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바르셀로나, 둘
어슴프레 런던의 해는 빠르게 저물어,
보랏빛으로 도시를 물들였다.
선생님과 나는 무수한 걸음마다
덜그덩거리는 캐리어를 끌며 호텔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서
유창한 영어 발음들에 기가 죽어,
꼬리를 내린 하룻강아지처럼
선생님의 등 뒤를 지켰다.
장엄한 자태를 뽐내는 런던의 도시 건물들도
한몫한 셈이려나.
하지만 도착한 호텔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내 이미 그곳에서 살던 사람처럼...
곧이어 나는 호텔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으니 말이야.
배정받은 방에 한국에서 짊어지고 온 짐과 패기를
나란히 정리해 두고, 1층 로비로 내려가 호텔에서
제공하는 커피를 내려 마셨다.
어둠이 내리던 런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다가,
호텔 밖으로 튀어나갔다.
꽤나 우아한 조각처럼 아이보리빛 건물들이
촘촘히 늘어선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로 작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꽤나 로맨틱할 것 같았던 나의 런던, 첫날 밤은
온도가 떨어져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 탓일까.
해가 지고 어둠이 짙어져 버린 탓일까.
마치 오래된 흑백 스릴러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저러나, 이제 막 여행이 시작되었구나.
첫 시작은 설렘을 동반하에 두려움이 잔뜩 몰려와
등골을 잔뜩 위축시켰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저마다 낯섦을 떠들어댔다.
그저 바람이 차가워 덜덜 떨리던 두 손을,
호텔에서 주는 무료 커피만이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어휴… 와버렸구나.’라고 말이다.
어쩐지 몹내 그리운 지구 반대편,
내 나라를 생각했다.
우리 강아지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여기는 이토록 차가운데, 한국은 날이 좋겠지?
나는 5월 말, 싱그러움이 찬란하게 빛나고
따스한 여름을 맞이하는 이 계절이
여기 이곳에서는 그와 같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아, 다소 씁쓸하게 커피만 삼켰다.
차갑고 우아한 도시,
그것이 내가 처음 마주한 런던이었다.
해가 들어 그곳을 밝히면,
런던은 동화 속 세상으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호텔 1층 로비를 찾았다.
그곳 커피는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공짜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 남몰래 숨기고픈 웃음이 새어나왔다.
1층 로비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아담했다.
직원이 손님을 맞이하는 데스크가 한켠에 있었고,
맞은편에는 각기 다른 디자인과 크기의 소파가
놓인 라운지도 있었다.
부스스하여 지난밤의 피로군이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로 커피 머신 앞으로 다가가
에스프레소를 더블 샷으로 내렸다.
스틱 설탕을 하나, 둘...
두리번거리며 주변 인적을 살피고, 셋.
달달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소파로 향했다.
고요한 아침 햇살이 머물고,
가끔 사람들이 내려와 움직이는 것을 관찰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께서 이른 산책을 다녀오셔서
1층 로비에 있던 내게 다가오셨다.
“바다야, 여기 뒷편에 공원이 있는데 참 좋더라.
너도 가볼래?”
나는 공원이라는 말에 조금 설레었다.
선생님께 브런치를 먹을 식당을 찾아보겠다고
하며, 다시 붕 뜬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어젯밤, 어둠이 서린 런던은
몹쓸 위험한 남정네 같았는데...
해가 뜬 정오는
살이 키 큰 건물과 나무를 물들여 마치
상냥하고 아름다운 여신이 강림한 것만 같다.
하지만 햇살이 따스할 것이라는 예감은
무심히 부서지고 말았다.
밝게 빛나는 빛도 따사롭지 못해,
날은 차갑고 때로는 매섭기까지 했다.
‘하아… 정말이지,
5월 맞냐고… 이건 초겨울이래도 믿겠어!’
한국에서 가져온 옷들은 모두 하나같이
가벼운 봄나들이 옷.
밖으로 나설 때마다 달달 떨어야만했기에
늘 어깨를 움츠리고 도시를 누볐다.
오전 허기를 달래기 위해
미리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호텔 근처의 공원인
‘빅토리아 엠뱅크망 가든스’ 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아래 블록에 공원이 연결되어 있으며,
공원 안에 작은 카페테리아로 보이는
건물로 다가섰다.
오랜 역사의 위엄을 보여주는 나무는
너무나도 웅장하게 하늘 가까이 뻗어 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움직이는 나무들처럼,
이내 땅에서 벗어나 거대한 거인처럼 움직이며
내게 말을 거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과 그늘 사이 작은
카페 테라스에서 브런치 세트 두 개를 주문했다.
먹음직스러운 두 개의 큰 접시가 나왔다.
생각보다 상당한 양과 그저 그런 비주얼에 당황했다.
‘하하. 맛은 음… 난감하네.’
영국에서 첫 식사는
아직 친하지 못한 친구와 나눈 어색한 대화만 같았다.
by @kimbada4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