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영어학원 하교 버스를 기다리며 남편과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자기 아빠가 아이스크림 쿠폰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뛸 뜻이 좋아할 아이를 상상하며
이걸 오늘 활용할까, 며칠 하는 걸 두고 볼까를
망설이는 사이 학원 버스가 도착했다.
누굴 닮았는지 눈치 100단인 딸이 내리자마자
"둘이 같이 나온 거 보니 우리 어디 간식 사러 가?”
반쯤 확신에 찬 말투로 물었다.
"아이스크림 쿠폰 쓸까 해서 나왔는데
네가 너무 좋아할까 봐 말을 안 하려고 하다가..."
남편은 말하고 있었지만 딸의 몸은
이미 아이스크림 가게 방향으로 돌아 있다.
딸의 머릿속은 3만 원짜리 아이스크림 케이크 쿠폰을
어떻게 나눠 쓸 것인지 계산하느라 분주했을 테고,
나는 그중 한 가지 맛은 꼭 사수할 것을 다짐하며
차가운 바람 사이를 지나
불빛 찬란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했다.
다행히 좋아하는 체리쥬빌레 맛이 남아
하나를 챙기는 사이,
딸은 빠르고 신속하게 단품과
아이스크림 세트를 계산하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겨울에 저렇게 차가운 게 당길까. 볼 때마다 신기하다)
그녀는 차가운 것을 계속 찾았다.
집에서도 꺼내 둔 물보다는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차가운 상태의 물을 좋아했고, 아이스음료를 마실 때면
얼음을 사탕처럼 녹여먹거나 깨무는 등
맛있는 소리를 내가며 씹어 먹었다.
집 앞에 아이스크림 무인가게가 생긴 뒤부터
1일 1개의 아이스크림을 하고 싶어 했고,
어쩌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쿠폰을 선물로 받으면
너무도 당연하게 자기 것인 양
맛을 선택하고 냉동고에 쌓아두었다.
(밥을 저렇게 열심히 챙겨주면 좋으련만)
반면 나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에는 취미가 없고
2-3년 전부터는 아이스커피도 몸에 안 맞는 듯해서
한여름이 아니면, 따뜻한 커피만 찾는다.
아이스커피를 못 마신다는 게 속상해서
몇 번 더 시도해봤지만
화장실만 자주 찾게 되고 속도 편하지가 않았다.
이게 나이 드는 값인가 싶어 속상할 즈음
"엄마도 이 맛 먹어볼래?"
딸이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줬다.
"됐어. 나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안 좋아해."
"아이스크림이 뭐가 차가워? 시원하지"
(아이스크림이 시원한 맛인가? 차가운 거 아니었어?
그래, 너는 젊어서 좋겠다...)
지켜보던 남편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한마디 보탠다.
"어려서 몸에 열이 많아. 그냥 먹게 놔둬."
이상하다. 나도 한의원에서 화병이 있다고 했는데
왜 아이스크림은 차갑게만 느껴질까?
나보다 2살 많은 남편이
차갑다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떠먹는다.
괜히 심술 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