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방송 중 의료진이 가장 듣기 싫은 색깔이 무엇일까? 바로 파란색이다. ‘코드 블루’. 심정지 환자가 있을 때 울려 퍼지는 소리이다. 그 시퍼런 색만큼이나 방송이 될 때마다, 혹시나 내 환자는 아닐지 간담을 늘 서늘하게 만든다. 10년 전 이곳, 심장 중환자실에서도 같은 방송이 나왔었다.
아직 어린 학생이었던 나는 할아버지의 면회를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보호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조용했다. 심판을 기다리는 것처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한 긴장이 12평 남짓한 공간을 채우고 흘렀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중환자실 문이 열릴 때마다 모두 고개를 들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무소식도 싫고 그렇다고 환자 보호자를 찾는 소리도 싫다. 좋은 이야기일지 나쁜 이야기일지 모를 부름 자체가 겁을 먹게 한다. 나는 그 중압감에 흘러내릴 것 같던 어머니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보호자도 같은 얼굴이었다.
처진 정적을 깨고, 대기실에서 졸고 있던 보호자들 마저 깜짝 놀라게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코드 블루, 3층 심장 중환자실, 코드 블루, 3층 심장 중환자실”
그때는 이게 그렇게 서슬 퍼런 소리인 줄도 몰랐고, 이게 내 가족을 향한 소리인 줄도 몰랐다. 분명 할아버지는 어제 내 손을 꽉 잡았기 때문에, 저 의사들이 다른 이를 구하러 뛰는 줄만 알았다. 문이 열리고 우리를 찾는 간호사의 호출이 있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먼저 벌떡 일어나서 병실로 들어가셨다. 담당 교수님과 상의를 하실 게 있으시리라 생각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억겁과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서로 위로를 나누고 싶었지만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저 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지났다. 문이 다시 열리고 아버지가 나오셨다.
아버지 눈가에 처음 보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모두 들어와.”
나는 어른들을 따라 몸을 일으켜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중환자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환자들이 몸에 2배만 한 크기 침대에 누워 한 줄로 배열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에서 3번째 침대에 계셨다. 몇몇 의사들이 침대 주변에 모여, 멀리서도 보이는 차가운 쇳덩이를 전기로 달궈 육신을 벌떡 뛰게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잔잔한 말투로, 심장이 이제 멈췄으며, 지금 마지막 시도를 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이제 돌아가신 거라고 가족들에게 전하셨다. 코드 블루는 죽음의 색깔이었다.
의사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고모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더 처치를 해달라고 소리쳤다. 의학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심장을 가리키는 그래프는 아직 맥박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ulseless Electrical Activity, 지금 생각해보면 심장의 박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의미 없는 전기 신호였을 뿐이었지만, 그때는 달랐다. 아직 기회가 있는데,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차갑고 딱딱하게 돌린 의사들에 등에 ‘우리 할아버지 심장이 아직 뛰어요’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도 하지 못한 내가 한없이 작아졌고, 이런 나를 보지도 않은 냉혈한 그들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가족들이 들어와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듣고 계시는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뜨지 않으셨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짧은 회고를 뒤로 하고. 10년 후 그 중환자실의 의사가 되어. 내 차가운 등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슬픔과 공포에 가득 찬 보호자들 앞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