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마라톤을 제주도에서 뛰었다. 제주 국제 관광 마라톤 대회 10km가 정확한 명칭이다. 토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크루 사람들하고 갈치구이를 먹었다. 은갈치는 길고 살이 많았다. 갈치의 껍질이 반짝거리니까 나는 보석을 먹는 것 같았다. 살은 흰색이고 비린 맛이 하나도 없고, 쉽게 부서졌다. 저녁에는 제주 RC팀과 콜라보 런도 했다. 해가 질 무렵이라 바다가 더 거칠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바다도 밤에는 외롭고 성이 나나보다. 밤에는 크루 사람들과 닭강정과 회, 김밥과 떡볶이와 족발을 사서 먹으며 파티를 했다. 내일 뛰어야 하는데 생각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추억을 쌓는 일에 아쉽고 싶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차를 타고 마라톤 대회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즐겁고 느리게 뛸 예정이었고, 나는 빠르게 뛰어서 기록을 만들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나보고 먼저 대회장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첫 대회라서 우왕좌왕했다. 화장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누군가가 친구에게 대회에 등록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줄에서 나와 대회장으로 갔다. 사람들에게 등록을 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칩을 달았으니 뛰면 된다고 했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 다시 기다려서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총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걷는 걸로 보였다. 이렇게 느리게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 한복판에 있었다. 뚫고 가는 게 어려웠다. 처음에 속도를 많이 내는 편인데, 길이 막혀 있으니 답답했다. 시작하고 초반부가 지나서야 길이 한산해져서 내 페이스를 찾고 뛸 수가 있었다. 나는 이때 스마트 워치가 없어서 원래 페이스라고 해도, 실제 측정치가 아니라 기분상 느껴지는 속도였을 뿐이다.
해안 도로를 달리니 옆으로 바다가 하얗게 거품을 일면서 치는 게 보였다. 하늘도 맑고 넓었다. 나는 자유롭게 파란 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깨끗한 도로도 아름다웠다. 원래는 차가 다니는 곳인데, 이렇게 넓은 도로 위를 달리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서 재미있었다. 왠지 팔을 벌리고 싶어서 날개처럼 펼치고 달려 보기도 했다. 바로 옆에 바다가 있고 하늘이 바다 위로 내려와서 파란 기운을 뒤섞는 것처럼 느껴져서 시원했다. 수평선이 보였다. 그 멀고 넓은 띠가 아득한 생명선 같았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이 멀리 보여서, 얼마나 상쾌했는지 모른다. 그 정도로 넓은 길이었다. 그 너른 땅과 바다를 눈으로 소유한 기분이 들었다.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이었다.
해는 뜨거웠다. 멀리서 여유롭게 서 있는 흰 등대는 힘이 세고 거친 파도를 달래는 것 같았다. 해안 도로 위를 두 다리로 누비니까 내 다리가 자동차만큼 빠르고 강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기록 욕심도 있었다. 나는 경주마다, 하면서 지치지 않게 계속 암시를 걸었다. 허벅지에 힘이 가득 느껴지고 땅을 박차는 느낌이 좋았다. 어제 먹은 음식들로 몸이 더부룩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보라매 공원에서 달리면서 바닷길을 달리는 걸 상상한 적이 있다. 달리는 게 힘들어서 머릿속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고, 게임처럼 모드를 바꿔가면서 달릴 때 힘을 냈다. 물 위도 달리고, 찬란하게 태양이 비치는 초원 위도 상상으로 달리고 했다. 그런데 이 해안 도로는 그 이상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렴풋하던 게 선명해졌다. 내 모든 청각과 시각이 바닷길에 집중하고, 달려나가는 느낌은 아주 생생했다. 심장이 뛰고 몸은 기쁨과 설렘으로 달뜨고, 이 길을 정복하기보다는 자유롭게 헤쳐나가는 사람으로서 행복했다.
후반부로 가자 생각이 점점 사라졌다. 달리는 와중에 버티고 있는 신체의 고통이 머릿속을 채웠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들 둘이 빠르게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일정한 속도로 계속 뛰었다. 나에게 따라잡힐 무렵에 그 애들 둘이 다시 뛰어갔다. 그러다가 힘든지 일정한 거리를 만들고 나서는 걸었다. 나는 그 애들을 이정표처럼 사용해서 더 힘을 냈다. 나는 그 애들보다 빠르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달리기에서 중요한 건 꾸준함이기 때문이다. 결국 추월했다. 막바지에 남자분 두 분이 앞에 계셨는데, 그 사이를 박차고 강하게 달려나갔다. 숨막히게 달리던 때를 떠올리면서 아직 더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버티고 버티니까 여유가 조금 생겼다. 피니시 라인이 보일 때, 질주를 외치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물과 선크림, 파운데이션, 에너지바, 메달, 에너지 가루를 받을 수 있었다. 물을 마시고 에너지 가루를 입에 털어 넣은 뒤에 결과를 확인했다. 53분 12초였다. 원래 기록보다 조금 느렸다. 처음 시작 할 때 병목 현상에 막혔던 게 아쉽게 느껴졌다. 크루 사람들이 잘 뛰었다고 축하해 주어서 마음이 풀렸다.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해 뛰어서 만족했다.
펜션에 가서 한숨 자고 일어난 뒤에 사람들과 해변가에 있는 카페로 갔다. 모래사장 위로 원두막처럼 생긴 밀짚으로 된 그늘막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실내에서 글을 쓸 수 있었다. 크루 언니가 혼자 있는 나를 위해 디저트를 잘라서 가져다 주었다.
사람들과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어서 분위기가 좋았다. 어스름이 얕게 깔리고 태양이 바다 가까이로 내려왔다. 파란색이 힘을 거두고, 멀리서 구름이 붉게 타올랐다. 노래 부르듯 일렁이는 해가 바다 아래로 몸을 숨기자, 제주 바다도 차츰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