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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bbi Feb 07. 2021

여행에 대한 고찰

여행의 기쁨과 안 기쁨

여행은 분명 미화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여행 타령하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여행의 순간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이 느꼈다. 베이스가 혼자 여행이라 더욱 그랬을 지도.


이번 여행은 특히 무표정인 순간이 많았다. 혼자 있는데 당연히 표정이 있기 힘들지 싶지만 내적으로도 무표정이었다. 부산이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일상을 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기쁘지 않다고 느낀 부분이 많은 건 팔 할이 무거운 짐가방과 불면, 숙소 선택 미스 때문이다. 굳이 왜 캐리어를 놔두고 어깨를 작살내는 크로스백을 택했는가에 대한 후회와, 숙소 선정에 들인 시간에 비해 결과물이 형편없을 때 느껴지는 허무함(직전의 98% 완벽했던 숙소가 잊혀질 만큼)이 내 여행을 방해했다. 세 시간동안 잠에 들지 못하고 가위까지 눌렸던 그날 밤 덕분에 다음날 체력은 말이 아니었고 일정 역시 망가졌다.


여행은 인생과 같아서 기쁘지 않은 일들이 이렇게나 비일비재하다. 아마 여행이 모든 순간 기쁘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불행한 여행이 될 거다. 여행은 기쁘기도 안 기쁘기도 하지만, 짧은 찰나로 느끼는 여행의 기쁨이 여행의 안 기쁨(기쁘지 않은 걸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어서 쓰는 표현)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내게 찰나의 기쁨이란 내가 보는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때, 커튼을 걷었는데 신비로운 모양새를 한 달이 나를 맞아줄 때, 혼자 찾아간 식당에서 한 입 베어 문 돈카츠가 너무 맛있는데 차마 소리 낼 수는 없어서 내적으로 난리 칠 때, 등이다.


여행을 하면서 기쁨뿐 아니라 수많은 감정들을 느꼈지만, 이전에 비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의 폭이 얕아졌음을 느꼈다. 혼자 다니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모두. 기쁨과 안 기쁨이 공존한 여행이었으나 기뻐서 죽겠고 안 기뻐서 죽겠던 적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 여행을 가고 싶다. 기쁨이 안 기쁨을 상쇄시키는 그 경험을 계속 하고 싶다. 기뻐서 죽겠다 싶지 않아도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새로운 감정이니까, 미지근한 온도의 기쁨과 안 기쁨이라도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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