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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Oct 02. 2024

시누, 시누 남편, 남편, 그리고 나

공복보다 더 무서운 것 (10)

금요일 밤 11시. 집으로 가는 막차에 몸을 실었다. 운 좋게 가장 좋아하는 자리 -문 옆 구석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신주쿠 인근의 한인타운) 가고 싶었는데."


옆에 앉은 남편은 뾰로통 해 있었다. 시누 부부와 이야기를 잘 끝내고 나면, 아침까지 영업하는 한국 식당에 가 우리끼리 회포를 풀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항상 타인에게 선택권을 주어버리는 남편 성격을 알기에, 원하는 게 있으면 대체로 들어주려고 노력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신오오쿠보 같은 소리 말고 졸지나마. 잠들면 안 깨우고 나 혼자 내릴 거야."

"왜?"


남편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모르나 본데, 나 지금 굉장히 불쾌해."




다음은 나의 말에 대한 시누와 시누 남편의 대답이다. 내가 뭐라고 했기에 저들이 이런 말을 했을까.


"저는 원래 오빠와 연락을 잘하지 않았고, 더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어요. 그래서 이제까지 하던 대로 한 것뿐인데, 그래도 앞으로는 돈이라던가 이사 같은 중요한 이야기는 하도록 할게요."


"성별도 다른 남매가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게 신기하고 좋아 보였어요. 저도 형이 있지만 개인적인 연락은 일절 하지 않거든요. 정말 사이좋은 남매라고 생각했고, 제 주위에도 이런 케이스는 얼마 없어요."


더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는데 돈 이야기는 왜 하겠다는 것이며, 다른 한 사람은 왜 갑자기 이 남매의 친밀도를 설명해 오는 것인가. 둘이 하는 이야기도 다르지만, 이들의 대답 이전에 나는 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하면 엄마 아빠의 가정과 동등한 가정을 만든 거예요. 거기엔 배우자들도 얽혀있기 때문에 각자의 가정과 배우자를 존중해야 해요. 우리가 부모님에게도, 부모님이 우리들에게도, 그리고 우리들끼리도요. 오빠가 착해서 이제까지 뭐든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해도 이젠 당연하다는 듯 이거 해, 저거 해 하면서 움직이려 하면 안 되고요. 오빠와 나를 만만하게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느껴져요. 남매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겠지만 M쨩이 결혼해 와타나베로 성씨가 바뀌었듯, 오빠도 이젠 우리 집 가장이고, 내 남편이기도 해요."


나는 각 가정의 독립성과 상호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자들 일로 남편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남편은 본인들에게 직접 이야기하자고 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 상대에게 '당신의 이런 점이 불편해요'라고 밝히는 것은 자살골을 넣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내가 가진 패를 다 보여주면 십중팔구 '나 나쁜 의도로 그런 거 아니야'라고 변명할 것이고, 도리어 '나의 싫음'을 빌미로 앙심을 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직접 등판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시누에게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일본에 가족을 만들어 주어서 고마워."


원래부터 시가 사람들이 싫었던 것이 아니다. 내 뿌리가 없는 일본 땅에 가족이 생겼음을 감사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아들은 막 부려도 되는 종이고, 나는 종의 종 정도의 취급만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을 존중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세상이 변했다. 한국도 일본도. 절대 권력자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는 허물어졌고, 부부와 독립하지 않은 그 자녀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이 보편화되었다. 그렇다고 칼로 무 자르듯 가족관계가 탁 잘려나가는 것은 아니니 할 수만 있다면 모두가 하하 호호,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런 사상을 가진 한두 사람의 노력이나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누는 시어머니를 쏙 빼다 박았다. 마치 자기가 손윗사람이라도 된 듯 이래라저래라 말은 많지만 우리를 그녀의 조력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날의 대화로, 시누는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내가 생각하던 만큼의 사람이었음만 재확인하게 되었다.




