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바르셀로나, 여섯
예전, 그 아이돌 덕질을 열중하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이 일화는 내가 사랑하던 아이돌의 팬사인회를
다녔을 때 이야기이다.
나는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팬이었다.
그러니 내 아이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이벤트나 콘서트, 팬사인회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다녔다.
그렇게 내 아이돌을 자주 만나게 되니,
정말 팬사인회 2년 차에는 꽤나 친숙해졌다.
내 최애 아이돌과
농담을 주워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끔 일상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게, 그 2분 사이에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네.
어느 날 대면 팬사인회장에서
우연히 툭 튀어나온 런던에 대해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런던! 런던 좋지~ 누나는 가봤어?]
“아니! 근데 가보고 싶다.
네가 런던에서 콘서트를 해주면, 갈 수 있을 텐데!
런던서 콘서트 해주라!”
그러자 그 친구는 뜬금없는 말로 주제를 돌렸다.
[아… 런던은 좋은데, 음식이 맛이 없어!
피시 앤 칩스~ 음.. 맛이 별로였어.]
“하하…”
적재적소에 맞는 반응에 실패한 팬 소녀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사인회장 스텝에게 이끌려
내려간 적이 있었네.
잠시 그 시절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과
버로우 마켓의 길거리에서 팔던
피시 앤 칩스를 사 먹던 순간이었다.
나는 주문한 덩치 큰 피시 앤 칩스를 받아 들고
점포 옆 테이블로 향하며 피식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후라이드 치킨 냄새와 같은 너무나 황홀한 그것을...
후미진 골목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선생님과 그것을 좀좀 뜯어먹었다.
튀긴 대구살은 적절한 간이 배어 있어
튀김옷은 바삭하고
생선살은 촉촉하며 통통 살이 가득했다.
그저 입에 넣는 순간 생선살이 너무 부드러워
눈 녹듯 사라졌다.
“에… 너무 맛있는 데에?”
생선살과 튀김옷의 조화는
진정 행복을 불러이르키고야 만다.
이런… 맛집을 발견하고 말았구만.
나는 선생님과 마켓을 들어서기도 전에
잔뜩 배불리 먹어,
입가에 튀김 기름이 번들거리는
행복한 붕어가 되었다.
그리고 본격 ‘버로우 마켓’ 탐방에 나섰다.
여행 중에는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마트나 마켓(시장)을
방문하는 일이 늘 즐거운 경험이다.
그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가 가득하며
‘진정 여기가 외국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여행 때마다
가장 기대되던 곳도 현지의 시장이나 마트였다.
비구름이 아침부터 종일 기승을 부리던 날,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버로우 마켓’(Borough Market)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던 길에는 비가 보슬비로 바뀌어
무거운 짐들 사이에서 우산을 포기하고
접어 넣었다.
그렇게 주적주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이미 머리는 떡져
방황하는 방랑자의 신세와 같았지만,
그 또한 낭만이라 누렸다.
더구나 핑크색 유니콘 자동차와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감상하고자 하니
어느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된 것만 같았다.
버러 마켓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어둠진 동굴.
마치 전쟁 통에 만들어진
지하 대피소 같은 터널을 지나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작은 장터가 있었다.
‘한국의 5일장 같은 곳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로우 마켓 입구 쪽 피시 앤 칩스 가게와
진열대에 무심히 툭 올려놓은 빵들을 파는
베이커리 상점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북새통으로 이룬 마켓을 만날 수 있다.
신선하고 비싼 과일과 채소는
하나같이 모양이 예뻐 마치 조형물 같았고
각종 차와 치즈, 말린 고기류에서 코를 찌르는
녹진한 냄새 맡으며 계속 걷어 밖으로 나와보면
다시 모던하고 운치 있는 런던의 거리와
마주하게 된다.
작은 마켓을 즐겁게 둘러보고
유럽에서만 먹을 수 있는 납작 복숭아를
서너 개 사고 마켓 건물을 등지고 나섰다.
그렇게 빠져나온 마켓 근처에는
‘플랫 화이트’ 커피로 유명한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선생님의 커피만
한 잔 테이크 아웃하고는
얼른 그곳을 빠져나와버렸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마켓이 있던 동네가
제법 유명한 곳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눅눅해진 몸둥아리를 무겁게 끌며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감성이 풍만한 여행도, 낭만도 좋지만...
체력의 한계 앞에선
그것도 저세상 이야기일 뿐이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