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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근 Mar 22. 2017

○○주의보

소소한 일상을 위한, 소소한 주의보들이 주변에 왕왕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선착장의 문이 굳게 잠겼다. 풍랑주의보로 배가 뜨지 못한다고 했다. 어쩐지 아침부터 바람이 많이 불더니만. 오늘은 갈 수가 없겠구나. 눈앞에 보이는 섬. 건너편 육지 끝에 서있는 나. 꼭 가보고 싶었는데. 거긴 네가 꼭 걸어보라 추천했던 곳이었는데. 아쉬움으로 변한 기대를 꼭꼭 접어 넣어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듣자 하니 바로 옆에 오일장이 섰다 하여 가서 호떡도 먹고 과일도 먹고 국수도 먹고 막걸리도 마셨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뒹굴뒹굴 책도 많이 읽었다. 늦은 저녁엔 한 편의 영화를 선물 받았고, 여행길을 걷는 중인 사람들과 함께 보았다. 회와 맥주와 이야기는 덤. 정해진 건 없었지만 꽤나 신나는 하루였다. 풍랑주의보 덕분에.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가끔은 ○○주의보 같은 게 발령될 수 있다면 참 재밌겠다 싶다. 예를 들어, "오늘은 주변에 '걱정주의보'를 발령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아쉽겠지만 서로를 만나려면 걱정이 해결될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셔야 합니다."라든지, "내일부터 '알콜주의보'가 조금 길게 지속될 예정입니다. 간 건강을 온전히 회복 한 후 다시 만나실 수 있습니다."같은 우리 일상 속 이야기들.


서로를 만날 수 없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와 너는 서로를 더 그리워하며 스스로의 삶을 정성껏 채워내지 않을까. 내가 오늘 그 섬에 닿지 못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단, 너무 자주 발령되는 주의보는 자칫 분노로 변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소소한 일상을 위한, 소소한 주의보들이 주변에 왕왕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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