"サガジガオプヌン家系 (싸가지가 없는 집안)"


언젠가 남편에게 '싸가지가 없어'란 말을 가르쳤다. 그랬더니 한동안 자신의 집에 대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사가지가오푸눈 카케이'라 부르며 응용했다. 그리고 그 집 딸은 효도의 일환으로 결혼피로연을 연다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참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을 때, 시누의 얼굴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설마 그렇게까지 상식 없는 사람이었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내게는 어떤 의미로 '상식선의 행동'이었다. 시부는 집안일을 방관하고, 시모는 아들과 딸의 결혼에 각기 다른 태도를 취했다. 나와 우리 부모는 푸대접을 받았고, 내겐 아주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에 '그 시어머니'가 자기 딸 결혼식에서 '딸 엄마'처럼 구는 모습을 보면 억울하고 화가 나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남의 행사에서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내겐 이미 전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할아버지 의형제의 환갑잔치에 갔다가 그랬다. 우리 할머니가 차려입은 낡은 옥색 한복은 롯데호텔의 호화로운 분위기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게 너무 안타까워 눈물을 펑펑 쏟다 나왔다. 작은 아빠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야, 넌 좋은 날에 와서 이렇게 분위기 망칠래?"


일가친척이 모이는 자리도 아니고, 사실혼 관계인 신랑 형 여자친구를 불러야 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도 남편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인원수 맞추기도 좋을 것이고, 전후사정을 알면 조금은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도 시댁이 생겼고,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남편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고 하니까.


그러나 시누는 '저도 시가에서 그런 소리 듣지만 신경 쓰지 않아요' 하며, 나를 괜한 것에 신경 쓰는 사람으로 몰아갔다.


내가 얼마나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골라도, 그들의 답은 벌써 나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日本の文化を知らず、怒り狂っている外国人兄嫁と困っている兄貴。

(일본의 문화를 모르고, 미쳐 날뛰고 있는 외국인 오빠 와이프와 곤란해하고 있는 오빠)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이 판의 광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손위 올케를 유치원생 대하듯 이상론만 가지고 설교하려 들었고 그게 끝나면 자꾸 화제를 돌리려 했다.


모멸감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걸 지적하지 않았고, 나를 감싸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딱 두 마디 했나?


"ほら、みんな丸く収めようとするでしょ?(봐봐, 다들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하잖아?)"

"いやぁ、難しいね。(아니, 어려워)"


누굴 위한 말이었을까.




"그럼 처음에 사진 촬영은 빼고, 식사할 때만 와주시는 건 어떨까요?"


제대로 듣기는 한건가. 신부 올케가 시모 노려보며 대성통곡하는 그림은 똑같잖아.

시누는 또다시 얼굴색을 바꾸고 차갑게 뱉었다.


"알았어요. 근데 왜 안 오냐고 부모님이 물어볼 테니 변명은 같이 생각해 줘요."

"우리가 사전에 부모님께 설명할게요. 이렇게 됐으니 그냥 다 있는 그대로...."

"절대 안 돼! 효도하려고 하는 일인데 부모님께 불편한 마음 갖고 오시게 하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에고로 하는 효도와 자기 부모 마음은 소중하고, 자신과 자기 부모로 인해 타인이 받은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가 될 리가 없었다.


그녀와 나의 효도는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남의 마음을 부정할 마음은 없었지만 자신들의 행복만 생각하고 그 외에는 눈을 꼭 감는 시누가 정말로 효를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들을 마음 없는 자들에게 더 이야기해 봤자 내 말이 울림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편을 흘끗 보았다.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멀리 나오셔야 하지만 도쿄에 소개하고 싶은 좋은 가게들이 많거든요.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뵙고 서로 긴밀하게 연락 취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시누는 2시간 동안 딱 한 번만 솔직한 자신을 드러냈다. 엄마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며 용서 못한다고 소리를 빽 지른 것이 그것인데, 나는 그녀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만한 말을 하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 벙쪄있다가 선빵 맞았으니 나도 받아칠까 하는데 시누 남편이 끼어들어 그 이후부터 눈에 띄게 계속 떠들었다. 자기 와이프 성질을 아니 아예 말을 못 하게 노력하는구나. 도중에 '모두 소중한 가족' 같은 꿈같은 소리도 했는데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게 그렇게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야.


세상 살아도 한참을 더 살고, 관계로 인한 아픔을 호소하는 내겐 하나같이 무례한 말들이었지만 쟤네는 그래도 원팀이었다.


그날 내게는 고립감과 분노, 무력감, 모멸감, 한꺼번에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몇 번이고 그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돌아와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 대신 이 화제에 대해 더 말하기를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나를 위한 아무런 액션도 취해주지 않는 남편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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