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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근 Oct 27. 2017

얼굴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아프지 않게. 너무 부끄럽지 않게.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마주했다. 가장 익숙하지만 불현듯 낯섦이 느껴지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안녕. 잘 지내고 있었니. 인사를 건네고 가만히 서서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그 얼굴을 살폈다. 찬찬히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시선을 옮겼다. 시간도 참 야속하게 빠르지. 그렇지?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이 방황하는 사이 조그만 사각의 시간과 공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그대로 남아있을 얼굴을 보면서 구석구석 켜켜이 쌓여있는 과거 추억들을 찾아냈다. 지나간 줄 알았더니 다 여기 있었구나. 깊은 슬픔에 허덕이던 어느 겨울날의 아픔은 눈썹 옆에. 너무 좋아 환호성을 지룰 수밖에 없었던 어느 봄날의 기쁨은 양쪽 볼에. 몸도 맘도 뜨거워 패기로 똘똘 뭉쳐있던 어느 가을날의 열정은 콧등 위에. 맥주 한 잔 손에 들고 길게 늘어진 여유를 즐기던 어느 여름날의 오후는 입술 아래에. 언젠가 분명히 스쳐간 날들의 애씀이. 만족이. 후련함이. 좌절이. 오기가. 인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생각했다. 사람의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얼굴일 것이리라. 수많은 사람들, 경험의 모든 시간, 감내했던 감정들이 눈빛과 미소와 표정에 들어있다. 과거는 슬며시 지나가는 것 같지만 결국 내 마음과 얼굴 어딘가에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도 지나면 내일의 어딘가에서 찾아낼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을 겸허히 보내겠노라 다짐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주문을 외웠다.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아프지 않게. 너무 부끄럽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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