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람 Aug 23. 2023

오늘은 한국풍 양닌 카브리사루에 소주 한잔 어때?

일본에서 만난 암호 같은 한글, 한국어

마트 고기코너를 지나고 있는데, 남편이 물어왔다.


"'카브리사루'가 뭐야?"


카브리사루? 그게 뭐야. 원숭이(*일본어로 사루) 종륜가? 응? 설마 여기 원숭이 고기가 있어?

눈이 휘둥그레져 묻는 내게 남편이 저걸 보라며 가리킨 손끝을 따라가자, 이것이 있었다.



카브리사루.


천천히, '카, 브, 리, 사, 루' 아주 천천히 몇 번을 곱씹고 나서야, 가브리살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눈치채고 나서야 알았지만, 배경엔 아주 옅은 회색으로 '가브리살'이라고 한글로도 쓰여 있었다.

가브리살 하면, 정육식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브리살, 갈매기살, 항정살, 그런 살자 붙는 레어해 보이는 고기 부위 아닌가. 머릿속에 어물어물 돼지 그림을 띄워놓고 근데 그게 어드메였나 생각해 보는데 남편이 가브리살 아래 쓰인 설명문을 읽었다.


'가브리살은 돼지 목심과 등심 사이 등 부분의 고기를 사용한 한국풍 야끼니쿠(*고기구이)입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선 마트에서 종종 눈에 띄는 '한국풍(韓国風)'이란 글자는 믿고 걸러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국풍이란 말이 붙어있는 것치고 한국사람 입맛에 성이 찰 만한, 제대로 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식으로 어레인지 해놓고 '한국풍'이라 이름만 붙여놓은 것이 태반이라, 차라리 '일본풍'이라고 적어주는 것이 훨씬 사실에 기반한 표기법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장바구니에 담아버리고 만 것은, 걸러야 할 '한국풍'보다도, 고기 부위 이름인 가브리살을 마치 고기구이 요리의 명칭인 것처럼, 그것도 '한국풍 고기구이 요리'인 것처럼 적어놓은 설명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테리야키 후추맛'과 '숯불구이풍 파소금맛' 두 종류가 있었는데 파소금맛을 사다 구워보았다. 일본 마트에서 자주 보이는 소금과 참기름으로 양념하고 파를 썰어 올린 조미육이었다. 이걸로 우리 동네 일본인들이 아 이게 가브리살이란 요리구나- 하는 일은 없기를 빈다. 그런 오해는 이미 삼겹살만으로도 충분하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는데 이러다가 수백 년 후의 일본에서는, '-살'이란 말이 한국풍 고기구이 요리를 뜻하는 접미사가 될지도 모른다.







다이소


일본에서 살다 보면 왕왕 이상한 한국어와 마주치는 상황이 온다.

그것은 입과 입을 통해 건너오다가 잘못된 방법으로 정착된 것이기도 하고, 번역기의 실수이기도 하고, 단순 오표기일 때도 있다.


다이소의 화장, 헤어케어 코너명이 '구성하다'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웃음보다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영어표기의 make up을 번역기로 돌린 것 같은데, 다이소처럼 해외전개도 하는 큰 회사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한다고?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화장은 어떤 의미론 '얼굴을 재구성'하는 것이니, 구성하다란 표현도 어떻게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상한 한국어는 나름 공신력을 지닌 공공기관의 현수막에도 등장한다.

어느 날, 영업처 방문 후 돌아가는 길에 본 현수막은, 경찰서와 지역 방범협회가 함께 내건 범죄신고번호 (한국의 112와 같은 것) 이용 촉진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상한 사람을봤으면110번에 잔화를 해 주십시오'


내가 보기에 제일 수상한 것은 이 현수막.

폰트도, 띄어쓰기도, 말투도, 그리고 '잔화'까지 하나같이 다 수상하다.


수상한 사람을 보면 여러분도 꼭 112에 잔화하기!




치즈 닭갈비여야 할 치즈 터커비, 양념일 것이 분명한 양닌 (한글로는 양념이라 적혀 있는데 일본어 품명 표기는 양닌이다)은 몇 번을 봤더니 친숙하게까지 느껴진다. 치즈 터커비는 꼭 저어기 서아시아에서 커다란 화덕에 구워 먹는 양고기 요리 이름 같다. 상품 측면의 표찰에는 또 어김없이 '한국풍 치즈 닭갈비'라고 쓰여 있어, 아직 먹어본 적도 없지만 앞으로 먹을 일도 없을 것 같다. 분명 일본풍으로 양닌되어 있겠지.



이쯤 되면, 마트에서 만난 '맛있다 양말'은 차라리 귀엽게 느껴진다.

왜 양말에 쓰여 있는지, 그 오묘한 초이스가 어리둥절할 뿐이지 이상한 한국어나 틀린 한글 표기는 아니니까.


종종 튀어나오는 희한한 한국어, 우스꽝스러운 한글표기는 한국어 네이티브로서 '아니야!! 틀렸어!! 이거 아니라고!' 한마디 훈수를 두고 싶어 근질거리게 하지만, 그만큼 한국사람이 일본에 많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한글이 한국스러움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이 나라에 스며들어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해, 이 미묘한 한글을 발견할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바로 이 순간, 여기서 나처럼 웃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하지만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기왕 하는 거 제대로 쫌!


매거진의 이전글 단톡방 카톡에 '딸'이 뜨면 불안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