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의 나라, 바르셀로나

런던과 바르셀로나, 열둘

by 김바다




어쩌면 기대가 전혀 없고, 예상치 못한 일에
크나큰 달콤함을 만끽하게 되고
더 열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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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태양이 도시를 밝히자, 회색빛이던 것들이 하얗게 발현되어 그곳에 머물던 무수의 것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강한 생명력을 뽐내어 들었다. 온화하다 못해 뜨거웠다. 그리고 나긋하게 이내 불어오는 바람은 달궈진 마음을 식혀주었다. 이 세계의 모든 열정이 이곳 카탈루냐 광장에서 La Rambla(라 람블라) 가로수 길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거대한 나무들의 향연이 주는 압도감에 잠시 쭈뼛 얼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진 모든 풍경이 너무나 평온하고 여유로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그렇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바로 여기, 내가 서 있는 이곳일 거야.

내가 처음 마주한 바르셀로나는 방랑자가 꿈꾸던 낙원과도 같았다.



감탄할 새도 없이, 우리는 두터운 캐리어를 끌고 건물 사이 틈에 숨어 있던 호텔로 들어섰다. 이번에 머무를 호텔도 런던에서 묵었던 호텔과 같은 체인이라 구조가 비슷했다. 또한 여행 내내 호텔에서 마셨던 커피도 무료로 제공해 더욱 만족스러웠다. 카운터 직원들은 친절했고, 건물 꼭대기층에 있는 테라스는 너무나도 근사했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후딱 내려놓으니, 피로에 허덕이다 지친 마음도 금세 활기를 되찾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 낙원의 거리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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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실망스러운 아침 식사를 한 후였기에 허기가 몰려왔다. 고되고 길었던 이동 시간에 지쳐 가까운 인근 식당을 찾아 나섰고, 수많은 식당이 모여 있는 곳에서 무한 리필이 가능한 초밥 가게를 선택했다. 그곳 음식은 뛰어나거나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허기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다. 익숙한 것은 늘 안도감을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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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비로소 여행의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느슨해지고 말았다.

광활하게 무수한 빛을 뽐내던 라 람블라 거리에 어둠이 내렸다. 그리고 도시를 장식하는 가로등 불빛이 거리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나는 좀처럼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바르셀로나 여행이 기대감으로 마음을 둥실하게 만들었기에.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새로운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말이다.



너무 좋은 일들이 갑자기 찾아온다면,
그렇지 못한 일들도 함께 오던가.




바르셀로나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맞이한 둘째 날이 그러했다.


여전히 동이 트지 않은 어두운 이른 새벽, 2층에 위치한 라운지를 찾았다.

런던 호텔에서 제공한 커피는 맛이 참 좋았는데, 이곳 바르셀로나 호텔은 어떠려나... 제멋대로 기대감이 부풀러 올랐다. 냉큼 커피 머신으로 다가가 커피를 내리고 설탕 봉지 두세 개쯤 뜯어 넣었다. 그리고 휘휘 저어 바로 한 모금 마시니, ‘음, 생각만큼은 아니네…’라며 좀처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런던 호텔이… 커피 맛집이었구먼!’라고 그때 그 맛을 새삼 떠올렸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여행에 이어 바르셀로나까지의 이동 여정이 고되셨는지, 꽤 오랜 시간 숙면을 취하셨다. 그동안 나는 호텔 이곳저곳을 탐방하느라 바빴다. 더구나 옥상에 위치한 테라스는 머무는 내내 나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서늘하던 바르셀로나의 아침은 금세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렇다. 날씨조차 런던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곳이, 어쩌면 북극처럼 같던 사늘한 런던에서 이토록 뜨거운 대지와 오아시스를 품던 바르셀로나로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될 수 있을까? 이야말로 극과 극을 체험하는 일이 않은가,라는 생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6월로 향하던 바르셀로나는 마치 한여름처럼 대단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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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빛을 바라지 못한 하늘거리는 블라우스를 꺼내 가볍게 입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시도하지 못할 노출도 감행했다. 그런 일탈들이 묘한 쾌감으로 알싸하게 찾아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보케리아(Mercat de la Boqueria) 시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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