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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나의 적' 담배권 허가담당자의 나날 /2부

(현실 라이프)위반건축물, 근린생활시설, 그리고 전자담배에 얽힌 대접전

by 꿈꾸는인형


# 저기, 선생님도 잘못이...


본디 ‘민원(民願)’이라는 용어는 그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시민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것이다. 흔히 영조, 정조가 자주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시대의 상언(글 써서 민원), 격쟁(꽹과리 쳐서 민원)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겠는데, 자칫 민중과 괴리되기 쉬운 정부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민중을 살피게 하니,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하겠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아무리 좋은 취지일지라도, 현실에선 종종 그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애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 국가나 지자체에 어떤 요구를 하기 쉽지 않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국가와 지자체가 살기 좋게 만들어주길 바라는 건 그래서 극히 합당하겠다. 신경 쓸 겨를도 없거니와 그러라고 있는 조직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보통 담배업소의 하자를 발견하는 건 그 업소 이웃들의 힘이 크다. 길을 걷는 행인들은 해당 업소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그 인근의 이웃사촌들은 잘 안다. 그 업소로 인한 불편이 용인할 수 있는 한도를 넘었고, 거기에 대해 업소와 이야기가 잘 되지 않으면, 이제 해당 업소의 하자를 지적하는 민원으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한 건, 사실 이 이웃사촌이 업소의 하자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 업소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지자체까지 끌어오기 위해 민원이 쓰이는 경우가 잦다. 두 사람 간 분쟁에 지자체가 끼이는 셈인데, 그래서 민원을 규정대로 해소해도, 종종 다시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목적이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상언과 격쟁도 제한되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나 보다. 사사로운 일로도 난잡하게 격쟁을 거는 경우가 빈번해져서라나.



이제 건축법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자.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제7조의3 제2항은 담배소매업 신청자는 ‘건축법 등 관계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건축된 점포를 갖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략 두 가지를 고려한다. 디테일한 건 건축과에게 맡기고, ▲건축물대장에 노란색 위반표시가 붙었는가, ▲건축물대장에서 점포 용도가 근린생활시설로 잡혀있는가.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날씨는 좋았던 어느 오후. 민원이 하나 들어왔다. 내용인즉슨, 어느 아파트 상가의 마트 A가 위반건축물인데 어떻게 담배권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아파트 상가가 불법이 뜨나 싶어, 현장을 나가봤다. 확인 결과, 당초 상가 앞에 물건이 쌓여 있던 흙바닥이 사실은 높이가 있게 만들어졌던 화단이었다. 그게 마트의 상품의 진열을 위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다.



이에 마트 A의 사장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사장님, 건축물대장 등을 보면 마트 앞에 화단이 있어야 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현재 건축물대장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건축과에서 위반건축물로 규정할 여지가 있어요. 그게 확정되면, 저희로선 선생님 마트에 있는 담배권을 지정취소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담배 못 파세요.



그 즉시 마트 사장님이 찾아왔다. 나이가 지긋하신 50대 남성이셨는데, 이 건물에 발생한 문제만 해소하시면 되고, 이 부분은 건축과에 가서 문의하시는 게 더 정확한 답을 얻으실 수 있다고 한참을 말해도 계속 도와달라고 하소연하셨다. 우리 아버지뻘 되시는 분이 그러는 게 영 눈에 밟히기도 해서, 건축과로 모시고 가 불편함이 없이 일을 마칠 수 있게 도와드렸다.



건축과는 위반 딱지를 붙이기에 앞서 원상복구를 요청했고, 이에 마트는 일단 그 위에 진열되어 있던 물건을 싹 치웠다. 막상 그 모습을 보니 외관이 좀 이상하긴 했다. 화단이 너무 마트 앞에 있어, 바깥에 물건을 놓기가 마땅치 않아 진 것. 아마 그래서 그랬겠거니 싶었지만, 이건 원래부터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아니면, 번거롭긴 해도 건축물대장을 갱신한다든지.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시간이 지났을 즈음, 이 마트 건너편 건물에 신규 마트 B가 하나 들어왔다. 해당 지역이 유동 인구도 많고 상권 형성이 잘 된 곳이라, 충분히 진입할 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마트가 담배권을 신청하고 개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즈음, 민원이 들어왔다. 여기가 불법 대수선을 한 위반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이쪽의 소관을 넘어서는 부분이라 건축과에 문의해 보니, 그쪽에서 현장조사에 나갔고, 위반건축물이 맞다는 게 확인됐다. 이제 이쪽은 문제가 커졌다. 동네마트에서 담배를 못 판다는 건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규 마트가 초기부터 담배를 갖춰놓지 못했다면 어떤 파급효과가 일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사모님이 오셔서 한참을 울다 가셨다. 이것도 오래 할 짓이 못 된다.



