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작가, 요즘 시간 여유가 있어요?
누가 소개를 시켜달라고 해서..."
이런 전화가 얼마만인가? 반가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차분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던 날이 기억난다.
코로나19로 대면 행사가 취소되면서
공공기관에서 온라인 박람회를 준비하는데
대행사에서 영상 콘텐츠를 담당할
작가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동안 유튜브에 올릴 10분 내외의 영상물을
정해진 주제에 맞춰 여러 편 제작하는 일로
출연자 섭외와 영상 흐름을 구성하고,
편집 후 자막 작업을 의뢰받았다.
다만, 다른 작가가 일을 하던 중에 나간 상태였고
공공기관 영상이라서 몇 번의 컨펌을 받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번거로운 과정들이었는데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 몇 가지 조건만 맞추고
덥석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내 발등을
내가 찍은 것만 같은 느낌이
불안하게 밀려왔다.
파이팅을 외치고 시작했던 촬영팀에서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터져 나왔고,
영상 문제로 수정이 반복되자
컨펌을 진행하는 공공기관에서
대행사를 압박(?)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서 나는 후반 작업에 투입돼
며칠째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더 이상 몸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작업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팀장님, 죄송한데요. 제가 다른 팀 일까지
계속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가면 제 본업인 방송 일에도 지장이 가고
프리랜서지만 며칠씩 밤을 지새우면서
대기조로 일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는 그 프로젝트를 못하게 되더라도 상관없는 말투로
아주 단호하고 확고한 태도로 통보했다.
그러자 팀장은 "당연히 작가님 마음 이해합니다.
미리 조치하지 못해서 대신 사과를 드리고요.
그래도 기관에서 작가님 영상 구성을 좋아하는데
제가 어떤 부분을 덜어드리면 될까요?" 라며
뿌리칠 수 없는 간절함과 절박함을 담아
정중하게 마무리를 요구했다.
'이게 아닌데.. 정말 못할 것 같았는데...'
분명 추가 제작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팀장님과 통화 후 나는 계약조건을 보완하고
그녀와 원팀이 되어 영상 확인과 수정을 반복한 끝에
결과물을 만들게 됐다.
물론 100% 만족스러운 영상은 아니었지만
기간 내에 영상 오픈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서로 격려했고,
다음 해에도 다시 한 번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일이 되게 만드는
팀장님의 비지니스 마인드 때문이었다.
때로는 '저렇게까지 회사를 위해 일하는 직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혼신을 다하는 것을 보며
그 대행사 대표가 부럽기까지 했다.
'팀장 한 사람이 직원 몇 명의 몫을 하니
사장님은 정말 좋겠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팀장이라는 자리에 맞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야 마는
그녀를 보며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도망갈 생각 먼저 했던 나에게,
내 일과 당신의 일에 선을 긋고 시작했던 나에게,
일의 가치와 프로정신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인연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
vs
일이 되게 하는 사람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