식으로 뭘 넣어 섞느냐에 따라 맛도 느낌도 천차만별인데 조미료를 뿌린 사와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어차피 살 술이지만 호기심까지 돋아 얼른 집어 들었다.
산쇼는 7개가 들어있었다. 초록색 소주병에는 소주잔으로 딱 7잔 분량이 들어있다지.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세 잔씩 마시고 나면 딱 한잔 분량만 남아 아쉬우면 한 병을 더 시켜야 하고, 셋이 두 잔씩 마시면 또 딱 한잔 분량만 남아 한 병을 또 시키게 된다는 마법의 숫자 7. 아니 그러지 말고 처음부터 1인 1병 하면 될 것을 이건 무슨 의도로 7개인 걸까.
얼음을 가득 넣은 유리컵에 소주와 탄산수를 차례로 붓고 스푼으로 딱 한 번만 저어 섞어두었다. 너무 많이 저으면 탄산이 빠진다는 남편의 주장. 그 위에 산쇼를 탈탈 뿌렸다. 추어탕이나 마파두부에 뿌리는 산쇼가 술 위에 둥둥 떠있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호기심을 자아냈다.
사실 나는 요즘 산쇼에 빠져있었다. 때때로 내 안에서는 조미료 붐이 일어나는데 얼마 전까지는 시치미, 또 그전까지는 와사비였다. 밥 먹을 때마다 그때의 마이붐 조미료를 옆에 놓아두고 온갖 음식에 다 뿌려먹고 찍어먹었다. 지난봄에는 주말마다 마라를 먹었는데, 그것도 소스 안에 들어있는 산쇼 열매를 씹기 위해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술에 타먹을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산쇼와 소주라니, 쉽게 상상도 가지 않지만 너무 큰 기대를 해서도 안 될 것 같아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어? 이거 생각보다 괜찮다. 입안이 약간 화해지기도 하고 시큼하기도 해 그거 하나 뿌렸다고 항상 마시던 사와가 새롭게 느껴졌다. 나중에는 탄산수가 떨어져 소주 미즈와리에 산쇼를 넣어보았는데 약간 진 같은 느낌이 났고, 알코올 9%의 레몬사와에 넣어보니 -나는 실험정신이 투철함- 레몬사와의 단맛이 옅어지면서 알싸함이 더해져 맛이 더 풍부해졌다. 옆에서 한 모금 마셔본 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사이다와 진저에일의 차, 정도로 다르다나. 특이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 새로운 맛에 대한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시도해 볼 법한 조합이 아닐까.
그런데 술에 조미료를 타 마셔보려는 이 신박한 생각은 대체 누가 한 걸까. 소주도 산쇼도 아주 가까이에 있었는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 둘을 섞어 마실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이 자칭 애주가로서 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는 감기에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마시라는 민간요법이 있었지. 그것도 아니 무슨 소주에 고춧가루야, 하고 피식 웃고 넘겼는데 어쩌면 꼭 한번 해봐야 할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기왕 하는 김에 후추도 시험해 볼까. 솔티독도 있으니 소금을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 와사비 가루는?
새로운 술맛에 대한 꿈과 희망이 몽글몽글 자라나는 6월이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진로와 농심 콜라보로 나온 가챠에서 이런 걸 뽑았다. 모처럼 열린 낮술 파티에 동물 친구들을 모아 이 친구들에게도 한판 벌려줘 보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