이제 이쯤 되면, 서로 누가 자길 찔렀는지 가늠을 하게 된다. 익명이지만 익명이 아닌 민원이 각각의 마트를 타깃으로 하여 우리에게 쏘아졌다. 물건만 치우고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던 마트 A에는 더 압박이 가해져, 상품 진열에 지장을 줄 정도로 화단 조성이 이뤄졌다. 사실상 원상복구가 어려운 마트 B에는 위반건축물이라는 딱지가 붙게 더한 압박이 이뤄졌다.



여기서 하나 배웠던 건, 숫자로 나타나지 않은 우리네의 호의는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의 이익 추구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던 마트 A는 알고 보니 이런 일을 자주 겪었던 유경험자(?)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담당자를 달달 볶는 것도 불사했다, 사모님이 한참 울고 가셨던 마트 B는 이후 사장님 등이 와서 본인들이 담배권을 얻지 못하는 게 당연함에도 온갖 분풀이를 하고 갔다.



닳아간다는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누가 보면 닳아가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말 같다.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몰랐던 무지렁이가 몸으로 때워가며 사회가 만들어놓은 균형점으로 찾아가는 것. 그런 맥락에서 공무원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호의란 누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규정대로만 하는 것이겠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부족함 없이 설명을 드리되, 딱 규정대로만. 그 이상의 것은 독이다.



‘규정대로’ 해야, 저 화풀이가 딱 화풀이로 끝난다는 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건축물대장에서 위반딱지 유무를 살폈다면, 그다음으로 확인할 게 점포의 용도다. 대략 담배업소는 점포의 용도가 근린생활시설인 경우라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근린생활시설이란 ‘주거지와 인접하여 주민들의 생활 편의에 도움을 주는 건물 또는 시설물’을 말한다. 여기엔 편의점, 마트, 헬스장, 학원 등이 포함되고, 그러다 보니 담배사업법에서 명시적으로 금하지 않은 업종이 아닌 이상 다양한 업소가 담배소매업을 겸할 수 있다.



이런 사례가 있다. 제도적으론 담배업소 신규지정 시 공고를 하게 하여, 인근의 담배권 희망자도 참여하게 했다곤 하지만, 현실적으론 신축아파트 상가인 경우를 제외하곤 경합이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아마 담배권을 얻기 위해선 미리 점포를 갖춰야 하는데, 그 점포를 갖추는 데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보니 그럴 것이다.



이런 보통의 케이스와는 다르게 어느 날 경합이 하나 들어왔다. 신규 편의점 C가 담배권을 신청하였는데, 인근 업소에서도 공고를 보고 경쟁에 참여한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한데 업소가 좀 특이했다. 동네마트나 편의점 등의 슈퍼마켓이 아니라, 옷가게가 담배를 팔고 싶다고 들어온 것이다.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제7조의3은 담배권이 불가한 업소에 대해 ▲약국, 병원 등 의료시설, ▲게임장, 문구점, 만화방 등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 ▲그 밖에 시장ㆍ군수 및 구청장이 규칙으로 정하는 장소라 규정하였다. 마지막은 지자체에 따라 다르겠지만 ▲야간에 영업하거나 자주 폐점하는 영업장, ▲부동산중개소, 직업소개소 등 일반 업무시설, ▲목욕탕, 세탁소, 미용실 등 상품진열 판매가 목적이 아닌 영업장 등이 규정된다.



옷가게는 위에 명시적으로 제한한 업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나마 고려할 만한 게 위에서 맨 마지막 조항 정도인데, 옷가게도 옷이라는 상품을 진열하여 판매하고 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만 담배를 판다는 건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인 것이다. 복권방 등에서도 담배를 파는데, 옷가게에서 담배를 팔지 못할 건 뭔가. 옷가게도 근린생활시설에 들어가니, 건축법 등 점포의 용도도 딱히 걸릴 게 없었다.



