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서현아. 잘 잤어?” 청소 도구를 들고 있는 은정은 평소와 같이 밝고 활기차게 인사했다. “어.. 너는?” 하지만 은정에 대한 생각 때문에 한숨도 잠들지 못한 서현은 힘 없이 대충 다 변했다. “아.. 응. 잘 잤어. 오늘은 같이 일할까?” 빨리 끝내고 커피 마시자. 바 매니저님이 새로운 음료를 출시했다고 말씀하셨어! 기대된다. 그렇지?”
서현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웃으며 얘기하며 다른 팀원들과 잘 어울리는 은정에게 화가 났고 그녀를 피하고 싶었다. “아니..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서.. 혼자 있고 싶어. 미안해.” 서현은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며 차분히 말했다. “아.. 응. 그래. 너무 아프면 말해줘.” 은정은 평소와 달리 시큰둥한 서현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같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매일 다정하고 친절할 수 있지?” 서현은 한숨을 쉬며 본인의 청소 구역인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그녀는 항상 은정을 부러워하며 닮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서현은 자신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하고 포기했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평소 서현은 말이 적고 무표정했다. 그럼에도 다른 지구인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그냥저냥 그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솔직하고 싶은 대화를 나누는 지구인들은 없었다. 그녀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 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싫어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마음속에는 다른 지구인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이성과 사랑을 나누는 꿈을 꿨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웠고 그녀의 인간관계는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은정이 다가왔다. 그것도 베이커리 면접실에서.
어찌 보면 가장 긴장되고 예민한 순간에. 그렇게 알게 된 은정은 다정했고 따뜻했다. 그런 그녀를 싫어하거나 멀리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서현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은정을 동경하며 그녀의 말투, 행동을 따라 했고 다른 지구인들과 이전 보다 깊은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변화는 한순간이었다.
은정이 웃으면 서현도 따라 웃었고 은정이 친절을 베풀면 그녀도 친절을 베풀었다. 이들을 만나는 지구인들은 하나같이 생김새가 다른 쌍둥이 같다는 말을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은정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한 채 웃었지만 서현은 그녀와 다르게 활짝 웃었다. 하지만 문제는 서현이 은정과 함께 있지 못할 때 발생했다.
그녀가 없으면 서현은 금방 침울해졌다. 그동안 웃으며 얘기하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은정과 다른 공간에서 일을 하더 날. 문제가 발생했다.
“서현 씨! 잘 지내셨어요?” 평소와 다르게 같이 일하는 원숭이 지구인이 친절하게 인사를 했지만 평소 그에 대한 평판을 알고 있는 서현은 그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서현 씨! 오늘은 은정 씨가 보이지 않네요?” “네.” 서현은 성의 없이 답변했다.
그는 서현의 성의 없는 모습에 기분이 언짢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은정 씨는 얼굴도 이쁘고, 목소리도 우아해요. 정말 아름다워요!” 그는 서현을 훑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은정 씨가 위생팀에서 일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서현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정말. 은정이는 왜 위생팀에서 일을 할까?” 그녀는 나중에 은정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원숭이 지구인과의 대화를 끝내려는 준비를 했다. 눈치가 빠른 원숭이 지구인은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녀가 말을 하기 전에 다른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현 씨는 어떻게 은정 씨와 그렇게 친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서현 앞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좌, 우로 흔들었다. “내가 은정 씨라면 서현 씨와는 거리를 뒀을 거예요."
이제 그는 대놓고 은정을 무시하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얼굴도 못생겼어. 그렇다고 몸매가 이쁜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야..”
그는 야비한 눈으로 서현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이죽거렸다. “제가 보기에 서현 씨는 위생팀이 딱!이에요. 딱!” 그는 “우끼끼” 거리며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봐도 서현 씨는 서비스팀은 불가능해! 음음. 그렇고말고! 우끼끼!” 원숭이 지구인 같은 야비한 이들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한 지구인들을 모욕하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여겼고 이들은 기가 막히게 선한 지구인들의 약점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다. 원숭이 지구인은 서현이 서비스 팀에서 일을 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현실적으로 그 팀에서 일을 할 수 없는 그녀의 약점도 잘 알았다.
