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선거판
"山田太郎、山田太郎でございます。宜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야마다 타로, 야마다 타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종종 실종 노인의 인상착의나 쓰레기 수거일 변경일자를 마을 어귀에 설치된 스피커로 알려주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귀부터 쫑긋 기울이게 된다. 그날도 그런 안내방송인가 싶었는데 잘 들어보니 마을의 안내방송이 아니었다. 중년 여성의 청아한 목소리가 한 남성의 이름을 반복하고 있었다.
소리는 멀리서 시작되어 가까이서 들렸다가 다시 멀어져 갔다. 대충 헤아려보니 시의원 선거 일주일 전, 후보의 선거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시기다. 드디어 시작됐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는데 말하는 속도가 일정치 않고 어색한 공백도 들어있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다. 이건 녹음된 테이프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다. 후보 본인인가. 이름은 남자이름인데 혹시.
"엄마가 아들 도와서 선거활동 하는 건가?"
입에 풀칠하기 바쁠 땐 들리지도 않았던 유세활동이 새삼 새롭게 들린다. 마음이 여유로워져서일까, 단순히 한가하기 때문이라서일까. 유세활동 그 뒤편의 보이지 않는 사정에까지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이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30대 중반의 최연소 의원이라던데 혹시 엄마가? 남편이 피식 웃었다.
"저건 우구이스죠 (うぐいす嬢, 꾀꼬리 아가씨)야."
선거차에서 마이크를 쥐고 후보 이름을 연호하는 여성 아나운서를 그렇게 부른다 했다.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는 꾀꼬리와 연결지은 것이리라.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경우 '카라스보이 (カラスボーイ, 까마귀 보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쓰레기 수거일 새벽마다 까마귀 울음소리에 억지로 눈뜨는 입장에선 까마귀의 까악까악 깍깍깍깍이 후보자 이름을 기분 좋게 전달하는 이미지와 좀처럼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검은 정장 차림이 까마귀와 비슷하다거나, 잘 들리는 목소리가 까마귀 같다는 등, 작명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는 모양인데 귓전을 사정없이 때려대는 건 똑같을 테니 잘 지은 이름 같기도 하다.
그렇게 일주일째, 우리 동네는 꾀꼬리 전쟁이 한창이다. 하나 둘 늘어나는 선거차에, 야마다, 스즈키, 다카하시. 수많은 일본인의 이름들이 저녁 8시까지 거리를 떠돈다. 가끔가다 두세 후보의 이름이 동시에 들려올 땐 듣는 나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진다. 설마 차에서 내려 멱살잡이를 하진 않겠지만, 저들도 저들의 고용주를 대신해 나름의 진지한 싸움 중일 테니까. 스쳐 지나는 시선 사이엔 파지직, 스파크가 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후보가 직접 차에 타 손을 흔들고 본인의 이름을 외치는 단계에까지 왔다. 집에 온 것은 투표안내 엽서 하나뿐, 가시화된 홍보자료는 보내주지 않으니 공약이나 실적은 유권자 스스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던가, 발품을 들여 후보의 가두연설을 들어봐야 한다. 알맹이 없이 이름만 널리 퍼지는 선거유세라니 어째 본말이 전도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의원후보가 유권자에게 전해야 할 것은 정말 이름뿐일까.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전체인구의 30%를 넘는 고령화 지역에서 이름 말고 후보의 비전을 찾아보고 선거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동네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정책을 생각해 줄 꾀꼬리, 아니 그 꾀꼬리를 고용한 사람을, 이름이 아닌 신념을 듣고 뽑고 싶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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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서랍에 묵혀두는 사이 선거일이 되었습니다.
어제저녁 8시로 꾀꼬리들도 선거활동을 마감했지만 일본은 다음 달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곧이어 새로운 꾀꼬리들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