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와 함께 티앤크래프트 박람회에 신청해서 갔다. 잠을 덜 자서 가는 길에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빠랑도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가지는 않고 말없이 같이 갔다. 아마 아빠는 내가 화가 난 줄 알았을 것이다. 가는 길에 나는 상념에 빠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기억해냈고, 그 어두운 것에 잠식되었다. 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관점을 바꾸어서 보고 내가 선한 사람이 아니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 있었다. 그 결과를 보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인정해야 하고 이런 어두운 생각에 가리워져 있었다. 나는 충동적이고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순간 순간에 집중하고, 감정도 그래서 빨리 변하고 그건 모든 걸 잘 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렇게 나를 비판하면서 있었던 일을 직시하고 있었다. 나는 어두웠다.
티앤크래프트 박람회에 가는 길에 집에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아빠한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고 또 줄까지 서서 있었다. 줄 서있는 내내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줄이 너무 줄어서 들어갈 차례가 되자 이제 와서 돌아가기에는 아쉬워졌다. 안내하는 젊은 직원들을 보면서, 저런 일을 하면서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한 가지 길만 생각하고 그런 것에만 매몰되어 있다보니 여러 가지 길이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들어가 보니 처음에는 별로 재미 없다고 생각 했는데, 점점 차도 마시고 설명도 듣고 하면서 눈이 떠지는 것처럼 마음이 열렸다. 보이차를 설명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되게 막 차를 다루셨고 쉽게 쉽게 우리셨다. 그 모습이 전문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차를 더 잘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에서 오신 분들도 자신의 차를 소개하고 계셨다. 이것 저것 마셔보게 해주셨다. 그렇게 친절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보고, 또 뜨개로 뜬 물고기 모양 키링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호박 모양 뜨개, 문어 모양을 봤는데 엄마가 물고기자리라는 게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가장 예쁘게 색이 섞인 물고기 키링을 골랐다.
그러고 아빠한테 두쫀쿠도 사달라고 해서 하나 먹고, 여러 가지 간식들을 차와 함께 시식하고 돌아다니다 보니까 점차 기분이 흥겨워졌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내 안에 있는 어둠이 걷혀졌다. 그리고 여러 가지 더 보고 싶어서 나는 이곳저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생화가 들어있는 장식품도 봤다. 진짜 우리나라 들꽃이 선명하게 유리 안에 들어 있었다. 네 가지 액체를 섞어서 꽃이 시들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특수 소재라고 했다.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가자고 하셨다. 그러고 여동생을 데리고 두부집에 갔다. 나는 돈까스를 먹었고 아빠와 여동생은 제육정식을 먹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자율적으로 떠서 먹을 수 있었다. 여동생이 주토피아에서 코끼리 아이스크림처럼 많이 풀 것이냐고 물었다. 그건 완전 큰 거 아니야? 하면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많이 먹을 생각이기는 했는데 여동생의 비유가 너무 웃겼다. 코끼리용 아이스크림이라니..아까 아빠 기다리면서 여동생이 나보고 기분 안 좋냐고 물었다. 왜인지 몰랐다. 나는 박람회 갔다 와서 기분이 좋았는데. 아마 평소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랬나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생각해보고 그에 맞춰 적절하게 행동하는 걸 연습하느라 그렇게 보였나보다. 그런데 이렇게 행동하는 게 좋은 것 같다. 타인의 관점으로 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