그의 조롱에 화가 난 서현은 무표정하게 그를 노려봤다. 그는 웃으며 서현을 흘겨보며 말을 이어갔다. “서현씨. 서현씨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뭔지 알아?” 갑자기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서현 씨를 보면 기분이 나빠요. 아주 나빠요. 은정 씨를 따라 하지만 그럴수록 역겨워요! 우끼끼!” 상대방의 기분은 상관하지 않고 서현의 표정을 살피며 침을 튀기며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삶이 한 번 망가진 지구인은 평생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 아무리 은정 씨를 따라 해도 소용없다니까! 오히려 더 어색하고 더 역겨워!”
서현은 얼굴이 붉어진 채 지금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다른 층으로 발걸음 하는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조롱이 섞인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나 마나 과거에 근본 없이 자랐을 거야. 나는 딱 보면 알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티가 난다니까? 부모나 친구들의 사랑을 못 받았을 거야!”
서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우끼끼! 노려보면 어쩔 거야!"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은정 씨가 아니었으면 누가 서현 씨하고 지내길 원하겠어! 어휴. 저 우울함에 전염될 것 같아.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지. 우끼끼!” 그가 등을 돌리는 순간 어깨에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뭐야? 우끼끼!?” 그가 말을 하는 순간 “짝!” 소리가 울려 퍼졌고 원숭이 지구인은 휘청거렸다. “악!” 휘청거리는 바람에 초점이 흔들리는 그의 앞에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표정한 서현이 보였다.
“너..너 뭐 하는 거야!” 그가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의 귓속으로 “죽여버릴 거야.”라는 차가운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서현은 손에 들고 있는 청소 도구로 그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위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나가던 직원들이 서둘러 뛰어와 그녀를 말렸다. 그날. 서현은 깨달았다.
자신은 결코 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서현아! 서현아! 그만해!” 희미하게 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그녀의 앞에는 눈물을 흘리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지구인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 그..만.. 내가 잘 못했어..” 그녀의 시야에 서서히 바닥에 쓰러져있는 원숭이 지구인이 또렷하게 보였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지구인들의 경악한 표정들도 또렷하게 보였다. 특히 자신의 팔을 잡고 울고 있는 은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손의 핏줄이 보일 정도로 꽉 쥐고 있던 대걸레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의 폭력을 구경하던 지구인들은 쑥덕거리며 그녀를 흘겨봤다. 서현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며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었다.
“서현아. 우선 다른 곳으로 가자. 일어설 수 있겠어?”멍하니 앉아있던 그녀에게 훌쩍이면서도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부드러운 손이 자신을 부축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정이 보였다. 서현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고 눈물만 흘렸다.
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리에 힘을 주며 바닥에서 일어섰다. 항상 그녀를 믿고 다른 지구인들이 뭐라고 하든 곁에 남아 있어준 지구인은 은정뿐이었다.
“여기 커피 한 잔 줘요. 꿀꿀..” 그러자 옆에서 다른 네발 지구인이 먼저 주문한 돼지 지구인을 무시하며 큰 목소리로 주문을 했다. “맑은 물 한 잔 주세요. 꿀꿀..” 이전 돼지보다 비싸 보이는 옷을 걸친 돼지 지구인이 그를 흘겨보며 자신의 음료를 먼저 준비해 달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먼저 주문한 돼지 지구인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가 먼저 왔어! 너 뭐냐!” 이윽고 두 돼지 지구인은 “꾸웨웩!” 소리를 지르며 서로의 머리를 부딪히며 싸우기 시작했고 근처에 있던 네발 동물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구경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들 사이에 끼어 구경을 했겠지만, 오늘은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지구인들이 없는 구석으로 이동해 묵묵히 청소를 했다.