다만, 조금 섬세하게 접근해야 했던 건, 이게 지금 경합이라는 것이다. 옷가게가 단독으로 신청해서 어떠한 경쟁도 없었다면, 그냥 내줘도 무방하다. 사후에 영업이 이뤄지지 않은 걸 체크한 다음, 담배권은 그때 취소시키면 된다. 그런데, 경합이 벌어진 이 상황에서, 편의점이 선정된다면 문제가 없는데, 이 옷가게가 선정될 경우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지게 된다.



담배가 편의점 매출의 30%를 책임진다는 건, 담배가 마진이 남아서가 아니라 담배를 사면서 이것저것 함께 사가기 때문이다. 세금이 많아 담배 자체로는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런데 편의점과는 달리 어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는 옷가게에서 굳이 지금 이 시점에 갑자기 담배를 팔고 싶다고 들어오는 건, 경합은 준비하되 그 진의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옷가게는 담배를 팔 생각이 없었다. 담배권 신청을 하고, 그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모르고 계셨다. 여자분이셨던 사장님은 그저 인근에서 알고 지내던 사장님이 부탁을 해서 신청만 넣었던 건데, 그 부탁을 했던 사장님은 인근에서 편의점 D를 운영하고 있었다.



앞서 주구장창 다뤘던 ‘횡단보고의 비극’으로 바로 지척에 편의점이 들어오게 된 사장님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대책을 강구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편법까지 쓰게 된 그 마음이야 십분 이해한다지만, 편의점 C 사장님 또한 입장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찌 됐건 잡아내서 지저분해지진 않았지만, 참 쉽게 가는 게 없다.



지금이야 그런 점포가 거의 없긴 한데, 옛날 건물에선 상가와 주택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점포를 반으로 갈라 손님이 오는 전면부는 상가로 쓰고, 그 후면부엔 주인 내외가 거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엔 상점에 들어갔을 때 안쪽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다가 나와서 손님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건축물대장을 보면, 점포의 용도가 ‘근린생활시설 및 주택’으로 잡혀 있다.



어느 젊은 여성분이 담배권을 신청하러 오셨다. 업종은 복권방으로 점포는 다소 오래된 상가 건물의 1층. 인근에 담배업소도 딱히 없었고, 건축물대장에도 위반딱지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점포의 용도가 ‘근린생활시설 및 주택’으로 잡혀 있었다는 것. 담배권은 근린생활시설에 부여할 수 있지, 주택에는 부여할 수 없다. 주택에서 소매점을 꾸릴 순 없지 않은가.



건축과 등에 문의해 본 결과, 두 가지 방안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근린생활시설과 주택이 명확히 분리된 게 확인된다면, 그 구분된 근린생활시설에 한하여 담배권을 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차피 지금은 주택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용도변경을 통해 ‘근린생활시설 및 주택’을 ‘근린생활시설’로 고치자는 것.



어찌 됐건 건축물대장을 손보는 작업이 필요했다. 옛날 건물이라 해도, 건축물대장이 다소 부정확했다. 실제 현장을 나가서 보니, 실제 점포의 면적과 대장에서의 면적이 불일치했고, 건축물 현황도 또한 옥상에 대한 도면만 있고, 정작 중요한 1층 도면이 없어, 점포에 대해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나름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이런저런 서류가 필요한 용도 변경보단 현황도만 하나만 추가시키면 진행할 수 있는 첫 번째 방안이 그나마 손이 덜 가겠다 싶어, 사장님께 건축물대장 갱신을 진행하시되 우선 1층 점포들이 담겨 있는 평면도 좀 보내달라고 요청드렸다. 문과 벽으로 상가와 주택이 명확히 나뉘었음을 도면으로 증빙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건물주가 택한 방식은 건축물대장 갱신이 아니라 민원 제기였다. 다른 상가들 잘만 들어오는 데 왜 여기만 이러냐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가를 여는 데 있어, 항상 지자체의 허가를 받는 건 아니다. 담배라든지, 식당이라든지 약간 주의를 요하는 업종들을 제외하곤 그냥 편하게 열었다가 닫으면 된다.



참 길고도 길게 민원이 이어졌는데, 아마 현황도가 없어서 그랬지 않았나 싶다. 건물을 지었을 때의 자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러면 건축사무소에 새로 의뢰를 해야 하고,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데, 이 오래된 건물에 그만한 돈을 들일 필요가 있냐는 생각 아니었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수치화되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이익 앞에 언제나 눈 녹듯 무너진다.



