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보다 더 무서운 것 (9)
하루종일 누워 생각에 잠겨있던 그날 저녁.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그가 그의 원가족에게서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도 내가 자신의 원가족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자꾸 희망을 보려고 할까.
몇 번이나, 왜 자꾸.
'여기 있었네.'
슈트케이스 맨 앞 지퍼를 열자 한참 찾고 있던 교통카드 케이스가 나왔다. 며칠 전에도 나오지 않아 남편 것을 들고나갔었는데, 오늘은 남편과 함께 나가야 하니 내 것을 찾아야 했다.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봐도 나오지 않던 것이 붙박이장 안 슈트케이스 속에서 나왔다. 집 나간다고 짐 쌀 때 손 닿는 대로 가방 겉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것이다.
짐은 도로 풀었다. 나를 지키겠다던 남편의 다짐이 이번에야 말로 실현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내가 없는 일상이 무섭다는 눈물 콧물이 발목을 잡았다. 단,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고 남편에게 느낀 실망감이 녹아내린 것도 아니라 아직도 둘은 서먹서먹한 채였다.
이런 때에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며 시누 부부를 만날 필요가 있나.
지금 우리 집이 엉망진창인데 무슨 개과천선을 시키겠다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부으면 속이라도 시원해질까 했는데 지금 같아선 그걸로 스트레스 발산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요 며칠 동안 시누 부부 따위, 더더욱 내게 아무것도 아닌 인물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로연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도 직접 전달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이제까지 저들이 보인 작태를 생각하면 그들처럼 똑같이 문자 한 통으로 띡 통보한다 해서 뭐가 나쁜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파란 모자를 눌러썼다. 손윗사람이면 손윗사람 값 해야지 그 애들이랑 똑같이 굴 순 없잖아. 도쿄로 향하는 전철을 기다리며 남편에게 당부했다.
"마음 같아선 분 풀릴 때까지 패악이라도 부리고 싶지만, 걔네 결혼한 지 세 달 밖에 안 됐는데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한테 나쁜 소리부터 하면서 초치고 싶지 않아. 말은 최대한 골라하겠지만 내가 말 많이 하지 않아도 되게끔 좀 도와줘. 걔네도 나보다 자기 오빠, 자기 손윗처남한테 듣는 게 더 와닿을 거고. 오늘 식사도 전부 우리가 사자. 싫은 소리 들을 거 알면서 나오는 애들인데 맛있는 거라도 먹여 줘야지."
"お久しぶり(오랜만이야)"
신주쿠 오모이데요코쵸(思い出横丁)의 한 가게에서 시누 부부를 만났다. 원래 식사를 하기로 한 가게는 다른 곳이었는데 예약시간이 20시 45분이라 시간이 약간 떴다. 여기서 딱 한잔만 마시고 자리를 옮기면 될 것이다.
"じゃあ、話はじめようか?覚悟はできてる?(그럼 이야기 시작할까? 각오는 됐어?)"
"えええ、嫌だー! しないとだめ?(에에에, 싫어-! 안 하면 안 돼?)"
맥주잔을 테이블에 놓자마자 남편이 농담처럼 말을 꺼냈고, 시누 역시 농담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이들은 내가 할 이야기를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되게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것'처럼 희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이미 남편은 원팀이 되지 않을 것임이 느껴졌다. 여긴 시끄러우니 조용한 데서 이야기하자고 하니 시누와 시누 남편의 얼굴이 일순 딱딱해졌다.
"そういえば、同棲と結婚、何か違いはありましたか?(그러고 보니, 동거와 결혼, 뭔가 다른 게 좀 있나요?)"
딱딱해진 그 얼굴들을 마주 보고 있기 싫어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 친구들은 사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거를 시작해 3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 때문에 수없이 싸워야 했는데.
맥주 한잔을 다 마실 때까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도 들어가고 '当たり障りのない(별 해를 끼치지 않는) 보통의 이야기들'을 해서 그런가 시누의 표정은 다시 좀 부드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