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이었으면 도시락 싸가지고 결혼을 말렸을 궁합인데 결혼 전에 궁합 같은 거 안 봤나?"
우리 지역에는 유명한 점집? 철학관? 이 있다.
이름을 들으면 웃음부터 나는 00 도사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다.
생일과 이름으로 사주를 풀이해 주시는 분인데,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재미로 두어 번 갔던 곳이다.
이혼 전에는 궁합이 안 좋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했었고
아이들과 아빠의 사주도 별로 좋지 않으니 열심히 살붙이며 살라고 했다.
그렇지만 중간에서 엄마인 내가 잘 조율하고 중재하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사주가 '스님사주'라 원래는 없어야 하는 인연들이 자꾸 생기니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애정결핍으로 인한 바람을 조심하라고 까지 당부했었다.
그리고 조상복, 부모복, 배우자복, 자식복 같은 복이란 복은 없으니 열심히 현생을 살아야 하는 팔자라고...
이혼 후 답답한 마음에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00 도사는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날 기억 할리는 없지만
남편의 '스님사주'에 대해 강조했고 항상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이혼을 이미 했다고 말하니 우리 네 식구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노력해도 안 되는 사주들이 있다고 운명대로 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남편은 이혼 후에도 반성 없는 삶을 살 거라고 엄마와 아들들이 똘똘 뭉쳐 잘 살라고 했다.
어차피 남편은 자식이 원래 없어야 하는데 의술을 빌려 아이들을 만들었으니 자꾸 어긋난다고,
역술인의 그럴듯한 점괘에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걸 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재밌는 상황이 되었다.
결혼 전 궁합을 봤다면 헤어질 수 있었을까?
궁합을 봐서 좋지 않다고, 헤어지라는 조언을 들었다 해도
그때의 나는 절대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고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기에
"우리는 달라"라는 착각 속에 머물렀을 것이다.
알아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만큼 사랑했고, 그만큼 어리석었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지만 모든 걸 지켜 줄 힘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
감정의 온도,
책임에 대한 기준.
그 작은 균열들이 쌓이고 쌓여 사랑이라는 이름조차 무기처럼 변해버렸다.
남편의 외도는 한 사람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흔들어 놓은 균열의 시작이었다.
그 균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고
결국 우리가 함께 쌓아온 모든 것들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불성실한 태도,
책임지지 않는 선택,
그리고 외도.
그건 남편의 사주, 운명이 아니라 그가 한 '행동'이었다.
남편의 외도는 팔자의 탓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도 충실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걸 미리 알지 못한 내 책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며 살아보려 했던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인생.
나는 그렇게 오늘도 내가 만든 선택의 결과를 껴안고 살아간다.
이건 내 인생이고 내 이야기니까.
궁합보다 중요한 건 결국
"함께 살아가는 자세"였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그 사랑이 진심이었다는 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
비록 끝은 슬펐지만,
시작만큼은 진심이었고 아름다웠다.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있었기에
지금의 상처도 후회도 모두 내가 살아낸 증거다.
그리고 이제는
아팠던 시간마저 지나간 계절처럼
내 안에 조용히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계절을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