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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뀰사마 Dec 12. 2021

2021년 12월 8일~12일의 기록

8 Dec 2021 - 12 Dec 2021

8 Dec: 정신과 상담을 다녀왔다. 코비드로 인해 몇 안되는 장점을 말하자면 텔레헬스가 가능한 산업은 텔레헬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굳이 원온원 미팅을 해야하는게 때로는 번거로워서..ADHD인 나의 성향과 그에 따른 불안,우울의 중첩으로 망가진 일상의 컨트롤을 어떻게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 매니지먼트에 대해서 워크시트를 준다고 했는데 아직까진 못 받았다. 

 

9 Dec: 밤새서 피어리뷰를 마무리했다. 한시간이면 끝날일을 왜 자꾸 몇시간째 질질 끄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Data Visualisation Analytics course에 대해서 리뷰도 남길거지만 이 수업으로 인해 몇달 째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다행인건 그래도 팀 멤버들을 잘 만나서 아무도 프리라이딩 하는 사람 없이 다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무난히 진행했다는 점이다. 그런 인연들에 감사하다. 

 

도수치료를 받았더니 온 몸이 뻐근하고 아팠다. 냉장고가 비어가서 코스트코가서 장을 봐왔다. 내 생에 냉장고를 비게 한 적은 없었는데 정말 번아웃이 심했나보다. 도수치료를 받으며 카이로프랙터 쌤이 내가 타고난 심장과 폐, 장기가 정말 열감이 높고 기능이 현저히 낮다고한다. 온 몸의 신경과 근육도 성한 곳이 없다고. 지금 현재 몸 상태가 제 인생에서 가장 리즈시절이라니까 소스라치게 놀라신다..거짓말 아니에요. 진짜에요. 저 어릴땐 거의 병원과 침대 밖을 벗어난 기억이 없습니다. 


당일 저녁엔 시민권 승인이 났다. 이제 세레모니만 받으면 나는 호주인이 된다. 기분이 이상하다. 왠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한 느낌이다. 하지만 영주권자로 몇년간 있으면서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여러 불안감을 느꼈다. 여차하면 날라갈 수도 있는-그로 인해 내가 호주에서 쌓아온 지반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을 알고 시민권자로 살아가게 결정한거지만..이곳에 홀로 외톨이로 건너와 정착한 나의 현 모습이 과연 옳은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허나 한국에서도 딱히 의지할 이는 없고 가족들과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마음은 더 복잡하고 울적한적이 많아 굳이 고국이나 여기나 내 인생의 안전망의 구축이 어디가 더 견고한가 비교한다면..잘 모르겠다. 


10 Dec: 할일이 밀렸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래서 브리즈번에 사는 트친과 긴 시간 통화를 하며 점성술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밀린 락스미스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번 베이스를 뚱기며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마이크를 통해 연결해보았으나 이게 인식은 되는데 튜닝이 안되서 결국 기타 인풋-usb호환 케이블을 사기로 했다. 


11 Dec : 공황장애로 호흡곤란. 이래서 펜싱이나 갈 수 있을까. 나이는 먹어가는데 해온 건 없는거 같고 지금이야 육체가 받혀주니까 하루하루가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내 육체가 노쇠해져갈 땐 어쩌지? 지금이야 혼자가 되게 편하고 좋지만 위급하고 갑자기 불행이 닥칠 때 나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하고 생각을 하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2시간 동안 공황상태로 방안을 맴돌았다. 그러다 펜싱수업에 갈 때 쯤에 차라리 아무 생각을 하지 말자, 그냥 가서 움직이고 오자 그 마음만 굳게 가지고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하는 도중에 과호흡이 와서 차선도 제대로 안 지키고 운전한거 같다. 


거짓말같이 펜싱복을 입고 칼을 쥐며 대련을 하자마자 마스크속의 답답함과 갑옷의 목 죔을 버티며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기 바빠 나를 괴롭히는 잡생각들은 사라졌다. 펜싱을 하면서 어느 새 친해진 클럽 멤버들과 사브르 펜싱의 프라이어리티 (Right away)를 정하는 심판 연습을 하며 사브르 규칙을 이야기하다보니 어느 덧 1시에 시작한 수업은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주요 클럽 강사인 톰이 국대 선발전을 치르러 멜번에 내려가 있어 그의 조교 강사인 이썬이 나를 가르쳤다. 사실 톰은 좀 능글능글한 구석이 있어서 중요 포인트만 쏙 가르쳐주고는 바로 시니어팀을 돌보러 가는데 이썬은 갓 성인이 된 애기(이지만 펜서로서는 훨씬 시니어인)라 빠라드의 자세부터 피스톨 그립/세이버 그립의 차이 그리고 키가 작은 사람으로서 세이버를 대처하는 전략 등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다. 거의 프라이빗 수업 세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빠라드에서 역카운터 치는 자세와 앞 발을 호버링하며 슬라이딩하듯 치고가는 빵떼부터 다양하게 교정을 받았다. 


