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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Nov 02. 2023

두줄

그동안 두문불출하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두줄이면... 그거 맞지?"


세상에 이럴 수가.

하필이면 한국 집에 가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그 일이 드디어 내게도 일어나고야 말았다.


처음엔 설마설마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냥 항상 걸려오던, 고질적인 환절기 목감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목이 까끌까끌하다가 다음 날엔 기침이 나는 그 익숙한 패턴도 똑같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은 팔 마디마디가 시큰거렸다. 혹시나 싶어 콧 속을 누빈 면봉을 키트에 도킹시키자, 촉촉해진 자가키트가 느릿느릿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응 너 코로나 (& 올 때 메로나)






매일 3시간씩 만원 전철을 타고 다닐 때에도 걸리지 않았다. 역병이 돌고 나라 문이 닫힌 2020년 3월부터 지금까지, 3년 7개월을 노 코로나로 지냈다. 바로 지근거리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와도 나는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적의 슈퍼 항체 보유자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했는데 김이람 슈퍼 항체 보유설은 이로서 오피셜리 하게 ‘그런 거 아님‘으로 판명되었다.


37도 언저리의 미열에 목감기 비슷한 정도의 가벼운 증세 밖에 없었는데,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감기 기운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컨디션 난조는 아직 코로나인가, 코로나 후유증인가, 혹은 일본 와서 새로 걸린 새 감기인가, 아리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시간은 이만큼이나 흘렀고,


다 나은 지금까지도, 뭘 쓸 수가 없다.




원인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다.


오랜만에 한국 집에 가서는 너무 오래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뭘 쓰지 않으면 괴로웠는데 안 써도 괴로워지지 않는 무념무상의 마음가짐을 터득했다.) 아직 기침이 멎지 않은 채 브런치북 공모전에 맞춰 허겁지겁 옛 글들을 고치고 날림으로 새 챕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의 구림을 실감했고, 그렇게 안간힘을 썼는데도 응모버튼을 누르자마자 시계가 0:00이 되며 응모조차 하지 못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지만 요행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요행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고나니 쓰기가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


써서 뭐 하누, 어차피 구릴 거, 같은 기분이랄까.

그렇게 날림으로 만든 브런치북은,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 결국 삭제하고 말았다.


거기까지 하고 보니 이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소설도 머릿속의 스토리를 아직 다 문자화하지 못했고, 낯선 친정집에서 쁘띠 귀촌인 같은 기분으로 보냈던 나날, 한국에서 느꼈던 문화충격, 길고양이, 남편의 변화,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니의 퇴직 (난 앞으로 이게 너무 무사와요) 같은, 소소한 일상의 사건들은 얼마든지 있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까먹기 전에 글로 쪄내야 할 텐데,


찐다 한들,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에 쓸데없는 기력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무기력감이 내 손을 자꾸만 붙잡는다. 그냥 한국이나 가고 싶고, 할 수 있다면 인생 전체의 시간이나 되돌리고 싶고.


어, 이건 혹시 번아웃? (웃기지만, 불붙은 적도 없는데 타기만 함)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어서' 쓰기 시작한 쓰기.

그나마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고, 그냥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살아있는 밥솥, 움직이는 세탁기 (접기 기능 있음), 맘마 먹는 청소기가 될 것 같아서 -


푸념 한 번 털어내고 가보련다.


탈탈탈..........


이것도 쓰는데 일주일 넘게 걸렸는데,

내일은 뭔가,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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