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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ul 15. 2022

감정 죽이기 연습

비인간적 진료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감정을 죽이기 위한 연습을 했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의사가 되고 싶었고, 이런 마음이 시험을 볼 때마다 좋지 않게 작용했다. 

어려운 문제만 만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가슴 안의 초시계가 울리는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시험시간을 헛되이 보내기도 했었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았다. 엄청난 여유가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한 친구는 시험 전날 신문을 꺼내 들고 읽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시험 전날 자습시간에 이러고 있는 모습을 혼낼 만도 했지만, 워낙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뭐라 하는 분이 없었다. 이 친구는 결국 서울대에 갔다. 


너무나도 비교가 되었다. 나는 아등바등 죽을힘을 다하는데 놀아도 같은 성적을 또는 나보다 높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이 분했다. 그래서 난, 내 감정을 죽이기로 했다. 시간을 내서 노트북을 하나 켜놓고 앉았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글로 쓰기 시작했다. 내 안의 나와 솔직한 대화로 지금 뭐가 문제인지를 진단해봤다. 분함, 불안함, 우울함, 무기력감과 같은 감정들이 꿈에 대한 간절함과 현실과의 괴리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노트북에 내 부정적인 감정들을 쭉 써놓고는 휴지통에 그 글을 버리고 노트북을 접었다. 내 간절함마저 3인칭의 관찰자인 '나'에게 미루고, 마치 로봇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차단했다. 그들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이기에, 공감을 하는 순간이 내가 버린 감정들을 새로 만들어 내는 기회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친구에게도 친절할 수 없었다. 공감이 없는 문제 풀이는 딱딱했고, 잘난 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나는 점점 어둡고 혼자가 되어 간 것 같다.  번뜩 정신을 차린 것은 진료 참관 때였다. 


 시간이 흘러 화이트코트를 입고, 책 한 권을 들고 교수님의 진료실에서 교수님 뒤에 앉아 있는 학생이 되었다. 호흡기내과의 유명한 교수님이었고, 많은 환자들이 이 교수님에게 진료를 보기 위해 미리 예약을 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진료를 보곤 했다. 한 할아버지 환자가 보호자 2명과 함께 들어왔다. 지팡이를 힘 없이 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기력이 없어 보이셨다.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하고 오늘은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환자 보호자 모두 긴장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수님은 쭉 환자의 CT, 조직검사 결과, PET-CT 등을 살펴보시고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네, 폐암 4기네요. 그렇게 가망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간호사, 다음 안내해드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잔뜩 궁금했을 보호자들은 거의 쫓겨나듯 안내해주는 선생님에 의해 나갔고, 순식간에 다음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사실 내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폐암 4기라는 의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저걸 어떻게 아무런 준비 없이 이야기하며, 환자를 위한 시간 투자 없이 바로 다음 일을 진행하는 것이 충격이었다. 교수님의 등 뒤에서 확실히 느꼈다. '이 사람도 감정을 죽인 사람이구나.' 하지만, 절대 방금 나온 상황은 옳지 않았다. 순간 감정이 돌아온 나에게는 환자에게 칼을 찌른 범죄처럼 느껴졌다.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5부 계속... 

의사 실기 시험 과목: 나쁜 소식 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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