사실 이제 슬슬 펜싱 수업을 4번 나가보니 (주1회 나가는데 클럽이 집에서 너무 멀어서 간간히 빼먹음..ㅋ) 최소한 마스크와 이너아머는 구비해야할 거 같아 이썬에게 eu46-48 둘 다 입어보게 가져오라 했는데 이썬이 내 대여장비를 안 갖고 와서 졸지에 이썬 걸 빌려 입었다..이썬의 이너아머 사이즈는..eu 48이었다..ㅋㅋ..아무리 그래도 173-5는 되는 호주 남자애인데 얘 아머 사이즈가 나에게 딱 맞아서..좀..짜증났다..ㅋ...ㅋ..ㅋ...아이 샹. 나는 158의 쪼만한 동양인 여자인데..젠장ㅋㅋㅋ. 체스트야 여자는 슴가+바스트 플레이트까지 입어 그렇다 쳐도 어깨가 딱 맞다니..으아아아악! 


평상시엔 경쟁심이 가득한 남자 펜서멤버들이 서로 대결하기 바빠 나는 약간 뒷전에 내가 미스터 미야기(카라테키드에 나오는 스승의 이름)라 불리는 알렉스와 리나하고 대부분 노닥거리며 펜스 기본 스텝을 밟기만 했는데 오늘은 뭔가 멤버들이 나에게도 말을 자주 걸어주고 내가 빠라드를 되게 강하게 잘 블락킹 한다며 칭찬도 해줬다. 왠지 으쓱으쓱. 


거친 숨을 다시 정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운전대를 잡았는데 운전중에 다시 공황이 찾아와 숨을 가파르게 쉬었다. 진짜 정신을 단련하고자 시작한 격무운동인데 멘탈은 다잡긴 여전히 힘들다. 호흡곤란중에 운전대 놓지 않으려고 짧은 들임숨을 후후하하 반복하며 무사히 집에 왔다. 어이없게도 집에 오자마자 호흡곤란이 사라졌다. 맙소사. 


12 Dec 


클라이언트의 작업물을 보다가 아 이 테이블 컴포넌트는 진짜 답이 없다. AEM에 임플먼팅을 하는 시니어들은 어떤식으로 컴포넌트를 삽입할 건지 언질조차 없고 나는 정확한 목표 지점이 없이 일을 수행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너무 저하되었다. 올해 하반기, 아니 사실은 상반기부터 올해는 뭔 일을 하면 할 수록 수렁에 빠져 질척대는 느낌이다. 


오늘은 스페이스에서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고난을 겪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고난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구나, 그리고 그 고난의 크기와 아픔에 대해선 남이 함부로 판단하면 안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나는 나름 평화로운 삶을 살아왔구나 싶으면서도 '아니 지금 나의 삶은 내가 봐도 평화로운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햇살이 쨍한 방안에서 혼자 멘붕하며 울다가 밖을 나갔다. 한달 가까이 비가 줄창 오던 시드니의 하늘은 파랬고 집 근처에 있는 잔디구장에서 럭비와 크리켓을 하는 동네 주민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래, 내가 생각을 해봤자 뭘 어쩌겠니. 이래저래 내가 답을 못 찾을거면 그냥 아예 머리를 비우는 훈련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생각을 하지 말자. 그냥 마음 속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 걸 비우는데 집중하자. 바깥에 심은 깻잎들을 한번 주욱 훑으며 내 피같은 양상추와 허브를 뜯어먹는 애벌레들을 해치웠다. 


그러다 다시 밀린 테이블 컴포넌트 디자인을 보며 아..시발..이걸 어떻게 업무 분담해서 동료 디자이너에게 그리드 짜라고 던져주지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끄응..이럴땐 그래, 방정리가 최고다. 방 정리를 하자, 아니 아예 이케아에 정리 정돈을 도울 가구들을 미리 마음 속에 찍어놓고 오피스를 꾸미는 상상을 하자라며 마음 환기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다 허접스러운 FIE 펜싱게임을 받아서 플레이해보다 그 조악함에 다시 지우고는 유튜브에서 펜싱 스텝 영상들을 보며 블로그를 썼다. 내년엔 검도 초보자 10주 훈련에 조인을 할 건데 이건 일단 다음주 화요일 시범 수업에 참가를 해보고 결정을 해야겠다. 이썬이 어제 EU 46 이너아머만 가져왔어도 확신을 가지고 이베이 셀러에게 중고로 마스크와 이너아머를 사는건데..근데 eu48이 너무 몸에 딱 맞아서 왠지 46은 작지 않을까 불안감이 들었다. 에이씨. 


뭔가 의욕이 안들고 뭘 해도 막히는 기분에 좌절감이 자꾸 발 밑에서 스며드는 기분이다. 청소와 집안 물건 비우기, 화분 만들기, 어쿠스틱 포스터 만들기를 하나하나 깨작깨작 해야겠다. 뭔갈 하면 그래도 뭐 작은 거라도 이룬 기분이 드니까. 


 폼 롤러로 무릎을 어루 만지며 다리를 풀고 내일부터는 펜싱 스텝 연습을 데일리 vlog로라도 인스타에 기록해야겠다. 나의 펜싱 스승 미스터 미야기가 휴가철 지나고 검사할거래..얼마나 페이크 스텝을 잘 거는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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