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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Aug 08. 2021

살 수 있다는 거짓말 2

양심 고백

이 사건의 시작은 3개월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환자에게 후두암으로 인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리며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환자에게 수술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했다. 암과 함께 살겠다고 환자는 말했지만, 인간적이고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한 사람들을 나는 보아서 알기 때문이다. 암과 마주한 사람들은 그 큰 결정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없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누가 선뜻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적어도 나는 주치의로서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수술을 받고 환자는 2주 동안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경비가 삼엄해진 중환자실은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도 면회를 제한시켰고, 매 순간 불안해하는 환자를 위해 나는 가족 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돌봐야 했다. 정을 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알기 전인 만큼, 최선을 다했다. 

"김 선생 그동안 정말 고마워" 

퇴원하는 날, 환자와 보호자가 나에게 건네었던 인사를 잊지 못한다. 이렇게 금방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렇게 고마웠던 사람에게 마지막 방법을 설명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금식을 해야 하는 기간 동안, 배고픔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환자는 우리 몰래 무언가를 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시기에 한 일이었지만,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일이 눈에 너무 뻔히 보였기에 나는 한숨만 나오곤 했었다. 더 크게 화를 내고 더 적극적으로 막아야만 했었다. 결국 혈관의 결손까지 초래하게 된 것이다. 

혈관의 결손 된 부분 아래쪽으로 특수물질로 막는 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서에 결국 사인을 받아내었다. 

환자는 시술을 받으러 혈관조영실로 들어갔다. 


"김 선생,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보호자가 물었다. 솔직하게만 대답해달라고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지요..."

치료를 결정한 이상, 두 번째 출혈이 또 생긴다면,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가시기 전, 사랑했던 모두에게 인사할 시간이라도 벌어줄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역할을 다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며 병실로 돌아가셨다. 


그 뒷모습에 나는 3개월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괜히 치료를 권한 것일까? 암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더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으셨을까? 더 적극적으로 환자와의 라뽀를 깨더라도 막았여야 했을까? 뒤를 돌아볼수록 나는 너무 힘이 들었다. 죄책감, 그 이상이 어깨를 짓눌렀다.


다행히 시술은 잘 끝났다. 가족들은 환자와 눈물의 상봉을 하였고 환자는 다시 한번 웃으며 보호자들과 퇴원을 했다. "김 선생,  고마워"


이번에는 같이 웃지 못했다. 다가올 미래를 알기에. 1달 뒤 전화가 왔다. 한쪽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고, 방법이 있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뜻을 다시 전할 수밖에 없었다. 

두 달이 되지 않아 두 번째 전화가 왔다.

"김 선생, 잘 보냈어... 가족들 보는 앞에서 조용히 눈감고 갔어"

"고마워."


내 눈물샘이 뜨거워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 환자분을 보냈다.


정을 주는 것이 무서워졌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내린 결정과 전한 말들이 한 사람과 그 모든 가족에 인생에 너무 깊이 관여하게 된다. 이젠 잘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알고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좋은 의사이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변화가 없다. 

나는 어디까지 같이 아파해야 하는가?

나는 어디까지 결정을 해야 하는가?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에 나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살 수 있다는 거짓말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먼 훗날 만나게 된다면 눈물로 용서를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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