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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ug 02. 2023

여리고 강한 초록색을 기릅니다

우연한 기회로 다육식물을 기른 지 10개월이 지났다.

길렀다기보다, 저절로 자라주었다. 초보 식집사는 그저 해와 바람 쬐어준다고 창가에 놓아주거나, 가끔가다 스프레이로 칙칙 물을 뿜어주었을 뿐인데 녀석들은 묵묵히 햇빛을 받고, 바람을 쐬고, 물기에 목을 축이며 쑥쑥 자라주었다.


더 이상 원래의 작은 화분이 맞지 않아 빈 유리병에 흙을 담아 분갈이도 하고,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녀석은 이쑤시개로 버팀목도 만들어 주며 흙에 든든히 뿌리를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까지 내 손으로 해본 적 없는 것들을,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음알음 주워 담은 지식으로 이건가? 저건가? 아닌가? 하며 보냈던 나날들.


불의의 사고도 있었다.

하필 베란다 앞에 화분을 놓아두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커튼이 휘날릴 정도의 바람이 불어 들어와 그 앞에 있던 다육이를 덮쳤다. 깜짝 놀라 커튼을 들어 올리고 다육이를 보는데, 아뿔싸. 말짱한 이파리가 순식간에 세장이나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떨어진 이파리는 그냥 버리기 마음이 아파, 화분받침에 올려놓았다. 물을 줄 때마다 애도의 시간을 가지며, 두 번 다시 커튼을 풀어둔 창가에는 놓아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서서히 사그라들어 아 거기에 놓아두었지, 란 사실조차 잊혀 갈 무렵, 떨어진 이파리에서는 작은 새싹이 돋아나 있었다. 이파리 본체는 시간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색이 바래갔으니 그 안에 저장되어 있던 물과 양분으로 새 생명을 키워 나간 것이리라.



다육식물 자체가 생명력이 강한 부류라고는 하나, 결국은 식물,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자리하는 생산자다.

바람에 날린 커튼에도 이파리가 후두둑 떨어지고, 물이 많아도 적어도 시들 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약하디 약한 식물인데, 살아나가려는 강한 의지와 새싹을 틔워내고야 마는 그 에너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애들을 가시던 길 마저 가시라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다육식물용 흙을 사다 심어주었다. 이것이 지난 3월의 일.



그리고 다육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맞이하는 첫여름이 왔다.





여름에 화분을 키워본 적이 없어, 내심 마음을 단단히 먹어두었다.

예상대로 여름의 녹색활동은 녹록지 않아서, 뿌리부터 썩어 올라오는 녀석도 있고, 새싹 하나는 기어이 안녕을 고했다.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이파리가 쪼글쪼글해졌고, 그렇다고 너무 촉촉이 적셔주면 금방 잎이 노랗게 뜨고 시들어 버렸다. 화분 째 냉탕에 넣어줘 보기도 하고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으로 옮겨주기도 했지만 한눈에도 지난 봄보다 약해진 것이 눈에 보인다. 미안해, 집사가 영 부실해서.


6월 중순 (왼쪽), 8월 1일 (오른쪽)


하지만 이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6월 어느 날 발견한, 줄기를 비집고 나오던 새순이 어느새 부쩍 자라 있었다. 

처음엔 여기서 줄기까지 나와주면 얘는 다육이 아니라 작은 분재라 생각하고 나무처럼 무성하게 길러보겠다 다짐했는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성장을 보여주지 않던 녀석이었다. 이파리 상태만 확인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러는 사이에도 묵묵하고 착실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얘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여름을 지내다 갑자기 옆으로 쓰러져 말라죽었다 생각한 새싹 하나는, 아직도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말 쬐끄매서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흙 틈에 자그마한 초록색 얼굴을 내밀고 아주 가느다란 실낱같은 뿌리를 길게 뻗으며 그렇게 살아있었다. 뿌리가 바깥에 나와있으면 안 될 것 같아 흙으로 덮어줬는데, 제발 힘내서 가을을 함께 맞이했으면 좋겠다. 



두 녀석들의 고군분투를 보고 있자니, 이쪽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다.

뿌리 아래 줄기가 썩어 꺾꽂이를 위해 잘라 말려주던 이 아이는, 일주일이 지나고 상처가 꼬독꼬독해진 것 같아 이번 주말에는 다육용 흙과 새로운 화분을 사서 심어주려 한다. 정말 듣던 대로 여기서 뿌리가 나올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 여리고 연약한 생산자의 강함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 초록색은 의외로 강하다. 





다육식물을 기르면서, 때때로 생명의 신비를 마주하면서 우리 인간들의 삶과 식물의 삶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끼곤 한다.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웃자라서 볼품없어지고,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말라비틀어지고. 적정 수준 환경을 유지한다 해도, 물이 많이 묻어 금방 마르지 못한 잎은 노랗게 뜨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튼튼하기만 한 곳도 있다. 십인십색, 열 잎 열 색. 원래 자기가 가진 에너지도 다르고 환경을 극복해 나가기도 하고, 연약하지만, 또 강하고. 


앞으로 내 삶에서 정말 힘들고 고된 일이 일어났을 때, 이미 글렀다, 안된다고 생각되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에는, 이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싹을 키우고, 조심스레 가느다란 뿌리를 내려간 이 초록색을 떠올려보려 한다. 그 작은 녀석들도 견뎌냈는걸 뭐, 하며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힘들어하고 있을 그대에게도, 이 초록이론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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