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못생겨서 사랑스러운 모든 존재들에게

by 김오담

오담아, 라는 말을 들으면 어딘가 불편했다. 김오담이라고 쓰여진 종이를 받아 보면 그 불편함은 더 커진다. 보면 안 될 것을 봐버린 기분이다. 남의 이름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내 이름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것은 마치 흉처럼 느껴진다. 피해의식은 어릴 적부터 나를 먹인 것들에 섞여 생각을 살찌운 모양이다. 거울을 볼 때에는 더 심해진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돌아 보며 걸어가는 것만 같아 식은 땀이 난다. 왜 사람들은 모두 나만 보고 걸을까? 나는 못생겼으니까. 뚱뚱하니까. 이 모든 게 비합리적인 생각이라며 되뇌이는 동시에 그것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느끼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어릴 때부터 통통한 아이로 불렸다. 엄마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중하지 않았다. 어차피 난 통통한 아이인걸. 못생겼지만 괜찮을거야.. 너는 괜찮을 거야. 그런데 살찌니까 먹지 마. 살찌면 안 돼. 더 못생겨져. 그래도 괜찮아.. 이러한 외모지상주의는 피해의식과 손잡아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좀먹었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무얼 해도 나의 외모에 대한 결과로 인식되었다. 그 완벽한 인과관계는 자로 맞춘 듯 들어맞았다. 짜릿하고 씁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20대 '암흑기'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딱 그 모습이었다. 저렇게 예쁜데 왜 나는 내 모습을 싫어했을까?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란 걸 부정했을까?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했다. 어릴 때에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냥 너는 너대로 예쁘다는 말을 해줬더라면 힘들었던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었을까? 모두를 원망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힘들었던 만큼 큰 선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그 무엇도 나를 재단할 수는 없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나를 대변하고 시간 앞으로 이끌 수 있다.


알을 깨고 고개를 내민 것 같다. 나를 감싸고 있던 '못생기고 통통한 아이'라는 울타리는 누군가가 엮어 놓은, 아주 낮고 약한 것이었다. 그걸 깨닫는 데에 30년이 넘게 걸렸다는 사실이 못내 억울하면서도 즐거운 기분 또한 숨길 수 없다. 이제 나는 더이상 '당연히' 외모로 평가받는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아름답고 못생겼다. 망가졌지만 예쁘다. 그깟 수식어는 아무렴 상관 없다. 이젠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 신경쓰이지 않는다. 나는 그냥 김오담이다. 이게 내 이름이다.


내게 아이가 있다면 절대로 예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참기가 어렵겠지만 그렇게 할 것이다. 그 아이는 존재 그대로 환하게 빛날 것이고 다른 사람의 말로 평가받을 수 없다. 네 이름은 김오담이야, 그냥 오담이야. 라고 말해줄 것이다. 지금도 나의 학생들에게 예쁘다거나, 귀엽다거나 하는 겉모습을 재단하는 말은 하지 않으려 애쓴다. 한 명 한 명 어찌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모른다. 그 자체로 환하다. 모두가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아름답고 못생겨서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모든 존재들에게 부탁한다. 누군가의 겉모습을 평가하지 말아달라. 당신의 말 한 마디에 한 인간의 세계가 달려 있다고 생각해 달라. 각자의 세계는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하자.


나는 더 이상 아름답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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