“정말 은정이가 서비스팀의 제안을 받았으면 어쩌지?” 겉으로는 묵묵히 청소를 하는 듯싶었지만 서현의 마음속은 혼란스럽고 질투로 가득했다. “은정이가 떠나면 나는 어쩌지?” 서현은 그녀에게 질투를 느끼는 동시에 그녀가 자신과 관계가 멀어질 것 같은 두려움도 마음 한편에 존재했다. 고민을 하며 같은 곳을 닦던 중 근처에서 환호성이 들렸고 이는 다툼이 끝났다는 알림이었다. 격렬한 다툼 도중 떨어진 오물을 닦기 싫었던 서현은 서둘러 1층으로 이동했다.
1층에 도착한 서현은 은정을 보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살펴봤지만 다양한 손님들이 가득했고 바 근처의 테이블에서 신경질적인 현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모습을 발견한 서현은 서둘러 많은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겼다.
“역시. 아가씨가 최고야! 나를 기억해 주는 지구인은 아가씨뿐이야! 하하하!” 나이가 지긋한 지구인은 음료를 가져다준 여우 지구인에게 웃으며 고마워했다. “에이.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어르신. 어르신이 계셔서 저희가 이렇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데요.” 그녀는 생긋생긋 웃으며 음료를 마시는 지구인에게 말했다. “하하하! 역시 최고야. 고마워. 정말!”
“호호호. 알고 있었구나? 자기 미적 감각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서 2층으로 진출해야지.” “어머. 저는 조금 더 사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어머! 얘 좀 봐!” 1층에서는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지구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서비스팀의 모습이 보였다.
서현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 층 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항상 어둡고 무표정한. 억지로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짓는 자신이 미웠다. 서현은 항상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윤기 없는 털에 둥그런 얼굴, 넓은 어깨 그리고 작은 키까지. 엄마는 예뻤는데 나는 누구를 닮은 거지? 기억 나지 않는 아빠를 닮은 걸까?” 서현은 아름답고 인기가 많은 지구인들과 본인을 비교하였고 언제나 그 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졌다.
“거기 아니라고요!” 여전히 신경질적인 현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손님들 사이에서 도망 다니던 서현은 몇 분 전보다 주변의 대화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오후 타임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현은 청소를 하기 위해 지구인들이 없는 1층 구석으로 향했다.
여전히 서비스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구인들도 보였지만 이제는 그들마저 베이커리에서 떠날 준비를 했다. 이미 다수의 서비스팀 직원들은 야간 타임이 오기 전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기 위해 1층을 떠났고 이들의 빈자리는 위생팀의 직원들이 채웠다. 하지만 여전히 은정은 보이지 않았다.
“은정이는 어디 있지?” 서현은 바닥의 오물을 치우며 주변을 살펴봤다. 오전에 화를 내며 일을 하던 정직은 여전히 떠들며 일을 하지 않는 원숭이 지구인들을 무시한 채 묵묵히 어질러진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했고 바에서는 이미 사용한 음료 찌꺼기 정리 및 야간 타임 전용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서현은 빠르게 일을 하면서 은정을 찾았지만 일을 끝날 때까지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창 바쁜 시간에 다른 동료가 아무런 말 없이 사라졌다면 화를 냈겠지만 지금까지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은정이기에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서현은 그녀가 서비스팀으로 떠날 것 같은 생각에 불안과 질투를 느꼈다. 서현은 깊은 한숨을 쉬며 들고 있는 청소도구를 정리하러 창고로 향했다. 1층에서 청소도구 창고로 이동하는 통로는 적막했다.
“잘 생각해 봐요. 우리 팀에서 일을 하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져요.” 서현이 창고에 다가갈수록 은서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올수록 서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비스팀에서 일할 수 있도록 권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서비스팀에서 일을 할 마음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또렷하게 드려오는 은정의 단호한 목소리에 놀란 서현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있었다.
