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크리스마스를 발견한다면.

런던과 바르셀로나, 열셋

by 김바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은 라 람블라 가로수길에 위치해 있어 내가 있던 곳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갈 수 있다. 시장은 넓고 다양한 식품들로 가득했으며,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 여느 백화점 식품관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풍요롭고 화려한 여러 과일들이 눈을 즐겁게 했고, 하몽이나 치즈류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다양하고도 간단한 먹거리들이 허기를 자극했다.


스크린샷 2026-01-15 오후 2.55.18.png



유럽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납작 복숭아를 한 아름 사고, 신나게 그곳을 구경하다가 적당한 식당을 발견했다. 애그로 만든 요리와 커피를 간단히 주문한 뒤, 식당 발코니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온화한 기분에 두둥실 떠오른 풍선처럼 부푼 마음에, 쏜살같이 달려든 날카롭고 삐죽한 무언가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그것은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아주 사적이고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전하려고 온 고객 연락은 평화롭던 시간에 냉큼 찬물을 부어 끼얹었다. 그로 인해 선생님과 나는 좋지 않은 감정으로 뒤덮인 축축한 기분을 되돌려 받아야만 했고,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호텔로 돌아가고자 했다.


스크린샷 2026-01-15 오후 2.55.31.png



그녀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 좋지 않은 소식은 휴가 기간 후에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한숨만 계속 나왔다. 방긋 웃던 해님도 칙칙한 비구름에 가려지면 무기력해져서 뭐든 하기 싫어질 테지. 선생님과 나는 잠시 떨어져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 기분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호텔 옥상 테라스로 올랐고, 내리쬐는 햇살 아래 잔잔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위로 삼았다. 현실에서 벗어난 여행이라 여겼건만, 이 낙원 세계까지 기어코 쫓아온 거무튀튀한 것이 못마땅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에휴~ 전화를 받지 말걸 그랬네…” 그러나 그러지도 못한 내 우유부단함에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애석하고 속상했다.


그렇게 머물며 한탄의 시간만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울 무렵,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그 일로 기분 오래 상해 있지 말고, 어디 다녀오는 건 어떻겠니?”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서도 모처럼의 여행에 기분이 언짢으셨을 테다. 허나 선생님은 각자 시간을 가지자고 먼저 말씀해 주셨고, 런던에서부터 그것이 배려임을 깨달았다.


그 메시지를 보고는 훌훌 털고 일어났다. 간단한 소지품을 챙기고 옷차림은 가벼이. 핸드폰에 구글 맵만 덩그러니 켰다. 그리고 거리로 뛰어들었다. 무한한 초록빛의 향연을 따라 걷고자 한다면, 골목 사이로 수많은 세계가 이어져 있었는데, 그건 하나같이 짙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고 선 태양빛 건물들이 머물러 있었다. 그 수많은 역사 속에서 생명체들의 시간이 뫼비우스 띠처럼 지나왔을 거라 생각하니 경외감마저 들었다. 새삼 방금 있었던 언짢음이 정말 아무것도 아닐 만큼 사소하게 느껴진다.





스크린샷 2026-01-15 오후 4.30.18.png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아이.


꼬물이던 작은 인간은 신나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작은 아이가 수만 가지 경험을 하는 동안 지켜봐 준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이로 인해 사랑스러움 가득 바라볼 수 있었고, 아이는 온정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먹으며 자랄 것이다. 이 모든 순간이 훈훈해 마음이 따뜻해졌다.



스크린샷 2026-01-15 오후 2.55.47.png





또한 사랑을 그득 나누던 수많은 연인들과 먼 길을 당차게 나아가던 수많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이방인의 낯선 감정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고자 했다. 그리고 다정한 마음을 다시 꺼내어 정처 없이 이어진 골목을 걷고 또 걸어냈다.


그랬더니, 글쎄 저 길 안 모퉁이 진 곳에서는 아늑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그때 마치 쿵 하고 머리를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겨울에만 존재하던 것이 아니었나 싶어, 눈을 비비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곳은 성탄절 용품을 파는 작은 상점이었는데. 상점에 들어서서 한참 동안 초여름날의 성탄절을 만끽했다.

알록달록 가득한 그것은 지난 내 추억을 마주한 오브제가 되었다. 천사가 달려와 희망을 가득 노래하고,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상막한 이 도시에 너그러이 감싸주던 포근함과 따뜻함으로만 부디 가득 채워 품게 해 주던 것. 이 순간을 나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다.



스크린샷 2026-01-15 오후 2.57.45.png




그건 햇살 가득한 봄,

낯선 타지로부터 꿈꾸던 진짜 동화의 세상을 선물 받았던 나의 특별한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27화햇살의 나라, 바르셀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