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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Sep 28. 2024

발뒤꿈치의 상처와 반창고

공복보다 더 무서운 것 (8)

은행에 가려고 전철을 탔다. 도쿄에서는 두 동네에 하나 정도는 있던 은행인데, 여기선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가장 가까운 지점은 집에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 수속에 걸리는 시간보다 이동시간이 더 긴, 배보다 배꼽 같은 여정이었지만, 마침 더위도 수그러든 참이라 가을 소풍 같은 기분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아무도 걸어 다니지 않는 시골길엔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역까지 걷는 동안, 신고 있던 스니커에 쓸려 왼발 뒤꿈치에서 피가 났다. 가방에 반창고가 들어있어 럭키비키잖아 했는데 반대쪽도 쓸렸다. 반창고는 더 없었다.


럭키비키인 줄 알았는데 결국 언럭키비키였다.




벤치에 앉아 30분에 한대 밖에 오지 않는 전철을 기다리며, 반쯤 뚫려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파랗게 개인 하늘에 몇 개인가의 구름이 무심하게 동동동 흘러가고 있었다.


고요하고, 세상만사가 덧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내 마음처럼.


배우자와의 연을 내려놓을까 생각하니 그 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어린아이의 새된 목소리도, 역사 안을 푸드덕 날아가는 비둘기도,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전철 문도. 평소였다면 하나하나 자극이 되어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풍경들이 마치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 같아 보였다.


자꾸 떠오르는 시가 구성원들에 대한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같이 굴었든 가좆같이 굴었든, 오늘은 그냥 아줌마, 아저씨, 그들을 똑 닮은 젊은 여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저기, 승차번호가 표시된 곳에 무리를 지어 떠들고 있는, 모르는 사람 무리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존재.  


시가 사람들과 며느리의 관계는 억지로 붙여놓은 가짜 갈빗살이라고, 그러니 더는 함께 붙어있으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 역시 나의 마음을 다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머리로 생각하고 다짐하는 것과, 가슴에 와닿는 감정을 느끼는 것의 차이는 크구나, 느꼈다.


새삼.




나와 남편은 참 많이 비슷한 사람이다.

적당히 두리뭉실한 성격이나, 웃는 포인트, 좋아하는 것, 부모의 직업이나 그들의 가족관계까지도. 한국과 일본, 자라온 환경과 정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리 진짜 잘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서 결혼까지 했고 행복했다. 하지만 잘 맞는 것은 '맞는 부분이 많은 것'이지, '가치관의 전부가 다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 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물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있다.


내가 무언가를 처음 판단할 때에는 우선 관찰부터 하고, 그렇게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결론을 내린다. 혹시나 싶어서 하는 세밀한 스크리닝을 몇 번이나 거쳐 이끌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아 그거 아니었네, 하는 일도 거의 없다. 


남편의 경우는 반대다. 먼저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할 때가 많다. 만약 명제에 반하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는 판단을 보류하고 자신의 의견을 유지하면서 그것이 참임을 도출하는 재료를 기다린다. 그것이 설령 그 어쩌다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싫어진 것이라 어지간하면 뒤집기가 어렵고, 남편은 '그냥 싫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 하는 것들이 많다.


시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한동안 쌓인 것들은, 남편의 그 절대관념을 흔들고 내 결론을 공고히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족은 아니더라도 나쁜 가족은 아니다'라 생각했던 남편은, 어느샌가 '나쁜 가족이 아니라 해서 좋은 가족이라 할 수도 없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랬던 그는, 시누와 1시간 동안 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명제를 증명할 새로운 데이터를 발견했다.


 "아, 그랬구나. 근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 말은 '역시 내 여동생은 나쁜 애가 아니었어.'라는 반증으로 이어졌다. 빠른 속도로 여동생에게 동화되어 그녀를 대변하고, 그 과정에서 내 아픔을 폄하하기도 했다. 내가 그녀와 전화를 하며 좋은 말로 이야기한 것도 '관계개선의 가능성'으로 보았고 내가 진짜 웃고 싶어서 웃었는지, 그냥 상식적인 범위의 대응이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싫으면 거기서 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


그럼 아이고아이고 곡이라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잘 맞는 사람들이잖아. 나는 부모는 둘째치고 여동생에 대해서는 나쁜 애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분명 너와도 잘 맞는 사람일 텐데 네가 오해하는 것뿐이야."


남편은 한 시간의 전화로 충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내 의견을 바꿀만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다. 좋게 생각할 만한 재료가 없다.


단지 그렇게 여동생 편을 들고 내 아픔을 무시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내 부모가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채 말할 수도 없고, 제각기 힘든 것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에게도 터놓을 수 없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줄곧 보아왔으니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던 남편도 보려 하지 않는 내 마음의 상처는 아물기는 커녕 점점 더 덧나고 있었다.




신발에 발뒤꿈치가 쓸려 상처가 났을 때에는 빨리 반창고를 붙여 더이상 쓸리지 않도록 상처를 보호해야 한다. 그냥 놓아두면 쓸린 상처에서 피와 진물이 나 더 큰 상처가 생긴다는 건 각자의 경험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까지는 무례한 시부모와 이기적인 시누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때문에 우리 부부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 억울했다. 남편 역시 '우리끼리는 싸울 일도 없는데 우리 부모와 형제 때문에 싸움거리가 생기는 게 안타깝다'라고 했다.


하지만 싸움거리가 된 그들이 더 이상 싸움거리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아파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처음 상처를 입힌 것은 시가 사람들이지만 상처를 덧나게 한 것은 그들의 무례를 더는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나와 그런 나를 구슬려 어떻게든 받아들이게 하려는 남편이 되어버렸다.


제때 처리하지 못한 갈등은 잘잘못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 결국 부부 두 사람의 문제로 옮겨오고 마는 것이다.


아직 아물지 않은 발뒤꿈치의 상처가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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