“아니.. 서비스팀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니..” 서현은 은정도 서비스팀에서 일을 한 뒤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은서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 놀라웠다. “제가 보기에 은정 씨는 서비스팀은 물론 2층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졌어요.” 은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이렇게 제가 직접 서비스팀에서 일을 하자는 제안을 드린 분들은 극히 드물어요. 그리고 이렇게 서비스팀에서 일을 한 분들은 모두 2층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은정을 설득했지만 여전히 은정은 무표정하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저는 위생팀에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 음료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은정은 부드럽지만 확고하게 얘기했다. 은서는 아쉬우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은정을 바라봤다. 한동안 통로에는 깊은 정적만이 흘렀다.
“은정님도 주변부에서 베이커리에 취업한 이유는 성공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다른 지구인들보다 부유하고 멋진 곳에서 살기 위해서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우리 팀으로 오셔야 해요.” 가까운 통로 구석에서 숨을 죽인 채 대화를 듣고 있는 서현도 은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지. 서비스팀 매니저의 말이 옳아.”
은서는 쉬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위생팀은 가망성이 없으니 말하지 않겠어요." 은서는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어 갔다. “물론 음료팀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거나, 특별한 레시피를 만들어 베이커리 수익에 큰 기여를 한다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드물고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 일을 한다고 해도 매일 중노동에 시달려야 해요. 생각해 봐요.” 은서는 은정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했다.
“그리고 결국 음료팀은 베이커리에서 가장 먼저 퇴사를 해요. 알고 계시죠? 그뿐만 아니라 후원자를 찾기가 힘들어요. 아니. 불가능해요.” 어떻게든 은정을 서비스팀에 데려가려는 은서와 달리 은정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베이커리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짧아요. 그렇다고 승진이 원활한 것도 아니에요. 이곳에서 일을 하다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드물어요. 알고 계시죠?”
은정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답변했다. “매니저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다시 은정이 제안을 거절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은서는 그녀의 말을 중간에 끊고 말을 이어갔다.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던 우리들은 주변부에서 살아가기 힘들어요. 이곳과 모든 부분이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2층에서 일을 하면서 후원자를 찾아야 해요. 그래야만 중심부에서 빛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은서는 얼굴이 상기된 채 말을 마쳤다. 서현은 은서 주장의 많은 부분에 대해 공감했다.
중심부에 위치한 베이커리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면 소박하면서도 투박한 주변부의 삶을 견디기 힘들다는 말과 중심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베이커리의 월급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 그리고 베이커리에서 승진을 하는 것 또한 굉장히 힘들다는 점. 하나같이 현실적인 말이었다.
“저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서비스팀보다는 음료팀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은정은 은서의 권유를 정중하게 거절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런 은정의 표정을 본 은서는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요. 은정 씨 주장이 확고하니 더 이상 권유하지 않겠어요.” 다시 한번 은정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했고 은서는 뒤로 돌아 1층으로 향했다.
은정은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며 청소 도구를 들고 창고로 들어갔다. 통로 기둥 뒤에 숨어있던 서현은 텅 빈 통로로 걸어 나와 창고로 발걸음 하며 다시 한번 은서의 말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렇지. 그녀의 말이 옳아. 하지만..” 서현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멈춰 섰다. “하지만 후원자를 만드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야.” 그녀는 왼손에 들고 있는 대걸레를 꽉 쥐며 말했다.
“어? 서현아. 다 끝났어?” 조금 전까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한 은정이 창고에서 나오며 인사를 했다. “으응.. 정리하고 나올게. 바쁜 일이 있으면 먼저 가.” 서현은 당황하며 은정을 지나 불이 꺼진 어두운 창고로 들어갔다.
“너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너 때문이라고!”
어두운 공간에 홀로 남겨진 서현의 귓가에 처참하게 망가졌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