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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Sep 27. 2024

집을 나가려고 가방을 쌌다

공복보다 더 무서운 것 (7)

"나 안 갈래. 남의 경사에 가서 시작부터 끝까지 울다 올 것 같아."

"왜?"

"말했잖아. 딸 결혼식에서 눈물 찍고 신랑 부모한테 저자세로 굴 거 볼 생각 하면 이제까지 나와 내 부모에게 하던 냉대가 생각나서 눈물이 안 멈출 것 같다니까. 보기에도 좋지 않을 거고."

"그게 그렇게 울 일이야?"

"그게 그렇게 울 일인 걸 모르겠어?"


내 수년간의 울분이 기억나지 않는 것 같으니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때 그거'부터 '이때 저거'까지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그러자 남편은 다 했던 이야기고 다 끝난 거 아니었냐고 듣기 싫어한다. 


끝나긴 뭐가 끝났나. 내가 상처받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인데.


문득,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현대 일본인들의 감각이 이런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고작 부부싸움 따위에 비교하는 것도 그렇지만, '끝났잖아, 지나간 일이잖아' 박박 우기는 것이 쏙 빼다 박았다. 누가 일본인 아니랄까 봐. 이야기하면 할수록 이제까지 나누어왔던 수많은 이야기들 -남편 원가족에 대한 고민과 분노-은 전부 다 무용지물이었음을 깨닫게 될 뿐이었다.


남편은 지금 자신의 원가족을 섬세하게 대변하고 있다. 본인도 그들의 의도를 모르면서 내게 '아닐 수도 있잖아'라고 말한다. 그들에게서 나를 지켜주겠다던 말은 불과 지난주에 했던 말인데, 그가 지키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시가 붙는 그 사람들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평화롭게 쿨쿨 자고 있을.


"もう無理だよ。別れよう。(이제 더 못 참겠어. 헤어지자.)'


새벽 세시, 감정이 피크에 다달았을 때 홧김에 이제 끝내자 하고 시부모에게 이혼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시누 연락처는 몰라서 못 보냈다. 지금 싸우고 있는 것도 저 사람들 때문이고, 저 사람들이 사라져야 이런 날도 없어질 것인데 남을 괴롭게 한 사람들은 대부분 천수를 누리고 평화롭게 죽는다. 그럼 앞으로 몇십 년을 주기적으로 이래야 한단 말인가.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당신들도 좀 같이 괴로우라고.


옛날 같으면 며느리 도리를 모르느니 뭐니 소리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 시절도 아니고 도리는 그쪽이 먼저 지키지 않았다.




슈트케이스에는 노트북과 충전기부터 가져다 담았다. 그다음은 여권과 지갑, 다음은... 거실을 돌아보는데 곰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자리를 시계에게 내어주고 벽에 기대앉은 곰인형은 반년 넘게 거기에 있었다. 딱히 껴안거나 쓰다듬어 주는 것도 아닌데, 집을 나가려고 마음을 먹자 녀석에게 손이 갔다. 남편은 같이 가챠로 뽑은 인형들과 다육이들은 어쩔 거냐고 앞을 막아섰지만 개의치 않고 곰인형을 손에 들고 슈트케이스가 있는 방으로 갔다.


동지인 줄 알았더니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시자들 앞잡이 놈, 오만 욕을 하면서 슈트케이스에 곰인형까지 넣고 나니 다음은 뭘 챙겨야 할지 막막했다.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가구들은 거의 다 내가 혼자 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고 책이며, 세간살이며, 어느 것 하나 정이 안 가고 손때가 안 묻은 게 없었다.


남편도 내게는 그런 것 중 하나였다.


흔히 하는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것' 같은 상상에 항상 일 번으로 챙기던 것이 그였는데.

이제까지 별 마음도 주지 않았던 곰인형을 데려가고, 남편을 이 집에 버리려고 한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제 원가족에게는 '해줘'만 당하면서, 아직도 그들을 감싸려 하는 팔푼이가 답답하고 한심하고 또 이상한 동정심도 들어 그 앞에 앉아 술잔에 술을 따랐다.


"마셔."


그리고 듣는지 아닌지도 모를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도 내고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때론 덤덤히 이야기하다 동녘이 밝아서야 잠이 들었다. 둘 다 한참을 울었다. 아침에 남편 엄마에게 여러 번 전화가 왔고, 남편이 받아 뭐라 뭐라 하다가 내게 전화기를 내밀었지만 '뭐, 이씨' 하고 잤다. 이혼 운운 하고 나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나한텐 이제 그냥 아줌마, 아저씨 아닌가.




잠에서 깬 것은 3시 넘어서였지만 계속 누워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남편은 결혼 전에 어떤 사람이었더라. 이렇게 자기 혈족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었던가. 


결혼.


시댁, 처가는 말이 좋아 인족(姻族)이지, 어디까지나 혼인의 부산물로 얻어진 관계다. 갑자기 짠 만들어진 관계인만큼 더 예의를 갖추어야 할 판에 왜 똑같이 '가족'이라는 핑계로, 예를 지켜야 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나누어지는 걸까. 


왜 같은 사람도 '딸 부모'였을 때와 '아들 부모'였을 때 태도가 다를까. 딸 부모는 왜 아들 부모 앞에서 죄인처럼 굴어야 하는 걸까. 존재의 정당성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일반상식은, 다 옳은 것일까.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뒤로하고 자세를 바꾸었다. 남편도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있었다. 자고 있는 건지, 나처럼 그냥 누워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깨가 작게 말려있었다. 너도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그래도 이 사람을 아직 좋아하는 것 같은데'


평소대로였다면 어깨를 쓰다듬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원가족과, 원가족을 두둔하는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결혼 전의 남편은 자신의 원가족에 대한 애착이 그리 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이러한 사람'이라 이야기했고, 그 내용은 내가 보고 느낀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남편은, 마치 목양견만 세 마리가 있는 목장에 이제 막 다른 목장에서 데려온 양 한 마리를 울타리에 풀어놓고는 '자, 다 같이 친하게 지내라. 이제부터 가족이니까' 하며 자신은 나무 그늘에 가 앉아 풀피리나 불고 있는 목동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아니, 양은 나 역시 목양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 모든 것에 '양병'을 발휘해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목동은 목양견들이 각각 약한 것을 괴롭히는 버릇이 있거나, 태만하거나, 실은 다른 목장으로 옮겨갈 생각이라 이 목장에는 마음조차 없던 것을 모른 척했다. 목동 자신이 목양견들에게 물린 것도 금방 잊어버렸다.


때때로 목양견에 물린 양이 울부짖으면, 목동은 와서 머리를 쓰다듬고 새 건초와 신선한 물을 마시게 했다. 그리고 양이 누그러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다.


문 것은 목양견인데 양의 마음 속에는 개들에게만큼이나 목동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목장이야기의 결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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