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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ul 13. 2022

비인간적 중환자실 2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짧은 회고를 뒤로 하고. 10년 후 그 중환자실의 의사가 되어. 내 차가운 등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슬픔과 공포에 가득 찬 보호자들 앞으로 돌아섰다. 


 감염내과에서 수술 의뢰가 들어왔다. 교통사고를 당한 중년의 남자분의 목 상처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바로 CT를 찍고 응급수술이 잡혔다. 중환자실로 가서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왼쪽 목이 겉만 멀쩡하고 안쪽이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멀쩡한 몸과 머리 그러나 그 연결부가 외나무다리 마냥 너무 약해 보였다. 수술 전부터 느낌이 좋지 않다. 수술방으로 들어가 전신마취까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수술방에서 마취과는 캡틴이다(내 개인 생각일 수 있다).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마취가 필수적인데, 환자를 생체징후의 흔들림 없이 재우고 깨우는 것이 마치 잠수함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판단하는 함장과 같이 느껴진다.

 “환자 상태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수술을 최대한 빨리 끝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취과 선생님이 말했다. 


 잠항이 길지 못할 것이란 말과 함께 수술이 시작되었다. 피부를 가르고, 목 안쪽의 심연으로 들어갔다. 이 환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중요 구조물들을 보호하고 있는 근육들을 한 겹 한 겹 치워가며 심부로 들어가자, 보여야 할 혈관 대신 공간을 순식간에 채우는 피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기다리기라도 한 듯, 목 밖으로 솟구치는 출혈을 막기 위해 석션을 사용해 피를 빨아들이며 출혈의 기시부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 뒤의 마취과는 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대량 출혈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다. 비축되어 있던 수액과 혈액이 달리고, 더 빠른 투여를 위해 다리 아래에 정맥관을 잡는 게 보였다. 여러 의사와 간호사가 움직여 소란스러웠다. 목 쪽에 있는 우리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러나 이상했다. 피는 나는데 혈관이 없었다. 곧 목에 있는 가장 큰 정맥 중 하나인 경정맥의 일부가 감염으로 녹아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안에 숨어 있던 염증이 점점 심해지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혈관벽마저 허물어트린 것이다. 원인은 찾았으나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약하디 약한 살들은 바늘로 꿰매어 줄 수도, 다시 붙일 수도 없었다. 미봉책으로 먼저 감염을 해결하고, 거즈 등을 활용해 피가 나지 않도록 혈관을 누르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안 좋으실 것 같다.” 수술을 끝내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 좋아질 것이란 약속을 할 수 없는 채로, 언제든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는 상태로 수술은 종료되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로 다시 돌아갔다. 환자 상태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내 뒤로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점점 눈을 뜨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 가장의 모습이었다. 아직 환자에게도 결과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의학적인 사실만 전한 채로 이대로 내가 자리를 뜨는 것은 이 가족한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중에 하나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짧은 회고를 뒤로 하고. 10년 후 그 중환자실의 의사가 되어. 내 차가운 등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슬픔과 공포에 가득 찬 보호자들 앞으로 돌아섰다. 

 3부에 계속…


#책과강연 #의사가되려고요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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