어찌 됐건 우리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고, 추가로 장작이 넣어지지 못한 민원은 결국 사그라들었다. 하나 기억에 남았던 건, 그 건물주가 알고 보니 전직 공무원이었다는 것. 그 건물주가 방문했을 때, 어디서 본 얼굴 같다며 팀장님이 여기저기 주변에 알아본 결과였다. 알 거 다 아는 사람이 왜 그런다니 라며 팀장님은 분개하셨지만, 돈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다. 아무튼 그래서 민원이 더 길고 길었는지도.



이 ‘근린생활시설 및 주택’에 얽힌 사례는 하나 더 있다. 여전히 쓸데없이 날씨는 좋았던 어느 오후. 민원이 하나 들어왔다. 옆집에서 담배를 팔고 있는데 허가를 받고 파느냐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기에 앞서, 간단하게 살펴보니, 그 건물 1층이 ‘근린생활시설 및 주택’로 잡혀 있었다. 오, 여기 담배권이 나갔나? 싶어 확인해 보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담배권은 나간 게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전자담배였다,



전자담배는 현행법상 담배에 해당하지 않는다. 담배사업법에서의 담배는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이다. 핵심은 연초의 ‘잎’이 원료라는 것으로, 유감스럽게도 요즘 사람들이 애용하는 전자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하지 않는다. ‘뿌리 또는 줄기’에서 원료를 추출했다는 건데, 이러면 담배사업법의 대상에서 벗어난다.



이 원료의 출처로 인해 지자체는 전자담배를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전자담배로 민원이 들어오게 되면 골치가 아프다. 문제가 복잡해서가 아니다. 방법이 없어서다. 어찌저찌 사장님을 만나 지도를 하려고 해고, 우린 거기에 해당 안 돼요 라고 배 째라를 시전 하면 답이 없다. 뒤에선 민원 제기자가 왜 해결을 못하냐고 쌍심지를 켜곤 지켜보고 있다.



언론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다루다 보니, 담당자로 있었을 때 나름 판례 등 자료를 찾아보며 강구해 본 적이 있는데, 저기 세금 쪽에선 이미 한바탕 혈전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감사원, 외교부, 세관까지 합세한, 몇 년에 걸쳐 벌어진 대규모 접전이었는데, 어느 분야에서건 간에 연합작전은 뭐든 멋있는 법이다. 정부라면 이런 맛이 있어야지.



접전의 기록은 조세심판원의 심판결정례 ‘조심 2021지2676 (2022.07.06.)’, ‘조심 2022지1481 (2023.02.01.)’ 등에서 음미해 볼 수 있다. 특히 ‘조심 2021지2676’는 이 전자담배의 원료에 대한 분쟁에서 가장 최초로 나온 판례인데, 가장 정부의 생각을 잘 담아낸 리딩 판례로 자리 잡은 건지, 이후의 전자담배 분쟁에서 자주 참조되는 심판례로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심판례에서의 핵심은 전자담배의 원료인 합성니코틴이 담배의 뿌리나 줄기에서 추출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뿌리나 줄기에서 추출했다는 서류는 거진 허위로 조작된 것이었고, 이 니코틴 또한 담뱃잎에서 채취되고 있었다는 것.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줄기나 뿌리에서의 니코틴 채취는 기술은 확보되어 있지만 아직 경제적인 가치로까진 이어지지 못해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 사건에 한하는 것이겠지만, 전자담배의 원료는 중국에서 왔다. 전자담배 회사 E는 직접 중국 회사 F로 건너 가 담배의 대줄기 폐기물에서 니코틴이 추출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했다고 주장했지만, 감사원이 외교부의 협조 아래 중국 당국에게 문의해 본 결과 그 회사는 담뱃잎만 구입하고 담뱃잎 외의 줄기 부분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회신받았다.



또한 세관이 확보한 중국 회사 F의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원재료는 담뱃잎에서 채취해서 가공했다’라고 소개하였고, 수매, 가공 등을 다룬 일련의 과정 속에서 담뱃잎만 확인되지 줄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자사 소개 PPT에서도 중국어라서 표현이 모호한 부분이 있었지만, 담배의 줄기가 아닌 담뱃잎의 주맥과 지맥에서 니코틴을 추출한다는 대목이 있었다.



