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바르셀로나, 열하나
그럴듯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꿈꾸던 런던에서
현실을 마주한 나는 4일 차 여행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향하기 위해 두터운 캐리어를 다시 챙겼다.
어쩜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모험기가 이어지는 것에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몸은 피로했고, 마음마저 무거웠다.
그러네, 참. 런던이 시작될 땐 그리도 설레더니…
바르셀로나에 대한 기대란. 피로군이 덕지덕지 붙어,
“시간아~ 왤케 더뎌? 이 여행... 언제 끝나니?!”
라고 되묻게만 되었다니...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이틀 전, 나는 선생님과 함께 비행기 티켓을 발권해야 했다.
미리 한국에서 예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야만 했다. 우리는 British Airways(브리티시 에어웨이즈) 항공사의 바르셀로나행 항공편을 검색했고, 곧이어 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예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런던과 헤어질 날이 다가왔다.
사람은 어디든 곧잘 적응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런던 여행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자연스럽게 1층 로비로 내려가 호텔에서 제공하는 커피를 마치 집에서 내리는 커피처럼 태연하게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선생님께서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셔서 이미 인근 공원 산책까지 마치고 돌아와 계셨다. 1층 라운지에서 느긋하고 여유진 모습으로 커피를 드시는 선생님 옆에 다가가 앉았다. “선생님, 푹 쉬셨어요? 오늘 마지막이네요... 런던.” 커피를 쪼르륵 한 모금 마시며 선생님의 안부를 여쭈었다. 우리는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처 브런치 카페에서 간단히 조식을 사 먹기로 했다.
머문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과 비행 일정이 여유 있게 맞물려, 잠시 아침을 먹으러 다녀오는 일이 런던에서의 마지막 일정이 될 듯했다.
아기자기한 외관에 잔뜩 기대를 했건만...
역시나 런던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 또한 그리 로맨틱하지만은 못했다.
어쩜 푸석한 에그 오믈렛과 새까맣게 탄 토스트는 뺨을 서늘하게 스치던 바람만큼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다녀오는 시간적 여유와 동선을 고려했으며, 급히 구글 맵으로 검색해 찾아낸 이른 아침에도 문을 연 작은 카페였고, 그간 런던에서의 식사들의 경험으로 인해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에이, 이건 좀 너무하잖아…’
선생님과 나는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 앞에 차려진 것을 보고 잠시 경직되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 실소를 터뜨렸다. 아무래도 같은 감정을 마주한 것 같다.
이 음식 하나에 만 가지의 감정이 생겨났다. 차가운 런던에서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푸석한 토스트 같은 감정 속에서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라며.
조금은 따스히 전해지는 달걀 프라이의 식지 않은 온도에 마음이 낭랑해졌다. 질겅질겅 야채샐러드는 쌉싸름했지만, 이내 후끈하고도 부드러운 카페라테가 모든 피로의 순간을 달래주었다.
브런치 카페에 다녀온 후, 호텔 체크아웃을 했고 무거운 짐들을 다시 동여맸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택시에서 머무른 런던을 지나 버킹엄 궁전과 노팅힐로 가는 길을 지나쳤다. 그때마다 런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택시기사님의 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선생님께서는 어쩐지 맞장구를 잘 쳐 주셔서, 기사님이 더 신나 보이기까지 한다. 알 수 없는 영어 단어들은 마치 주술사의 주문처럼 머릿속을 어지럽히다가 튕겨 나가 버렸다.
‘아... 놔, 영어 공부 좀 해 둘걸.’ 수백 번 후회와 되새김이 반복되는 순간을 다시 경험했다. 조용히 런던 거리를 바라보고자 했던 나는 택시 안에서 떠들썩한 대화 속에 조용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노팅힐과 버킹엄 궁전이라니…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네. 몹내 씁쓸했다.
나는 여기 런던에서 대체 뭘 했던 것인가, 부질없이 보낸 시간들이 아까워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아쉬움에 몸서리칠지언정 겉으로는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 따위는 안 가! 라며 허세를 부리곤 한다.
참… 몹쓸 사람.
아직 철들려면 멀었구나.
저 멀리 두고 온 런던이 작디작은 나를 토닥여주었다.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순간에는 열흘을 살 수 있을 만큼 거대 캐리어의 짐과 수만 가지 감정의 꾸러미를 짊어지게 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했던 여행의 첫출발과는 다소 다른 감정이 들었다. 그것의 묵직한 모든 순간들이 남긴 기억에서 여러 감정이 마주하자, 의기양양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겸손하고 얌전해진 작은 녀석 하나가 눈을 말똥이고 있다.
우리는 작아진 소인국 사람마냥 거인국 사람들 틈에서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 그럼 어느새 떠나는 비행기 안에 몸을 구겨 앉게 된다. 그리고 며칠 만에 다시 보는 뽀송한 구름들과 내가 다녀온 런던의 미니어처 건물들을 유유히 감상했다.
비행기로 약 2시간 남짓 걸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Barcelona–El Prat)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미리 예약해 둔 한국인 픽업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기나긴 여행에 이동이라도 조금 편하게 하자는 선생님의 배려였다.
이동 차량을 타고 길고 긴 도로를 달리다 보니, 낯선 풍경들로 인해 곧 이질감에 빠져버렸다. ‘어째 헛헛하네만..' 라며 허우적거릴 무렵,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진 바르셀로나의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터덜터덜, 엄청난 무게의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 바르셀로나 번화가 중심에 서자, 수많은 인파가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아니! 그나저나, 날씨가... 미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