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보다 더 무서운 것 (13)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관계를 남편에게 맡기겠다고 마음먹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남편이 있는 침실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냐 원가족이냐, 고르라고!"
이런 극단적인 양자택일을 종용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드라마에서 이런 신을 볼 때마다 '어쩜 고를 수도 없는 걸 들고 와서 생떼를 부리나' 했는데 막상 나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이자 체면이고, 상식이고, 논리고 다 내던져 버리게 된다. 남편은 커튼을 조금 열어 밖을 흘끗 보더니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내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종이쪼가리를 하나하나 주워 버린 남편은 테이블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데 꾸역꾸역 시야에 비집고 들어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뭘 하고 있는 걸까. '와이프 말 안 하는 심리', '동생 만나고 갑자기 화' 뭐 이런 거라도 검색해 보고 있으면 양반이지, 아마 트위터나 읽고 있을 것이다. 한길 사람 속도 모르면서 세상 돌아가는 거 뭐 그렇게 다 알아야겠다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만약 나라면.
눈앞에 펼쳐진 아수라장을 보고 조용히 거실문을 닫은 뒤 뒷걸음질 쳐 침실로 돌아갔을 것이다. 괜히 눈앞에 어슬렁 거렸다간 불똥이 튈 테니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좀 다르다. 마치 꼬리를 말고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처럼 근처를 알짱거린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일 때도 있지만 지금은 도리어 화를 돋운다. 묵언수행을 철회하고 남편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거실에 꼭 있어야 할 이유가 아니라면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가라고. 남편은 말없이 침실로 향했고 나는 혼자 거실에 남았다. 목이 타 냉장고를 여니 차게 식힌 소주가 있다. 머그컵에 따라 쉬지 않고 꿀꺽꿀꺽 삼켰다.
속이 아리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 생긴 다툼의 90%는 남편의 원가족과 얽혔을 때 생겼다. 처음엔 남편이 효오자가 되어버렸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원인은 더 깊은 곳,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만 그들과 선을 긋는다면 우리는 꽤 괜찮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갑갑함 속에서, 시모, 시부, 시누가 차례로 우리를 쿡쿡 찔렀다. 다양한 방법으로.
앞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썩은 잎과 줄기를 도려내고 말짱한 부분을 살려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가 될 것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데 가해자인 시부모, 시누 세명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저들을 '가족'이라 여긴다. 우리가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필요할 때에만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그래도 가족이란다. 그래서 억지로 잡아 뜯어낼 수 없다면, 남편이 부조리한 관계성에 눈을 뜨고 저들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극복방법이 되겠지만, 남편이 해답을 찾기 전에 시부모나 시누에게 연락이 오면 또 그때마다 한껏 휘둘리고 말겠지.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남편은 뭘 하고 있을까. 어제 일도 '동생이 싸가지 없이 굴어서 쟤가 저런다'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속에서 갑자기 불이 치밀어 올라와 남편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걸로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참 많이 비슷하고 또 다르다. 다른 점 중 하나가 '화를 다루는 방법'이다. 정말로 크게 화가 났을 때, 한국인은 화를 외부로 터트리는 방법으로 소화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일본인들은 겉으론 평정을 가장하고 속에서는 이를 갈며 상대를 손절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보기에 일본인들은 음흉하고 속내를 알 수 없으며,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은 감정적인 사람들로 보인다.
화를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식 화냄'은 좀 무섭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인지, 다 큰 남자들 눈에서 여러 번 즙을 짜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냥 이래저래 해서 화가 났다는 것을 설명했을 뿐인데. 쫄보들 같으니라고.
아마 그 쫄보들 같았으면 울며 뛰쳐나갔을 만큼, 이날 나는 정말 많이 화가 났고, 남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앞으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어로 욕을 왕창 먹었다. 밍밍한 일본어로는 답답한 심정을 채 다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웃집에서 경찰을 불러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 네 여동생이 얼마나 무례했으며 그로 인해 내 기분이 얼마나 〇같았는지, 대체 넌 뭐 하는 〇〇길래 그러고 있던 것인지, 나는 또 왜 〇〇처럼 〇같은 기분도 다 표현하지 못하고 왔는지, 네 부모도 동생도 다 똑같은 인간들인데 이렇게 귓구멍에 때려 박아줘도 자신의 원가족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아직도 모르겠으면 판단하려 하지 말고 이제 그냥 외우라고, 내가 특별히 성질이 나쁘거나 해서가 아니라 세상 그 누구라도 그 사람들을 절대 포용할 수 없을 거라고 울부짖었다.
그 와중에 하나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남편이 울면서 뛰쳐나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인데,
내 말이 맞다 생각하는 것인가, 반박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중인가, 화가 난 것인가 뭔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정해. 이혼하던가, 네 원가족들이랑 절연하던가. 난 더 못해먹겠다."
남편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남편의 원가족이 갑자기 개과천선을 한다던가, 그런 것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은 우리 발 밑에 깔린 이 삐걱거리는 나무상자를 치우는 것이다. 그걸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는 곧게 바로 설 수 없다.
이걸 치워버리고 바로 서거나, 아니면 내가 거기서 내려오거나.
내게 있어 그 사람들은 이미 '가족'이라 부르고 서로 아껴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아무런 문제없던 가족들을 갈기갈기 해체시키는 못된 며느리'를 떠맡고 싶지 않아 주저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가족들에겐 문제가 없던 게 아니라, 이미 산재한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것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카모플라쥬 하고 있을 뿐이다.
남편도, 시누도, 자기들은 '사이좋은 남매'라 하지만, 서로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휴일이 언제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제대로 모른다. 만나면 머리 쥐어뜯고 싸움질을 하는 것은 아니니 '사이가 나쁘지 않다'를 '사이가 좋다'라고 치환하고 있을 뿐, 정말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가족의 연은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우리 가정에 해악이 되는 요소를 도려내는 선택지에는 애써 눈을 감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남편이 원가족과 쉽게 연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 안에 너무 오래 잠겨 있어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과감한 절개로 새로운 시작을 열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의 원가족들은 쉽게 짠 하고 고쳐지지도 않을 것이다.
삐걱거리는 나무 상자를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리키며 내가 묻고 있다.
같이 이걸 치우고 단단한 바닥에 함께 서 있을래? 아니면 나만 내려갈까?
이런 상황에서 절연하겠다는 말조차 못 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의지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사랑이고 뭐고 더 이상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져 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해 나가려면 나무 상자를 치워야 한다. 이 미친 나무 상자! 하면서 도끼로 찍고 불로 활활 태우는 식의 안녕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직장 옮기고, 연락처 바꾸고, 몰래 이사 가는 식의 절연이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발밑에서는 꼭 떼어내고 멀리 놓아두어야 한다.
그러한 완곡한 안녕을 획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 그러니까 무리해서 찾아가지 않는다거나, 부당한 요구를 듣고 '네네'가 아닌, '왜 그래야 하는데요?', '싫어요', '안 돼요' 소리를 했을 때, 오히려 그들이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아라'라고 격노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각오가 없이는 안된다.
"빨리 정해. 그래야 나도 언제 집 구해서 나가고 서류 언제 내고 그런 계획 세워야 한단 말이야."
아마 남편은 나를 포기할 것이다.
"할게."
"뭐?"
"솔직히 난 네가 아니라 네 마음을 100% 알 순 없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금 상태로 있는 것이 좋지 않은 거라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한다고. 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