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작가다
한 때는 프리랜서의 삶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매일 환자들에 치이고 의사들 눈치를 봐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뭔가 자유롭게 책도 쓰고, 시간도 쓸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프리랜서의 삶을 꿈꿨었다. 프리랜서만 되면 날개 돋친 삶을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난 10개월을 돌아보면, 날개가 돋치기는커녕 날개가 돋을 새도 없이 살짝 돋아난 날개마저 꺾여버렸다.
얼마 전, 컨설턴트로 일하던 유전자 검사 회사로부터 일을 잠시 멈춰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놈의 COVID-19이 내가 일하던 회사에도 악영향을 주고야 말았다. 일하던 케이스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막상 연락을 받고 나니 마음이 헛헛했다. 정말 프리한 프리랜서가 되어버렸다.
작년에 아이를 출산한 후 내가 일하던 산부인과 유전상담사 일을 그만두었다.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남편과 상의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대신, 한 유전자 검사 회사의 컨설턴트 유전상담사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 집에서 일을 하며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30시간 미만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 아무 때나 일하면 되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 같아 계약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안정적으로 꼬박꼬박 통장에 돈이 들어오던 삶에서, 내가 일한 만큼만 받을 수 있는 프리랜서 삶으로의 전환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에 쫓기는 삶이 되어버렸다. 아이와 노는 것 외에 수유도 해야 하고, 이유식도 만들어야 하고, 내 밥도 챙겨 먹어야 하고, 일하고 들어오는 남편 밥도 차려줘야 하고, 청소도, 빨래도 해야 하고, 식구들에게 아이 보여주려 영상통화도 해야 하고. 하루 일과가 빡빡하게 돌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시간을 찾아 일을 하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10시간이면 참 적은 시간 같은데, 이것도 겨우 채우는 주가 허다했다.
그러다 아이의 낮잠 시간이 어느 정도 고정되고, 나도 이 생활이 익숙해져 뭐든지 착착 빨리 할 수 있게 된 몇 달 전부터는 한 주에 20시간 가까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더 많이 하니,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도 많아지고, 일이 익숙해지면서 요령도 생기고, 짬을 내서 글도 쓰고, 나름 재밌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COVID-19이 터졌다. 미국은 초기 대처를 안 했고, 그로 인해 4월 22일 현재 감염자 수 80만을 넘겼다. 지난 1-2달 동안 유전학과를 찾는 환자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유전자 검사를 하는 케이스들도 줄어들었다. 어떤 병원들은 비디오 진료도 시작하였지만, 모든 환자들이 비디오 진료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병원을 고객으로 삼는 유전자 검사 회사들은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나와 일한 이 유전자 검사 회사의 경우에는 유전자 검사 회사계 대기업이라 잘 버티고 있었는데, COVID-19이 장기전으로 가면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회사를 살리는 것이 우선 시 되어야 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통보가 있을 때까지 일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고, 그 회사의 직원들은 월급 감면을 감내하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얼마 전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화이트칼라 직종의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까지도 미국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일을 못하게 된 후 느껴지는 미국 경제의 추락은 꽤 무겁게 다가온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하나보다. 뉴스로 보는 미국의 상황이 너무 암울하고 답답해서 최대한 안 보려고 하는데,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더 보게 된다. 나아질 기미가 없다. 리더들이 자꾸 헛짓을 한다.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지만, 참기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언젠가는 이때를 돌아보며 "그래, 그때 참 힘들었어" 이러면서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역사책에도 기록되는 사건이 될 것이다. 다 아는데,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이 막막한 마음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게 부러워하던 프리랜서의 삶이었는데, 날개가 꺾여버린 지금 좀 두렵다.
그래도 힘을 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
나에게 이 삶의 "시작"이 있었듯이, "다시 시작"하는 날도 오겠지.
희망적인 말들로 나 스스로를, 모든 프리랜서들을 응원해본다.
우리 모두 토닥토닥.
2020년 4월 22일
COVID-19의 직격탄을 맞은 뉴욕에서,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