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수행에서 마음공부로 넘어가던 무렵,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명상을 마치고 나니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조견개공”
태어나 처음 들어본 낯선 단어였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에 나오는 “조견오온개공” 의 줄임말이었다.
나는 여러 종교의 성자(聖者)들이 남긴 가르침을 존중하고 깊이 공감하지만, 특정 종교를 따르지는 않았다. 불교 경전은 이 경험 이전까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내 머릿속에 “조견개공”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오른 것이 신기하면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상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겪어온 터라, 이 경험 또한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굳이 집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몇 달에 한 번, 많게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비슷한 방식으로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단어들은 종교 용어, 고대 경전, 철학, 신화, 심지어 현대 과학과 관련된 것까지 다양했다.
“조견개공, 상락아정, 보리샬타, 미카엘, 제석천, 여실지견, 플라즈마, 해탈지견, 수태고지, 프로메테우스, 고린도전서, 호접몽, 멸진정, 카발라, 찬드라, 수심결, 유마의, 사망유희, 베단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나는 이 단어들을 억지로 기억하거나 붙잡아 두려 하지 않았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궁금함이 생기면 하나씩 찾아보며 공부했다.
단어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불교,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종교의 경전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보면서 느낀 것은, 종교와 언어와 문화는 다를지라도 결국 바라보는 방향만 다를 뿐, 모두가 같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상 후 혹은 자고 일어난 직후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나를 조용히 안내하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공부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내면의 스승이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묘한 경외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때로는 떠오른 단어를 깊이 파고들지 않고 가볍게 의미만 파악하기도 했지만, 그 의미조차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체험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깨달음이란 수행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꿈속에서,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단어 속에서도 조용히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명상 후 떠오르는 단어들을 하나의 선물처럼 받아들인다. 그 단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속 지도 위에 또 하나의 등불이 켜지곤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내면의 스승이 있다. 밖의 소음이 잦아들 때, 조용히 귀 기울이면 내면의 스승이 건네는 속삭임을 비로소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