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맑은 어느 초겨울 늦은 밤.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다 노르스름하게 들뜬 보름달이 목화솜 뽑아 갓 짜낸 이불 같은 구름을 슬며시 덮고 바람처럼 유유히 흘러갈 때. 그 상이 검푸른 바다의 피부 위에서 흩어질 듯 말 듯 춤출 때.” <삶은 예술로 빛난다-조원재, p.184>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스스로를 버리고 싶을 때가 오기도 하는 것 같다. 그건 처참한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주위 사람들의 평판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삶을 살아가는 게 너무 괴로워서, 아니면 지키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사랑하는 게 없고 자신마저도 혐오하여 내던져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힘듦이 가시지 않으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순간도 온다.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었다. 살아가는 것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꾸역꾸역 삶을 살아가는 느낌으로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웠다. 나의 삶이, 내가 떠안은 삶이 공포스럽고 무거워서 살아가는 게 힘들었다. 나는 그때 나를 버리고 싶었다. 나를 진창에 내던지고 차라리 더 학대하고 괴롭히면 나아질까 싶어서 나를 점점 더 어려운 상황 속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꼬였고, 그건 내 나름대로 나를 구원해달라는 발악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스러지고, 내가 죽은 듯한 삶을 하루하루 견뎌내자 차츰 내 삶 속으로 빛이 들어왔다. 스며들듯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지 못하던 것에도 눈을 떠갔다.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좋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내면에서부터 채워지고 충만한 삶이 나의 삶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명확해지고, 그런 걸 귀하게 가꿔나가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게 무너져도 하고 싶었던 예술, 문학이 내 안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터져나오는 아름다운 생각과 언어가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처럼, 한 번도 파괴된 적 없는 것처럼 눈부시게 나의 삶을 밝혔다. 빛이 가득했다. 이렇게 좋고 훌륭한 사람이 나였구나, 그런데 하마터면 이런 나를 버릴 뻔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마터면, 하마터면.
내가 나를 버릴 뻔 하였구나. 거미줄처럼 수없이 얽혀 있는 인연의 끈들이 나를 살렸고, 포기하고서도 살아가는 끈질긴 나의 힘이 그 순간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가 굵고 단단해서, 갈고 깎여도 꺾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무너진 상황 속에서 버텨가던 나를 보았다. 내가 가진 힘이 느껴졌다. 아주 탄력성 있고 굵고 강하며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는 나의 힘이 근원적으로 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없구나. 건물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제야 건물 안에 단단히 숨겨져 있던 나의 생명력을 발견하였다. 나의 생명력과 숨을 쉬는 것으로부터 나오며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단단한 의지, 그리고 삶에 대한 찬란한 예찬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가 어떤 길을 거쳐왔는지 알게 되었다.
나를 확인하는 작업이었으며, 내가 가진 힘을 인식하고 굳건해지기 위해서 거쳐온 길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에서 자신감을 얻어 가기 위한 작업이었다. 멀고 먼 길을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으며, 이 세상 가장 안타까운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그릇을 키우는 일이었다. 나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 손길을 내밀기 위해서였다.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를 큰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그걸 버텨냈다. 그것들이 시험과 시련이었다는 걸 기분 좋게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한번 세상 앞에 무너지는 때가 오더라도 이제는 내 안에 있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자신감 있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찬란한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