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합격을 하자, 최저등급이라는 족쇄가 채워졌다. 수시합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능시험에서 4개의 과목 합 6등급 이내를 지켜내야 했다. 사실 거의 항상 1등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실수를 하나라도 하면, 미끄러질 때도 있었다. 언어, 수학, 외국어는 3개합 4등급 이내, 과탐까지 합치면 6등급 이내였다. 언어와 외국어는 자신이 있던 과목이라 1등급을 유지했지만, 수학은 그렇지 못했다. 계산 실수를 하면 여지없이 2등급으로 떨어졌다. 이제 와서 냉정히 말하면 2등급의 실력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했다. 불안했지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려워 부정했다.
한 과목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믿었던 과학 탐구과목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2등급을 왔다 갔다 거리고, 마지막 모의평가에서는 3등급이 나와버렸다. 수학에 대한 부담감은 점점 더 심해져서 거의 매일마다 수리영역에서 시험을 망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를 악 물고 버텼다. 어떻게 거머쥐게 된 일생일대의 기회인데, 날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수능 당일이 되었다.
수능 전날은 거의 공부가 되지 않는다. 불안하고 떨리지 않아도, 머리가 무거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더 욕심을 내지 않고 일찍 잠에 들었다. 나는 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수능 시험장에 배정받았다. 시험 시작시간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하려 일찍 출발했다. 점점 차가 막히면서 시험장에 거의 다 왔다는 게 느껴졌다. 교문 앞에 내렸다. 최대한 침착하려 했다.
"잘 보고 올게요~!" 차 문을 닫았다.
교문 앞은 응원가를 부르고 있는 고등학교 후배들로 떠들썩했다. 같이 수험생과 기도하고 있는 학부모도 보였다. 나는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그 사이를 인기척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려 했으나 익숙한 얼굴이 갑자기 나타났다. 바로 담임선생님이었다. 이 추운 날 나보다도 일찍 새벽부터 나와계셨던 것이 분명했다.
"민규야 시험 잘 보고 와! 파이팅!" 말씀하시며 웃어주셨다.
그런데 이런,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보고 울컥하고 무언가 가슴에 올라왔다. 오실 것이라 예상도 못했을뿐더러, 이 긴장된 상황 속에서 조금의 안정감을 느끼자 내 속이 잠깐 무너졌던 것이다. 다시 한번 선생님과 짧은 포옹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난 불안하지 않은 줄 알았다. 큰 시험들을 치뤄왔었으닌깐.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는 대한민국의 수능, 그 거대함에 당일 압도되어버렸다.
가방을 교실에 놓은 뒤 화장실로 향했다. 언제나 재수는 감당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이 분위기를 느껴버리자, 이 시험을 2번은 보기 싫어졌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훔쳐냈다. 부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 오만가지가 머리를 채웠다.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여러 번 되네이고 다시 자리로 향했다. 곧 시험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눈앞에서 앞에 앉은 학생이 내 앞으로 문제지를 넘겼다. 다들 긴장된 숨소리 속에, 그렇게 첫 과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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