여러 부서가 모여 이룬 성과에 가슴이 뛰었지만, 한켠으론 답답하다. 과연 여기까지를 말단 지자체인 우리가 할 수 있겠는가. 과연 우리가 자기 제품은 걔들하고 다르다고 뻗대는 업체를 상대로 중국에까지 확인하는 것을 불사하며 몇 년간 뚝심 있게 밀고 갈 수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최근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게 아쉽다. 담배를 담배라 부르지 못하고, 담배가 담배 아니라고 뻥을 쳐도 꿀밤을 먹이기 어려운 이 슬픔.



다행히 민원은 잠잠해졌다.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사실 이 이웃사촌이 이 하자에 대해 진정 관심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목적은 그게 아니었으니, 작금의 상황을 설명드리고, 현장에 나가 업소에 어느 정도 주의를 주었다고 말씀드리자, 불만이 있긴 해도 이내 가라앉으셨다. 이래서 공무원은 발로 뛰어야 한다. 발로 뛰어야 그 성의를 봐서 넘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웃픈 일이다.




# 우리는 15m일까 10m일까


옛날에 뉴스를 하나 본 적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일본을 덮쳤을 때 다른 마을을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갈 때 오직 후다이 촌이라는 마을만 건사했다는 것이다. 그 내막에는 주변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5m 방조제를 조성해 낸 와무라 고토쿠라는 후다이 촌장의 집념이 있었다. 당시 파도는 14.5m에 육박했고, 10m 안팎의 다른 마을의 방조제조차 파도를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와무라 고토쿠 촌장은 어린 시절 쓰나미 두 번 겪었고, ‘두 번 있었던 일은,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피 맺힌 각오로 15m 이상 방조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10m 방조제조차 예산낭비라며 비난과 조롱을 들어야 했던 당시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촌장은 수십 년 동안 고집스럽게 정부와 주민들을 설득했고 결국 15m 방조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촌장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민들에게 손가락질 당해야 했다.



그의 안배는 2011년 마을을 구하는 것으로 뒤늦게나마 빛을 보았다.



‘원칙대로’라는 말은 막 내뱉기 참 좋은 말이다. 언제 어디서건 그냥 ‘원칙대로’라고만 하면 무슨 전가의 보도인 마냥 어찌저찌 넘어가진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제법 유능하고 강단 있게 보이고, 원래 세상을 사는 데 원칙대로 사는 게 당연한 법이니, 맞는 말을 잘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어 이미지 메이킹에도 괜찮다.



문제는 저 ‘원칙대로’는 주장하는 것과 그 주장을 지켜나가는 것 사이에 아득한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들 모르나 ‘원칙대로’가 베스트인 것을, 그것을 위한 주변의 ‘공감’을 얻기가 어려우니까 문제인 것이다. 와무라 고토쿠 촌장을 보라. 지금이야 원칙대로 하여 얻은 값진 결실로 보지만, 그는 수십 년간, 그리고 죽어서까지 조롱을 당했다. 과연 평범한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겠나? 아니, 할 수는 있겠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담배업무를 하면서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딜레마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것이다. 어차피 당신 가면 도루묵인데, 융통성 발휘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 놈의 지긋지긋한 유도리 타령.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뭔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있다. 눈물이 있다는 순간부터 법은 실격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실격의 틈새로 무수한 허영과 자만, 선민의식이 비집고 들어간다.



다만, 규정대로의 처리를 외치면서도 정작 그 방식을 행정편의적 발상이라며 불신하는 작금의 분위기도 이해는 간다. 규정을 준수했다가 상처 입는 경우가 사회 여기저기에서 너무나도 많지 않았나. 때론 생계가 걸려 악착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책상 위의 규정을 근거로 너무도 무감각하게 쳐내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담배권을 얻지 못해 엄마뻘 되시는 분이 와서 우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지금까지 편의점으로 시작해서 담배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뤄보았다. 담배권에서 편의점의 비중이 높아지는 게 때론 달갑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물론 던전보스 공략하듯이 담당자한테 달려들 때는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지만, 이들로 인해 담배권에 대한 이해가 상향 평준화되어, 서로가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순순하게 일이 풀려가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전문가가 중요한 건가.



우리 집 근처에 상가건물이 하나 있는데, 1층에 공실이 하나 있다. 딱 사이즈가 복권방이 들어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잠깐 생각해 보다가 안 되겠다 싶었다. 바로 그 옆옆칸에 자리 잡은 편의점 때문. 아, 복권방만 있으면 월요일마다 복권을 사며 한 주 동안이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튼 편의점이 문제다. 내 일확천금의 꿈은 오늘도 언제나 저 멀리로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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